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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반짝 Jul 09. 2023

날아라, 플라밍고

 “플라밍고입니다.” 다홍을 품은 자줏빛 원피스를 입은 나를 보고 놀란 사람들에게 태연자약한 얼굴로 건넨 말이다. “나풀거리는 자홍색 치맛자락이 마치 날개를 펼친 홍학 같지요?” 연이어 입을 놀린다. 눈앞의 형상에 이미 놀란 사람들이 무구하게 날아오는 번드레한 말에 결국 경악하고 만다. 천연덕스럽게 자찬하는 나를 사람들은 헛웃음으로 대처한다. 풍선 바람이 빠지듯 어쩔 수 없이 새어 나오는 웃음소리가 뜨악한 적막을 메운다.     


 처음부터 고고한 플라밍고는 아니었다. 어릴 적 나는 어쩌다 칭찬의 말을 들으면 양 볼이 봉숭아 물을 들인 여름의 손톱같이 변하는 아이였다. 가붓한 칭찬 한마디에 융숭한 대접이라도 받은 듯 몸 둘 바를 몰랐다. 스무 살, 대학생이 되어 엄마 없이 혼자 옷을 사러 가면서부터 플라밍고가 되었다. 시멘트 담벼락의 갈라진 틈으로 제멋대로 자라 나온 들풀 같은 내 이름의 과거를 온실 속 화초를 키우듯 가꿔주고 싶었다. 새로 태어나듯 새 이름을 짓는 게 아니라 내 이름 그대로 곡진하게 대접하고 싶었다. 제 아이에게 그러는 것처럼 내 이름에게 예쁘고 좋은 것만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서 양 볼 대신 옷에 봉숭아 물을 들였다. 움츠렸던 내 이름이 활짝 피어 ‘반짝반짝 빛나는’ 이름이 되도록. 그때부터 지금까지 ‘바지는 없는 거지?’라는 질문을 호구조사처럼 받을 만큼 다리를 드러내고, 예쁜 종이로 포장하듯 화려한 옷으로 나를 씌웠다. 불량공주 모모코처럼.   

  

 영화 <불량공주 모모코>의 주인공 모모코는 일본의 작은 시골 마을에 사는 17세 소녀다. 읍내 마트에서 짝퉁과 싸구려 옷을 사 입는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모모코는 레이스와 리본이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입고 다닌다. 초록의 논밭을 날개처럼 매단 누런 흙길을 레이스 보닛으로 감싼 머리, 봉긋한 리본 소매, 페티코트를 넣어 솜사탕처럼 부푼 치마, 통굽의 메리제인 구두가 걸어간다. 라켓 위로 공을 튀기듯 통통.      


 삼류 건달 아버지와 술집에서 일하는 어머니, 그마저도 엄마는 모모코를 낳은 산부인과의 의사와 눈이 맞아 가출했다. 얼핏 불우해 보이는 어린 모모코 안을 가득 채운 것이 바로 로코코 정신이다. “인생은 달콤한 과자 같은 거잖아요. 달콤한 꿈의 세계에 푹 빠져들어요. 그것이 로코코의 기본 정신입니다.” 18세기 후반 프랑스에 출현한 예술 사조인 로코코는 장엄한 바로크에 비해 화려한 겉치레가 경박하다는 평을 받을 만큼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한 사람들을 대변했다. 허리를 졸라매고 호흡 곤란을 일으켜도 오직 겉모습의 아름다움을 추구한 로코코의 요란하고도 무구한 정신은 모모코를 달콤한 꿈의 세계로 이끌어 빈틈을 메워주었다. 촌 동네 사람들 눈에 모모코의 모습은 물 잔에 잘못 떨어뜨린 기름 한 방울처럼 동동 떠다니지만 모모코는 그들과 섞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모모코는 화려한 드레스 안에 한쪽 다리를 품고 선 고고한 플라밍고다.      


 모모코처럼 고고한 플라밍고를 표방했지만, 한쪽 다리로 견고하게 자신을 세우고 있는 플라밍고와 달리 서 있는 자세가 잘못되었던 걸까? 언제부턴가 걸을 때마다 골반이 아프고 등허리가 늘 접힌 부채 같았다. 척추의 상태를 알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플라밍고 같은 옷 대신 비둘기색의 병원복으로 갈아입고, 몸 여기저기에 달린 금붙이부터 떼어내야 했다. 땀에 젖어 엉겨 붙은 두 개의 목걸이를 빼는 데 시간이 제법 걸렸다. 애태우며 목걸이의 고리를 푸는 내게 간호사가 말했다. “목걸이랑 귀걸이만 빼세요. 반지랑 팔찌는 안 빼셔도 돼요. 아, 발찌도 괜찮아요.” 왼손 검지에 두 개, 약지에 한 개, 오른손 약지에 한 개씩 끼워져 있는 반지. 왼팔에 한 개, 오른팔에 두 개 채워진 팔찌는 마치 수갑 같았다. 왼발에 걸린 발찌는 족쇄인가. 전신을 훑으며 왼쪽 귓불의 귀걸이 두 개와 오른쪽 귓불에 매달린 귀걸이 한 개를 빼냈다.     


 가까스로 목걸이와 귀걸이를 풀고 X-ray실로 들어갔다. 서서 찍고, 누워서 찍고, 엎드려서 찍고, 옆으로 돌아누워서 찍고, 자궁 속 아기처럼 웅크린 채 다리를 양팔로 감싸 안아 찍고, 개구리처럼 골반을 활짝 벌리고 사진을 찍었다. 그때마다 크게 들이켠 숨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붙잡아야 했다. X-ray는 다리로 시선을 돌려 아무도 못 보게 숨겨놓았던 남루한 속을 투명하게 보여주었다. 진료실로 들어가자 빨래 짜듯 비틀린 척추 사진이 나를 맞아주었다. 플라밍고처럼 고고하게 서 있다고 생각한 것은 완벽한 착각이었다.   

   

 비틀린 척추와 이어진 신경의 상태를 보기 위해 초음파 시술을 해야 했다. 진료대 위에 엎드려 눕자 남자 간호사가 비둘기색 윗옷을 올렸다. 맥주 거품이 차오르다 끝내 흘러내린 듯 비둘기색 고무밴드의 압력에 밀려 삐져나온 옆구리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고무밴드가 엉덩이까지 무심히 내려지자 옆구리는 온전한 하나의 덩어리로 출현했다. 염치없이 여기저기 제멋대로 붙은 살들. 비옥하지 못한 살의 표면. 불꽃무늬 튼살. 다정한 약속도 없이 까발려진 남루한 속살에 황급히 눈을 감았다. 숨바꼭질하는 아이가 자기 눈에 안 보이면 상대에게도 안 보이는 줄 알고 자기 얼굴만 가리듯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의사는 먼지 한 올까지 잡아낼 듯한 조명 아래에서 남루한 속살 여기저기를 초음파 기계로 문질렀다. 환하게 드러난 치부에 나는 스티로폼 판 위에 핀으로 고정된 나비처럼 박제되었다. 진료대 위에 붙박인 내게 의사는 등허리에서 옆구리로 가는 신경이 휜 척추에 눌려서 통증이 생긴 것 같다는 소견을 냈다. 이어 신경 주변의 근막을 넓혀주는 주사를 다섯 군데에 살뜰하게 찔러 넣었다. 이내 등허리와 옆구리 위로 약의 기운이 뜨끈하게 차올랐다. 치료가 끝났다는 말에 황급히 바지춤을 올리고 눈을 떴다. 주사의 통증보다 수치에 놀란 등허리를 부여잡고 곧바로 운동치료실로 옮겨갔다. 양손은 교차하여 가슴 앞에 올리고, 왼쪽 다리는 ‘ㄱ’ 자로 세우고, 오른쪽 다리는 ‘ㄴ’ 자로 굽힌 채 허리를 세우고 앉아 반대쪽으로 골반을 밀었다. 불을 지핀 듯 순식간에 허벅지가 달궈졌다. 전면 거울 속으로 보이는 반지가 눈물처럼 반짝인다. 양쪽 손목에 매달린 팔찌가 진동한다. 왼쪽 발목에 걸린 발찌가 요동친다. 후들대는 몸을 고스란히 받아든 그것들의 떨림이 애처롭다.     


 치료가 끝나고 마스크를 벗었다. 마스크 안쪽에 뭉개진 립스틱 자국이 얇은 포장지의 덧없음을 보여준다. 플라밍고 같은 옷으로 몸을 감싸고 열매처럼 금붙이를 주렁주렁 매달았지만, 알량한 한 꺼풀의 포장지를 벗겨내면 그 속에서 흐무러진 알맹이가 흘러나온다. 비실거리는 속을 공주풍 치마와 열매처럼 매단 액세서리로 연막을 친 것이다. 내 이름 그대로 온실 속 화초로 키워주겠다는 웃자란 마음으로 화초 본연의 성질은 들여다보지 않은 채 화분만 갈아준 셈이다. 살이 찌고 노화하면 곧바로 흐무러질 비실비실한 속을 양분으로 다지지 않은 채 플라스틱 막화분에서 화려한 문양이 양각으로 새겨진 이태리 토분으로 분갈이만 한 것이다. 이름의 고유성에만 지극한 대접을 한 나머지 온실을 거두어내면 바로 시들어버리는 약한 화초로 내 이름을 가꾸었다.    

  

 평소 알고 지내는 시인이 언젠가 병듦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병을 치료하는 동안 머리카락이 죄다 빠지는 것에 대해 그는 “머리카락이 뭐가 중요해?”라고 무심하게 말했다. 머리카락을 잃는다는 것은 병의 통증만큼 고통일 것이라 짐작한 나는 그의 말을 단번에 이해할 수 없었다. 머리카락 따위를 걷어내도 내면의 단단함이 뽑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일 터. 모모코가 이어간 로코코 정신도 보여지는 아름다움에 방점이 찍힌 것은 아니었다. 타인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무람없이 드러내는 것.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가진 힘을 전부 발산하는 것. 모모코가 이어가는 로코코 정신은 화려한 드레스 속에 견고하게 우뚝 세운 자신이다.      


 플라밍고의 꼿꼿한 자태는 홀로 고독함을 즐기는 모양새지만, 실은 무리 생활을 한다. 고고한 플라밍고 한 마리 한 마리가 모여 군집을 이룬다. 일찍이 고독한 인간에 대한 성찰을 마친 모모코는 드레스 속에 한쪽 다리를 품고 누구와도 섞이려 하지 않았지만, 폭주족 양키 소녀와의 연대를 통해 속이 단단해진다. 두 소녀는 서로를 통해 내면의 자기 소리를 듣는 방법을 배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또렷이 알고 치열하게 추구하는  법과 그런 생대를 지지하는 방도 알아간다. 자신만의 행복을 찾기 위해 있는 힘을 다 사르는 소녀들은 고고한 플라밍고 무리다.     


 치료와 운동에 몸과 마음을 내어주느라 집에 돌아오니 옷을 갈아입을 힘조차 없었다. 플라밍고처럼 서 있는 게 아니었다는 허망함이 밀려왔다. 그럼에도 저녁밥을 기다리는 플라밍고 새끼들을 위해 감상에 젖어 들 시간이 없었다. 모모코가 외출할 때 롤리타 장갑을 끼듯 싱크대 안에서 세포처럼 무한 증식한 설거지를 하기 위해 자홍색 고무장갑을 착용했다. 플라밍고 같은 옷을 입고 플라밍고 빛의 고무장갑을 양손에 끼니 겉모습은 완벽한 플라밍고 한 마리였다. 설거지하는 동안 짝다리를 짚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플라밍고처럼 한쪽 다리를 품고 지탱할 나머지 다리가 아직은 단단하지 않다. 씻은 그릇을 포개고 행주를 비틀어 짰다. 행주처럼 척추를 반대로 비틀어 짜 올곧은 축대부터 세워야 한다. 제대로 세운 축대 위에 허리 근육을 채우듯 나를 단단히 다져 넣어야겠다. 내면의 자신을 단단히 굳히고 겉모습을 호화롭게 포장한 모모코처럼 곧게 선 축대 위에 다시 플라밍고 포장지를 씌울 테다. 날갯짓이 온전히 화려할 수 있도록. 나의 아이들과 고고한 플라밍고 무리가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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