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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주혜 Jul 18. 2023

갇힌 생명

정대건 <급류>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아. 그녀는 종종 이런 말을 반복했다. 그녀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녀가 이런 말을 남기고 내 곁을 떠난 날 밤이면 나는 혹시나 그녀가 내일 아침 죽은 채로 발견될까 두려웠다. 그녀가 죽음을 이야기할 때마다 그녀를 괴롭히는 그 원수 같은 것들을 찾아 그것이 무엇이든 없애버리고만 싶었다. 그런 말들이 반복되기라도 하는 날이면 나도 이러다가 함께 죽는 게 차라리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할까 겁이 났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혹시나 이야기가 끝나면 그녀가 사라지고 없을까 봐. 두려웠다.


언젠가 그녀는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던 것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조심스러워서 물어보지 못한 말이었는데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녀의 부모님은 자주 다툼이 있었다. 단순히 말싸움으로 끝나는 게 아닌 폭력과 폭언이 난무한 전쟁과도 같은 상황이었다. 부모님이 싸울 때마다 그녀는 가야 할 바를 몰랐다. 좁은 집 안에서 벌어진 일. 거실에서 갑자기 싸움이 일어나면 방으로 가야 할지 화장실로 가야 할지 몰랐다. 어디로 가도 서로를 비난하는 소리는 들렸기 때문이다. 한 번은 문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가 문 밖으로 나가려 하자, 그녀의 엄마가 계속해오던 비난의 화살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너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된 거잖아. 어딜 가.


그녀는 갇혀있었다. 이곳은 전쟁이지만 전쟁과 같은 현실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우리 집이 물에 잠겨 모두가 다 사라져 버리면 어떨까 하는 상상도 했다. 문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날이 길어지고, 화장실이나 방도 너무 비좁게 느껴질 때면 그녀는 작은 방에 창문으로 달을 봤다. 재개발로 집 앞에 아파트가 들어서면 이 달마저 가릴까 두려웠고, 그땐 정말 갇혀버리게 되는 거니까. 그녀는 그렇게 차라리 죽은 게 나을 것 같다는 말을 생각했다. 죽음이 비로소 내 영혼이라도 저 멀리 보내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세월이 흘렀다. 그녀가 여전히 갇혀 있는지 궁금했던 나는 어린 시절의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녀는 벗어나고 싶었지만 요즘도 쉽지 않다고 했고, 경제적으로 독립했으니 이제 그녀 자신의 가족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녀가 죽지 않고 다시 스스로의 삶을 살아줘서 고마웠다. 여전히 내 곁에서 우리가 그렇게 서로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녀는 말했다. 갇혀 있는 삶을, 그게 누구든 무엇이든 보고 싶지 않다고. 나는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내 대답을 듣고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아니, 지금도 죽어야 나은 삶들이 나에게는 너무 잘 보인다고.


장마가 길다. 운전을 하다가 갈길을 잃은 누군가는 쏟아지는 폭우에 잠시 차를 세웠다. 갑자기 덮친 토사로 꼼짝없이 갇힌 그는 몇 시간 뒤 숨을 거뒀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물속에 갇혀 있는 동안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약 63만 마리. 이번 장마로 가축들이 죽었다. 밤새 내리는 비에 갑자기 축사에 물이 차올랐다. 물은 위에서도 쏟아졌지만 아래에서도 역류했다. 축사 옆에 흐르던 뚝이 무너졌다. 재방을 넘어 물이 차올랐다. 축사에 있던 소와 돼지들, 오리들과 닭들, 염소와 양들은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쇠창살 너머의 들을 바라봤다. '나는 저기로 갈 수 있는 다리가 있는데, 얼마든지 뛰어갈 수 있는데'를 생각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틈이 없다. 제자리에서 앉았다, 일어났다만 평생 반복했던 돼지는 옆 자리에 있는 다른 돼지들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함께 울었다. 우리도 뛰어갈 수 있는데라고 울부짖었다. 그러나 그들은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사방이 막혀있다. 오래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고, 이렇게 다 죽어나가는데도 여전히 그럴 것이라는 걸 체념한 동물들은 속절없이 죽었다.


다음날 뉴스에는 축산 농가 농민들의 허탈함을 보도했다. 재산피해규모라는 헤드라인이 눈에 띈다. 급하게 대피한 축산 농가 농민들은 전 재산을 잃었고, 동물들은 생명을 잃었다. 모두가 다 애통한 일이지만 생명에 대한 애도는 어디에도 없다. 동물들은 그저 죽기 위해 태어났었기 때문이다.


함께 뉴스를 보던 그녀는 말했다. '저기 있네' 마시던 커피를 마저 마셨다. 다시 비가 내렸다. 그녀는 다시 말했다. '죽는 게 나을 것 같은 생명들 저기 있잖아. 이제야 자유를 찾았으니 이 폭우가 다행인 건가. 적어도 뛰게는 해줬어야지'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생명으로 어떻게 다를 수 있는가, 두려움을 피해 잠겨 있는 문을 열고 나가고 싶은 마음은 본능이 아니던가. 우리는 왜 동물들의 죽음을 '재산피해' 정도로 치부하는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 장마가 내 마음속 눈물과 같았다.


최근 정대건 작가의 <급류>를 읽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어버린 두 남녀가 그 슬픔에 속박돼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자유를 스스로 허락하지 않았다. 그 속박은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을까, 자유가 무엇인가를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처럼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고 벗어날 수 없는 한계였다. 그런 두 사람이 그 속박을 끊어낼 수 있었던 건 자신의 존재와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한 확신을 더 견고히 했을 때였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존재야. 그건 결코 변할 수 없는 마음이야.라는 그 확신. 그것은 두 사람의 속박을 해결하는 열쇠였다. 두 주인공은 두 발로 뛰어서 서로에게 가고 싶었다. 그러나 급류 때문에 만들어진 죄의식이라는 쇠창살이 그들을 막고 있었다. 두려움이 몰려올 때 오히려 자유를 찾아 서로에게 간다면 더 빨리, 더 쉽게 사랑을 이뤘을 두 사람을 마주하며 나는 자유에 대해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소설 속 두 주인공이 서로를 향한 마음을 찾아서 다행이었다. 나의 오랜 친구인 그녀가 '자신만의 가정'이라는 새로운 여정을 찾아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물에 갇혀 결국 죽어버리고 만 생명들에 대하여는 우리가 과연 이대로 계속해서 생명에게 자유를 빼앗아도 되는 건가 하는 의문과 비통함이 남았다. 우리는 모두 태어나고 죽는 생명으로 존재한다. 생명인 내가 이토록 자유로울 수 있었던 건 급류, 장마를 잘 이겨냈기 때문이 아니다. 몰아치는 폭풍우에도 저 먼 들을 보고 가야 할 곳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누구도 더 이상 막지 말아라. 생명을 가두지 말아라. 외친다.



안녕하세요, 임작갑니다.

긴 장마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슬픔에 잠긴 분들이 계십니다. 모든 슬픔을 함께 할 수는 없겠지만 제가 있는 자리에서 애통하는 마음을 갖겠습니다. 폭우로 목숨을 잃은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바로 오늘 저녁 뉴스 헤드라인으로 등장한 축산 농가들의 상황을 보도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피해 규모가 더이상 커지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저는 채식주의를 열심히 실천하는 비건은 아닙니다. 그러나, 공장식축산환경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는 오랜 역사 속에서 사람이 고기를 먹기 위한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고 실제로 많은 분들이 이런 시스템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바로잡기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도, 많은 사람들의 갈등을 동반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자연의 가장 자연스러운 섭리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공장식축산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방법들이 있고 이미 많은 곳에서 실천하고 있다는 정보도 읽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에 대해 저만의 글로 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분명 길이 있기 때문이죠. 쉽지 않겠지만 적어도 동물들이 사는 날 동안 그야말로 살아가는 동물들의 생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인간은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이란 우리의 생각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소설을 읽으면 생명과 사랑,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고민을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시작은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때 가능한 것이겠지요.


모든 생을 위로하며 글로 남길 수는 없지만 먼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서로가 서로를 위로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변할 수 있습니다.

생명이 생명으로 살아가는 세상을 꿈꿉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줄이겠습니다.

저는 제가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계속하겠습니다.


#공장식축산반대

#장마 #삼가고인의명복을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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