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주혜 Mar 08. 2023

유아인님께

안녕하세요 유아인배우님. 저는 대구에 살고 있는, 당신이 출연했던 영화를 보며 때론 행복했던 평범한 관객 중 한 사람입니다. 최근 유아인씨가 작품이 아닌 뉴스에 자주 등장하셔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저는 사실 다른, 사람의 인생 따위 관심도 없고 그럴 여력도 없어서 당신의 소식을 뉴스로 접했을 당시에도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슈가 쉬이 잠잠해지지 않고 사람들의 이야기는 더 커지고 있는 현실에, 제 주변에서도 온통 당신의 이야기뿐이라 저절로 마음이 쓰였습니다. 제가 대구에 살고 있어서 특히나 제 주변에서는 당신이 이곳에서 자라 이젠 멋진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것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당신이 부럽다는 사람도 있고 응원하는 사람도 있고요, 질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각자 자신의 모양대로 당신의 삶을 바라보고 있죠. 당신에게 애정이 있는 사람들이었기에 최근 유아인씨 소식은 더 큰 충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관심 있게 지켜본 만큼 실망도 컸던 법이겠죠. 


제가 이렇게 편지를 쓰는 이유는 유아인씨는 모르지만 유아인씨를 알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유아인씨에게 벌어질 앞으로의 일들을 지금처럼 지켜보고 응원해주고 싶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서입니다. 실수라 하기엔 반복적이었고 반복하면서 끊고 싶었겠지만 그럴 수 없었을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자신의 모습이 어떤 건지 알 수 없었고 허무함의 연속이었고 무엇으로도 그 공허함을 채울 수 없었고 그렇기에 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반복했고 모든 것이 있었지만 모든 것이 없는 것 같았고 잘해보고 싶은 만큼 잘하는 게 무엇일지 고민했을 당신이 매번 찾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시작은 그저 호기심이었을지 모르지만 호기심은 욕망을 넘어 자신을 집어삼켰을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것을 중독이라 하니까요. 


유아인씨가 저지른 불법에 대해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 당신이 저지른 일은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연약함 가운데 머물고 있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절망을 안겨줬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유아인씨는 그대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인정하고 반성하고 죗값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죽을 만큼 힘들겠지만 그대가 지난 2년간 머물렀던 그 굴레에서 이제, 끝내 벗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저는 그대를 책망하는 것에서 그치고 싶지 않습니다. 여전히 허무함에 사로잡혀 인생에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거리에서 서성이는 당신과 같은 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성공을 지칭하는 수많은 말들에 휘둘려 자신의 삶을 자신이 이끌지 못하고 타인이나 약에, 사회의 요구에 맞춰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곧 당신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언젠가 당신이 말했습니다. 신발장에 꽉 차 있는 신발들을 보면 무언가 마음이 채워지는 것 같았는데, 그다음은 없었다고요. 그래서 다시 비우기를 시작했는데 그렇게 비우니 무엇인가를 또 채워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요. 그 이야기를 담담하게 전했던 당신의 모습을 보며 나는 내 삶에 무엇을 채우고 있을까, 를 생각했습니다. 어디로 걸어가는 신발을 모았던 당신과 다르게 나는 어디라는 목적지를 정한 삶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했습니다. 갈 바를 알지 못했던 저는 때로 갈 바를 정해두지 않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여겼고, 무엇을 채우려 하기보다 그저 오늘의 나를 생각하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의 삶이라는 것도 생겼고요. 세월이 지났고 당신의 이야기가 그렇게 제 삶에서 잊힐 무렵, 유아인이라는 사람도 이젠 신발이든 뭐든 다른 것들을 채우고 살겠지 싶었습니다. 또다시 허무하게도 내가 기대했던 바가 아니었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수 있습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헤매는 당신을 사랑했던 당신의 사람들, 당신이 모르는 사람들도 어쩌면 당신이 그렇게 공허했기에 사랑했던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무엇이든 이것이 끝이고 모든 것이 끝났고 다시는 그 어떤 것도 없을 거라는 생각은 안 했으면 합니다. 죗값을 받은 후 앞으로 당신이 진짜 해야 할 일들을 꼭 찾아 해내기를 바랍니다. 젊은 날이든 노년이든 삶에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먼지가 되어 흩어지지만 그 흩어짐도 지구의 필요충분조건으로 존재합니다. 같은 지구에 있고 한글을 읽는다면 우리는 이미 많은 삶을 함께 하고 있는 걸 겁니다. 즉 당신의 삶은 당신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거죠. 


지금 당장 허무함을 넘어 절망감이 몰려온다 해도 당장 오늘에 집중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을, 그러니까 당신의 미래를 우리가 함께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악한 굴레에서 나오세요. 그리고 다시 꼭 사세요. 어디서든 무엇이 되어서든 말입니다. 이 편지가 당신께 닿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미 없는 저의 생각일 뿐일 수도 있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당신을 바라본 사람들에게나마 이 글이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용기를 냅니다. 뿌리가 없는 꽃은 물을 아무리 새롭게 갈아준다고 해도 언젠가 시듭니다. 그러나 땅에 뿌리를 둔 꽃은 다 지고 죽은 것 같지만 살아있습니다. 뿌리 없는 생명은 없습니다. 심지어 우리는 각자의 아름다운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아름다운 꽃이지요. 그리고 유아인씨 당신은 누군가에겐 더 아름다운 꽃이었고 뿌리였습니다. 당신의 삶이 시들거라 생각하지 마세요. 당신의 뿌리를 떠올리세요. 그 어떤 것도 아닌 당신이 생명으로 아름다운 꽃으로 살아가기를 저도 또 하나의 생명으로 존재하며 어디선가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keyword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