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야말로 딱 선생님이지.”
오랜 지인은 최근에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자신이 공부했던 책을 내게 건네주며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올해 끝나기 전에 시작해. 너는 정말 잘할 거야. 아무것도 안 하기에는 아까워.” 보험왕의 큰 그림 설계도 아니고, 다이아몬드를 향한 다단계의 유혹도 아니었다. 타인의 부탁을 제대로 거절하지 못하는 내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지인이다. 지인 또한 부탁을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하는 만큼 타인에게 무엇을 부탁하는 일이 없다. 지인의 말과 마음은 문장 그대로 내게 ‘좋은 것’을 권유하는 것이었다. 노란불에서 어영부영하다가 내내 빨간불에 서 있는 내게 파란불을 켜주려는, 지인의 다정한 마음이었다.
신호등은 명징하다. 빨간불일 때 멈추고, 파란불일 때 간다. 빨간불에 가거나 파란불에 멈추면 안 된다는 것이 명백하게 규정되어 있다. 인생에서 많은 순간 선택의 기로마다 신호등이 켜지기를 바랐다. 가야 할지, 멈춰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을 때 신호등이 나타나 지시등을 분명하게 켜주기를 바랐다. 명징한 신호등에 무지렁이 같은 불순한 판단이 섞일 여지는 없으므로 선택은 정확할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짜 삶에서 선택의 순간에 구원의 신호등은 켜지지 않는다. 스스로 교통 신호제어기가 되어 구간마다 지시등을 켜야 한다. 가, 나, 다 군의 대학 가운데 A 대학에 원서를 낼지 B 대학에 원서를 낼지. 같은 날 치러지는 9급 공무원 시험에서 국가직을 선택할지 지방직을 선택할지. 빨간불과 파란불의 버튼을 스스로 눌러야 한다. 간다. 선다. 두 가지의 선택. 모든 순간이 선택이고, 선택한 후의 결과는 오롯이 혼자 감내해야 한다. 고스톱판의 고독한 승부사처럼. 갈림길에서 어영부영하다가는 노란불에 걸려 횡단보도 한가운데에 유배되고 만다.
가, 나, 다 군의 대학을 비교할 것도 없이 도내에서 가장 평판이 좋은 A 대학에 가고 싶었다. 선생님과 학생 사이에서 원서를 뺏고 뺏기는 살풍경 같은 것은 연출되지 않았다. 어중간한 점수를 받은 내게 담임 선생님은 알아서 원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원서 접수 마감까지 어영부영하다가 결국 수능 점수별 대학 배치표에서 내가 받은 수능 점수 아래 칸에 있는 학과를 골랐다. 점수가 간당간당해서 더 내릴 것도 없었지만, A 대학에 무조건 붙어야만 한다는 생각에 한껏 낮은 자세로 ‘안정 지원’을 했다. A 대학에 불합격했을 때를 대비해 B 대학에는 더 큰 폭으로 ‘하향 지원’을 했다. 결과는 손모가지를 내놓는 쪽. 붙을 줄 알았던, 붙어야만 했던 A 대학에 나는 떨어졌고, 결국 내 점수보다 20여 점이 낮은 B 대학교의 02학번이 되었다.
B 대학에 재학 중이던 4년 동안 시류는 ‘안전’과 ‘안정’으로 흘렀다. 이른바 철밥통, 공무원 시험이 대학가를 팽배하게 지배하는 시기였다. 전공과 관계없이 너도나도 준비하던 9급 행정직 공무원 시험에 전공과 일말의 관련이 있던 나는 당연한 수순인 듯 탑승했다. 당시의 대통령은 양질의 일자리가 없는 국가의 현실보다는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치를 수 있는 시험’에 대학생들이 몰리는 사실에만 개탄했다. 대통령의 지시대로 공무원 시험에 고등학교 수학, 사회, 과학 과목이 도입되기 전에 합격해야만 했다. 그해 공무원 시험은 국가직이 경쟁률이 더 높을 거란 내 예상을 뒤엎고 지방직 시험에 사람들이 몰렸다. 독박이었다.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1종 보통 면허를 따기 위해 마지막 과정인 도로 주행 시험을 치를 때였다. 속도를 20에서 30으로 높여야 하는 기능 시험에서 감점을 당한 나로서는 실제 도로에서 주행은 극한의 공포였다. 시내를 달리는 A 코스와 한적한 길이 섞인 B 코스 중에 뽑은 공은 A 코스였다. 1톤 트럭의 문을 열고 손잡이를 잡고 차에 올라탔다. 오른쪽 자리에 앉은 시험관의 안내를 듣고, 나와 시험관의 중간에 앉은 다음 수험생을 확인했다. 브레이크를 밟고 열쇠를 돌렸다. 손등으로 인중의 땀을 한 번 훔치고 사이드 기어를 내렸다. 중립 기어를 1단에 넣고 핸들을 돌리며 운전면허 학원의 내리막을 내려와 도로에 진입했다. 부러 통풍이 잘되는 원피스를 입었지만, 의자에 닿은 허벅지는 이미 땀으로 축축했다. 사건은 왕복 8차선 도로의 교차로에서 터졌다. 교차로는 가까워져 오는데 신호등은 저 멀리 있었다. 광막한 우주 같은 교차로를 제 신호에 무사히 건널 수 있을까 걱정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횡단보도에 막 들어섰을 때 신호등은 노란불로 바뀌었다. “어… 어….” 그대로 횡단보도를 지나 교차로를 건넜다가는 양쪽에서 오는 차에 받혀 납작해질 것만 같았다. 나의 선택은 정지. 도로주행 푯말을 붙인 흰색 1톤 트럭은 횡단보도 위에 급하게 멈춰 섰고 그 순간 눈앞의 신호등은 빨간불로 바뀌었다.
독박을 쓸 때마다 나는 신호등을 잘못 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생의 행로를 바꾸는 선택의 순간을 이제 와 돌이켜볼 때, 파란불이 맞았다 빨간불이 맞았다 확언할 수 없다. 선택의 순간마다 ‘준비되지 않은 내’가 변수로서 자리하고 있으니까. 변수의 상태가 변하지 않고 상수가 되어 버린 한, 노란불에서 어영부영하다 횡단보도에 걸터앉은 채 보행자들의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다. 두 손으로 핸들을 부여잡고 거북이인 양 얼굴을 핸들 깊숙이 파묻어도 상황은 해결되지 않는다. 노란불의 유배지는 행렬의 마지막 눈초리까지 오롯이 받아내게 한다.
그날 도로 주행 시험에서 나는 그 운전면허 학원의 유일한 탈락자였다. 시험이 끝난 후 아빠 카드로 20만 원을 추가로 결제하고 4시간의 도로 주행을 더 받은 후 운전면허 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시험관은 내게 선심 쓰듯 합격 도장을 찍어주며 말했다.
“합격을 주기는 하는데… 운전은 지금 바로 할 거 아니죠? 나중에… 결혼하고 남편도 생기면 그때 다시 배워서 하세요.”
지금 나는 건널목에 서 있다. 건널목의 신호등이 바뀌었을 때, 건너도 되고 건너지 않아도 된다. 선택은 오롯이 나의 몫. 노란불에서 어영부영하다가 또다시 빨간불에 멈춰 설지 파란불에 떠밀리듯 가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빨간불의 정지 신호를 차에 탄 상태로 횡단보도 위에서 지키지는 않을 것이다. 변수는 오로지 나 자신이다. 나라는 변수에 변화가 없는 한 선택도 결과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운전면허에 합격해도 운전할 수 없는 것처럼.
횡단보도에 멈춰 서 어쩔 줄 몰라 하더라도 교통경찰이 나타나 에스코트를 해주지 않는다. 신호는 잠시 후면 바뀔 테니까. 빨간불과 파란불 사이, 노란불의 유배지에서 오른쪽 페달 위에 발을 올린다. 왼쪽은 브레이크, 오른쪽은 액셀을 제대로 기억하고.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