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방지턱

피터팬은 운전을 못한다

by 임유진


내게 왕복 8차선 도로의 교차로는 우주만큼 광막하다. 교차로의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가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교차로에 칼집을 내어 장판을 들어 올리듯 세로로 들어 올리고 그 위에 서 있다고 상상해 보자. 대관람차 꼭대기에 정지한 것 같다. 대관람차 꼭대기에서 뛰어내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20년 전 교차로를 통과하지 못하고 횡단보도 위에 멈춰 섰던, 도로주행 시험 날의 나를 이제 와 변명해 본다. 그것은 고소공포증처럼 즉각적인 공포라고. 왕복 8차선 교차로 위의 1톤 트럭은 내게 광막한 우주의 대관람차였다고.


두 번째 도로주행 시험에서 시험관은 내게 합격 도장을 찍어 주며 말했다. 당장 운전하지 말고 나중에 결혼해서 남편이 생기면 그때 운전하라고. 말은 실현의 힘을 가졌다. 실제로 나는 결혼 전까지 단 한 번도 운전하지 않았다. ‘아빠차’에서 ‘애인차’로, 그리고 ‘남편차’로 옮겨 탔다. 아빠 등에서 남편 등으로 옮겨 업힌 것처럼. 결혼 후에도 운전의 필요성이 없는 상황은 아니었다. 지하철은커녕 고속버스보다 더 긴 간격으로 운행하는 시내버스밖에 없는 고장에서 아기를 키우려면 운전은 필수였다.


첫째 아이가 세 살, 둘째 아이가 한 살 때였다. 둘째 아이는 아기띠로 안고, 유모차를 거부하는 첫째 아이를 겨우 걷게 해서 소아과 진료를 마쳤다. 집까지 걸어서 15분 남짓인 거리지만 내내 오르막길인 그 길을 세 살 아이를 걷게 해서 갈 수 없었다. 병원 건물 앞 교차로에서 택시를 잡기 위해 서 있는데 단 한 대도 서지 않았다. 10분, 20분, 30분이 흐르는 동안 세계가 광속으로 나를 지나치는 듯했다. 첫째 아이는 길바닥에 드러누워 울고 6월 초입의 후덥지근한 공기 때문에 아기띠 안의 열기도 점점 높아졌다. 바닥의 보도블록 무늬가 점차 소실점으로 모이고, 세계는 정지된 나를 제외한 채 빠르게 지나갔다. 정수리부터 뜨겁게 땀이 났는데 반대로 차갑게 식었다. 내게서 상한 시루떡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두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닐 무렵, 남편과 운전 연습을 시작했다. (시험관님! 조언이자 당부 같았던 시험관님 말씀대로 남편이랑 운전합니다!) 현대인에게 집과 동급의 가치품이자 필수품인 자동차는 내가 운전면허 기능 연습을 하던 때와 내부가 크게 달라져 있었다. 굳이 발전했다. 운전대 옆에 열쇠를 꽂아 돌리던 구멍은 버튼으로 바뀌었고, 롤러코스터의 안전바 같은 사이드 기어는 위치와 형태마저 달라져 찾을 수 없었다. 기어는 일직선의 P R N D로 단순해졌다. 비록 기능 시험 기어 변경에서 감점을 받았지만, 그것은 속도에 대한 공포였지 기어 자체에 대한 공포는 아니었다. 테트리스 꽂듯 기어를 바꿀 때의 쾌가 사라져 내심 아쉬웠다. 변화로 인한 문제는 운전석에 앉자마자 시작됐다. 기어가 단순하게 변했다고 해서 속도에 대한 공포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남편은 장롱면허 10년 차의 형질을 몰랐다. 그것도 겁이 아주 많은 장롱면허의 실체를 간과했다. 출발하라는 회장님 같은 간단한 지시, 운전대를 왼쪽으로 두 바퀴 반 돌리라는 수학 문제 같은 말이 아니라 브레이크의 위치와 시동을 거는 방법, 언제 어디서 어떻게 거울을 보고 깜빡이를 켜는지 A에서부터 Z까지 차근차근 알려주었어야 했다.


온몸의 모공으로 눈물 같은 땀을 쏟아낸 운전 연습은 방지턱 앞에서 멈추었다. 수분이 다 빠져나간 쪼그라든 몸으로 아파트 출입구를 통과하는데 광장의 가장자리에 유치원 버스가 서 있었다. 거대한 노란색 병아리 바로 뒤는 방지턱. 커다란 장애물이 하나도 모자라 두 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이었다. 나는 방지턱 위에 올라탔다. 뜀틀을 넘지 못해 뜀틀 위에 다소곳하게 앉았던 중학생 때처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남편은 경악했지만, 나는 운전 따위 더는 못 하겠다고 운전석에서 내려 뒷자리로 옮겨 탔다. 거대한 병아리에서 내린 작은 병아리들이 제 엄마의 손을 잡고서 나란히 나를 쳐다봤다. 횡단보도 위에 멈춰선 채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초리를 가만히 받아냈던 그날처럼. 고작 5cm 높이의 턱이 내게는 6단 뜀틀보다 높았다.



우주의 대관람차 쇼를 펼쳤던 그날 도로주행 시험에서 나는 그 학원의 유일한 불합격자로 기록됐다. 20만 원을 추가 결제하며 목이 멨지만, 어쩌면 남몰래 안심했을지도 모른다. 유예되었다는 안심. 신호등만 잘 보고, 내 차선만 잘 따라간다면 된다는 운전의 기본 원칙은 간명하지만, 빨간불과 파란불이 지시하는 명징한 신호등 앞에서도 내 몫의 판단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어느 차선으로 가야 할지, 속도를 올려야 할지 내려야 할지, 모든 길은 내 선택에 따라 가름된다. 운전면허 도로주행 불합격은 그 선택의 공포에서 유예된 것이다.


운전은 선택의 연속이다. 어른의 일이다. 선택하고 결정하고 책임지는 어른의 일. 나는 그 어른의 일에서 유예되고 싶었다. 운전을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게도 내 몫의 선택과 결정이 두려워서다. 방향도 멈춤도 오롯이 자신의 선택에 달렸으니까. 선택하지 않으면 실패도 하지 않을 테니까. 안 한 것이지 못한 게 아니니까. 좋은 대학을 못 간 게 아니라 재수를 안 한 것으로, 취업을 못 한 게 아니라 결혼한 것으로, 턱을 넘지 못한 게 아니라 안 넘은 것으로 꾸몄다. 틀릴 일이 없도록 아무것도 안 하는 것. 나는 선택 공포증을 왕관인 양 쓴 채 어른 되기를 방지하는 턱을 뜀틀보다 높게 쌓았다.


어른 방지턱은 여전히 견고하다. 생리량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고도 병원에 가기로 결심하는 데 1년, 진료를 예약하는 데 다시 3개월이 걸렸다. 의사는 자궁근종이 내막을 눌러 생리량이 많은 것이라고 진단했다. 6개월 치의 철분제를 처방해 주며 철분제를 먹는 동안 수술 여부를 결정하라고 했다. 철분제가 한 통 남았을 때, 나는 서랍 속 철분제를 못 본 척했다. 철분제가 남아 있으면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되니까. 오롯이 혼자서 해야 하는 선택 앞에서 내 선택은 방지턱에 멈춰 앉는 것이었다. 피터팬의 척력은 힘이 세다. ‘운전을 못 하는 것도, 생리량이 많은 것도 생활이 조금 불편할 뿐이지 큰일은 아니잖아?’ 유예를 한참 지나친, 분명한 회피라는 것을 알지만, 뜀틀을 뛰어서 건너지 못하는 사람, ‘그냥 해 보자!’가 안 되는 모양의 사람도 있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고 해서 언제고 아이일 수 없듯이 틀리기 싫다고 문제를 풀지 않으면 시험은 끝나지 않는다. 방지턱에 올라앉은 후로부터 나는 늘, 언제나, 항상 걸어 다니는 사람이다. 독감에 걸려 고열이 나도 걸어서 병원에 가는 사람. 대파와 두부를 책이 든 숄더백에 꽂고 오르막을 걸어 올라가는 사람.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들을 다 만나는 것처럼, 나도 자꾸자꾸 걸어 나가면 언젠가 어느샌가 방지턱을 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발바닥으로 직접 느끼는 5cm 턱은 발 아치에 꼭 맞아서 덜커덩거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걸어가는 어른도 있는 거니까. 다만 아주 천천할 뿐. 나는 뜀틀을 걸어서 건너는 사람. 나의 활강은 서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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