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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짐니 May 02. 2022

1년차 스타트업 디자이너의 회고

<디자이너의 생각법 : 시프트>를 읽고


'이런 기능, 우리도 한번 넣어볼까요?'

'레퍼런스랑 똑같이 디자인해주세요.'


회의를 할 때 종종 이런 말들이 쉽게 오고갔다.

마음 한 켠에서 ‘레퍼런스 분석을 좀 해야 하는 거 아니야?’라는 의구심이 피어오르기도, ‘오퍼레이터 같은 디자이너가 되고 싶진 않은데.’ 라는 불만도 생겼다.


해야 할 일은 산더미고 시간은 없으니 '오케이, 일단 시키는대로 하고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자'라며 의구심과 불만을 구석으로 밀어두었다. 안타깝게도 나중은 오지 않았고 어느 순간부터 관성적으로 일 하게 되었다. 소수에게 다량의 일이 몰리는 외적인 문제도 있고, 강력하게 의견을 피력하고 설득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나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맞물린 결과다.


시간과 노력을 들인 일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없어지는 과정이 반복되자, 보람은 커녕 허탈함만 늘어갔다. 각 브랜드의 상황과 조건, 지향점이 다른데 어떻게 같은 효과를 기대한단 말인가.


어떠한 디자인의 성립 이유가 무조건 '구글 디자인 시스템이 그렇게 하니까' 같은 식으로 설명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클라이언트의 문제 해결을 위해 이를 참고하는 것도 좋지만, 직접 연구하고 길을 찾으며 얻는 것을 직관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디자이너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 99p


작년 하반기 즈음, 대표님도 문제를 체감하시고는 액션을 취했다. 사용자를 보다 면밀히 파악하기 위해 GA, Hotjar 같은 데이터 수집/분석 툴을 도입했다. 온라인 서비스를 만드는 브랜드 치고는 늦게 도입한 듯 하지만... ‘Better late than never’ 지금이라도 도입되어 감사할 따름이다.


고객 인터뷰를 자주 진행했지만, 시간과 비용 대비 모수가 확연히 늘어난 정량 데이터를 보니 우리가 얼마나 사용자 파악에 소홀했는지 알게 되었다. 주 사용자 연령층도 미묘하게 달랐다. 관심 있으리라 생각한 이야기엔 반응이 없거나, 반대로 관심이 적으리라 생각한 이야기엔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일련의 작업을 돌이켜 보면 실제 사용자의 니즈나 문제에서 시작하기 보다, '이런 게 필요할거야' 라는 추측으로 우리가 주고 싶은 점에서 시작했더라.


사용자의 불편을 해결하겠다는 마음을 가진 진정성 있는 디자이너라면 일을 시작할 때 근본적인 문제부터 진단합니다. -64p


직관적인 데이터가 있으니 모든 구성원이 상황을 파악하고 문제에 공감하기 좋았다. 지금껏 상황과 문제가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아서 온갖 추측만 하다가 흐지부지 넘어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곧바로 실행하기 위한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매우 중요했던 것이다.


이후로는 기획부터 디자인, 개발, 마케팅, 모든 업무 방향과 프로세스가 이전보다 명확해졌다. 주기적으로 데이터를 분석하고 빠르게 문제를 파악한 뒤, 목적과 목표에 따른 가설과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테스트를 진행, 테스트 결과를 리뷰하고 발전시키는 사이클을 반복하고 있다. 성과가 있을 때도 실패할 때도 있지만, 이전엔 맨 몸으로 어둠 속을 걷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손전등과 나침반이라도 손에 쥐고 걷는 느낌이다.




‘콘텐츠가 단조로워진 것 같아요’

‘과감한 시도를 해봤으면 좋겠어요’


브랜드 디자인에는 일관성이 중요하다. 일관성은 메시지의 일관성과 시각적인 일관성을 포함한다. 그중 ‘시각적인 일관성은 곧 디자인 가이드’ 라는 공식을 머릿속에 지니고 있었다. 물론 디자인 가이드는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어야 하지만, 작업을 할 때마다 브랜드 일관성과 부족한 시간을 핑계로 삼고 소극적으로 디자인했다.


앞으로 우리가 마주하게 될 대부분의 디자인과 서비스는 특정 가이드라인을 따른 결과물로만 존재하게 될까요? 아마 아닐 확률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이 디자인 가이드라인은 태생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 사람들이 찾는 매력 있는 디자인은 정형화된 모습보다, 재즈 음악 같은 비정형적인 것일 수 있습니다. - 94p


그러던  디자인 가이드와 별개로, 심지어 디자이너가 아닌 동료가 가볍게 제작한 영상 콘텐츠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자 혼란스러웠다. 주로 이미지였던 콘텐츠를 영상으로, 이전에 다뤄   없는 컨셉으로, 콘텐츠 형태와 스토리텔링 방법에 변화를 주었더니 성과를 얻은 거다. 디자인의 역할은 무엇인가,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 존재에 대한 의문과 좌절감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익숙하게 사용한다고 해서 그것이 최고는 아닙니다. 새로운 디자인을 제시하길 부담스러워하고, 사용자가 익숙하다 여기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면, 세상에 디자인은 더 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94p


디자인 가이드는 브랜드 일관성을 유지하고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조직 규모가 커질 때나, 브랜드가 다양한 형태로 확장할 때말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브랜드에게 가장 필요한 건 최고의 효율보다 더 많은 시도과 실패로 빠르게 방향 전환을 하는 일이 아닌가 싶었다. 말로만 '도전'을 외치고, 실상은 편한 길로만 가려고 한 건 아니었는지 자문했다.


최근엔 과감하게 시도해보자는 마음으로 업무에 임하려고 노력한다. 어디까지가 과감한 시도인지 아닌지, 정도를 찾는 일도 아직 어렵지만... 브랜드 정체성과 메시지의 일관성은 의식적으로 인지하되, 맹목적으로 디자인 가이드를 만들어야 한다는 고집과 소극적인 태도에선 벗어났다.


우리는 나무보다 숲을 보아야 합니다. 때때로 너무 과하게 변수를 통제하는 데 시간을 보내다 보면 큰 그림을 놓칠 수 있습니다. 언제든 인간의 직관을 바탕으로 한 피보팅을 통해 더 나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음을 인정하며 디자인 프로세스를 적용한다면, 우리는 좀 더 놀라운 결과를 얻을지 모릅니다. -285p


스타트업에서 디자이너로 일 한지 어느덧 1년 6개월차. 이상인 디자이너 님의 <디자이너의 생각법 : 시프트> 를 읽고,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근래의 나 자신을 자각했다. 당장의 효율과 부족한 시간 핑계로 많은 것을 차치해 온 건 아닌가 싶다. 프로젝트 진행 전 근본적인 문제와 목적을 명확히 파악하는 일, 적절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동료들과 프로세스와 일정을 적극적으로 논의하는 일, 가이드에 얽매이지 말고 과감하게 시도해 보는 일에 많은 노력을 쏟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하지 않던가. 의구심과 불만이 생길 때마다 오늘의 회고를 떠올릴 수 있길 바라며, 이번 스디생은 여기서 끝!


디자인의 임팩트가 단순히 제품 하나를 출시한다고 해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끊임없는 운영체제 업데이트,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셀 수 없이 많은 어플리케이션, 심지어는 마케팅 캠페인 등을 통해 디자인 경험은 계속해서 쌓이고, 결국 거기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선들이 모여 그림을 완성하죠. 우리는 한 시즌 혹은 한 세대에 출시된 특정 제품의 디자인이 아닌, 쌓여가며 진화하는 디자인을 보아야 합니다. - 307p
참고 : 이상인, <디자이너의 생각법 : 시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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