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온몸으로 느끼고 마음은 독하게 먹기
시간은 정말 빠르다. 작년한해는 정신없이 엄마의 병원생활을 팔로업했던 것 같은데, 어느새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말로, 글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 다시 한번 부모님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이 글을 쓰며 다짐한다.
오늘은 암환자 가족의, 암환자 보호자의 멘탈관리에 대해서 적어보려 한다. 암환자의 보호자로서 겪는 감정들은 매우 어렵고 힘들다. 보호자는 환자를 돌보는 것뿐 아니라 스스로의 감정과 몸 또한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보호자의 태도가 환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무척 크기 때문에 보호자는 단단해지는 것이 필요하다. 엄마가 처음 암에 걸렸을 때, 소식을 들은 지인들은 '잘 먹고 기운 차려야 간병도 잘하지'라는 말을 했다. 썸남이랑 관계가 틀어져도 입맛이 떨어지는데,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병에 걸렸는데 어떻게 잘 먹을 수 있을까? 슬픔에 휩싸여 블로그 후기들을 읽고,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찾아 때로는 안심하고 공감하고 더 큰 슬픔을 느끼기도 했다. 이런 과정들을 반복하다 보면 삶이 피폐해진다. 그래서 내가 정한 원칙은 딱 두 가지였다. 아주 간단한다. 슬픔을 온몸으로 느끼고, 그리고 그 외의 상황에서는 평소보다 더 독해지자. 였다.
슬픔을 온몸으로 느끼기
가족이 아프게 되면 해당 병에 대한 정보를 찾기 시작한다. 역설적이게도 병에 대해서 찾으면 찾을수록 좋지 않은 이야기들을 많이 보았다. 카페에서 자주 글을 썼던 사람이 어느 순간 사라져 있으면 그 사람이 작성했던 글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지금 잘 계시는지, 재발은 안 됐는지, 완치가 되었는지 궁금하다. 상황은 반반이다. 상태가 좋아져 다시 카페에 들어올 일이 없거나, 혹은 그 반대이다. 이렇게 많이 보고 알수록 슬퍼진다. 이때 나는 슬픔을 온몸으로 느꼈다. '별일 없을 거야, 아닐 거야'라고 생각하고 믿고 행동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그 반대도 생각하며 마음을 졸이고 슬퍼했다. 이 감정을 너무 숨기고 회피하지 말자. 누구나 그럴 거니까. 나는 이때 충분히 슬픔을 느끼는 것을 추천한다. 친한 회사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런 슬픔과 힘듬은 혼자 극복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주변의 유대와 조금이나마 따뜻한 마음들이 나를 더 위로해 줬다. 내가 환자인 엄마를 위로하듯이, 위로의 감정을 쏟아붓듯이, 나도 누군가에게는 그 감정을 받아야 적어도 내가 탈이 나지 않고, 또 엄마를 신경 쓰고 챙길 수 있었다.
평소보다 독해지기
충분히 슬퍼했다면 독해지자. 슬픔을 충분히 느끼고 나서는, 이제 독한 마음으로 일상생활에 집중해야 한다. 환자를 돌보는 데 필요한 에너지와 기운을 유지하기 위해, 평소보다 더 강한 마음을 갖추자. 나는 운동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나만의 기준을 정해 삶을 루틴하게 만들었다. 암과 관련된 정보성 글은 읽을 수록 끝이 없다. 스스로 자제하며 대중교통을 이용할때, 잠자기전 20분 정도만 정보를 찾고 더이상 보지 않았다. 의도적인 차단이 도움이 많이 됐다. 또 정기적으로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지고 친구들과 소통하며 생활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렇게 하면 보호자 스스로도 정신적으로 건강해지고, 환자에게 더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환자 또한 나 때문에 가족 구성원이, 보호자가 힘들고 슬픔에 젖어있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환자가 괜한 죄책감, 미안함에 휩싸일 수 있기 때문에 보호자 스스로 자신의 역할을 잘 하는 모습을 의도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결국, 암 환자의 보호자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정신 건강을 잘 관리하는 것이다. 멘탈관리를 위해 슬픔을 충분히 느끼고, 독한 마음으로 일상생활에 집중하면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 나 또한 사랑하는 엄마 곁에서 이와 같은 방법으로 멘탈을 잡을 수 있었다. 나도 했으니 누군가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