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우리의 보물선
지하철역 2번 출구로 나와서 좌회전 후 두 번 째 나오는 고물상에서 우회전을 하면 새로 이사갈 집이라고, 이 집의 위치를 기억해 두었었다.
집 근처에 고물상이 있다면 좋아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다른 이유는 차치 하더라도 일단 보기에 지저분하니까.
하지만 고물상은 나에겐 늘 호기심을 발동 시키는 장소였다.
고물상 마당에서 옹기종기 앉아 고물을 정리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같이 앉아 오래되고 쓸모없이 버려진 물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히곤 했다.
나는 새 것이 풍기는 느낌보다 오래되고 손때 묻은 것들이 자아내는 느낌을 좋아한다.
나의 첫 번 째 전공은 실내건축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인테리어 디자인 쪽 일을 하면서 논현동과 을지로, 청계천과 고물상을 오갔다.
논현동과 을지로는 새것을 사기위해 그리고 청계천과 고물상은 헌것을 사기위해서였다.
새것들은 으레 그럿듯 눈부신 조명 아래 눈에 띠게 진열되어 있지만 헌것들은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자신의 쓸모를 알아봐 줄 누군가를 기다렸다.
청계천에선 디스플레이를 위한 소품들을 구입했다. 예를 들면 낡은 턴테이블이나 클래식한 장식의 거울과 같은 것들. 그리고 고물상에선 오래된 마루나 문짝, 지금은 구하기 힘든 나전칠기 가구등을 찾아 재활용을 했다.
오래된 마루는 낡고 흠집이 많지만 그 만큼의 세월동안 입혀진 왁스와 손길로 새 마루가 내지 못하는 깊이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빈티지한 카페의 바닥 마감으로 종종 쓰이곤 했다. 헌 문짝이나 나전칠기등의 가구 역시 합판을 덧대어 만드는 요즘 제품과 달리 오래된 원목이 지닌 정직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어서 윈래의 용도는 아니지만 액자나 파티션 등으로 리폼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새것은 언제 어디서든 살 수 있기 때문에 굳이 그 상품이 아니어도 대체가 가능하다. 하지만 헌것들은 애써 찾아야 하는 수고가 필요하고 바로 그 물건이 아니면 안되는 것들이다. 세월의 더께는 어느 공장에서도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경험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내 눈에 고물상이 보물선으로 보이는 건.
그래서 나는 내가 살 동네에 고물상이 두 곳이나 있는 것이 무척 반가웠다. 물론 한 번도 용기내어 고물을 정리 하는 사람들 틈에 껴 보진 못했지만.
이 곳으로 이사오고 1년 반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이 동네에서 5년이 넘도록 계속되던 경전철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길가에 있던 고물상 두 곳이 모두 사라졌다.
이제 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도 아니고 굳이 고물상을 이용할 일도 없는데 그 사실이 퍽 섭섭하다.
사라진 고물상 자리에서 이제 폐지 줍는 할머니들은 어디까지 가서 고물을 파실까? 하며 걱정을 중얼거리기도 하고 입지 않는 버릴 옷들을 쌓아 놓고는 이제 고물상이 없으니 이것들은 그냥 버려야 하겠지? 라며 혼잣말로 불평을 늘어 놓기도 한다. 이제껏 그냥 다 버렸으면서 말이다.
고물상이 사라져 버린 것을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아서, 고물상이 사라져 버렸다고 섭섭해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아서, 그리고 고물상이 보물선이기도 하다는 것을 모두 잊어버릴 것 같아서 나는 자꾸 고물이 사라져버린 자리를 마음으로 더듬는다.
경전철이 들어서고 이 동네가 아무리 좋은 곳이 되어도 없는 사람들에겐 오히려 그것이 아픔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이가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