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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주혜 Oct 17. 2023

마주하는 이야기

[연재] 생명으로 우리는 귀엽다

나는 내 남편을 열받게 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한 참을 이야기하다가 '아, 아니다 다음에 이야기할게!'라고 하면 된다. 남편은 그런 상황을 매우 답답해한다. 그다음 무슨 말을 하려고 다음에 이야기한다는 건지 그게 궁금해서 참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대화였음에도 '아니야~ 하려던 말을 잊었어.'라고 하면 내가 그 말을 생각해 낼 때까지 생각해 내라고 재촉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남편의 태도가 좀 달라졌다. 내가 뒤에 하려던 말을 줄여도 별로 궁금해하지 않는 눈치다. 궁금하다고 해도 참고 있는 것 같다. 남편의 태도가 왜 바뀌었을까를 생각했다. 아마도 그 일 때문이었으리라 짐작하고 있다.


어느 날 우리 집 반려견 고동이가 한 밤 중 갑자기 일어나 나와 남편이 있는 침대 위로 올라왔다. 잠 귀가 밝은 나는 고동이의 인기척에 잠에서 깼다. 아직 눈을 떠서 확인하지 않았지만 나는 고동이가 곁에 왔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고동이는 점차 나와 남편의 사이로 파고들었다. 이불에 얼굴을 비벼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고동이가 동작을 멈췄다. '그냥 갑자기 우리 곁으로 오고 싶었던 걸까' 하던 찰나에 나는 이상함을 느꼈다. 고동이가 그대로 계속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숨도 쉬지 않는 것 같았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나는 불을 켰다. 고동이의 몸이 점점 굳고 있었다. 나는 너무 당황하며 소리를 질렀고 남편을 깨웠다. 남편은 본능적으로 고동이를 살폈고 고동이의 기도를 확보했다. 그리고는 온몸을 열심히 주무르기 시작했다. 나는 옆에서 '갑자기 몸이 굳는 개'와 비슷한 검색어를 미친 듯 검색했다. 고동이가 잠시 몸이 풀어지는 것 같더니 그대로 온몸을 떨었다. 몇 차례의 떨림은 그렇게 10분쯤 계속됐고 떨림이 조금씩 잠잠해지더니 잠시 후 고동이는 그날 먹은 음식을 모두 토했다. 토를 함과 동시에 고동이는 안정을 취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그날 거의 밤을 지새웠다. 언제 또다시 고동이의 몸이 굳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음날 아침 일찍 나는 고동이를 데리고 동물병원으로 갔다. 고동이 상태를 확인한 의사는 정밀 검사를 권했고 고동이는 MRI와 CT를 모두 찍었다. 결과적으로 고동이에게 특별한 병이 발견되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앞으로 고동이의 상태를 지켜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만약 떨림이 계속된다면 뇌에 이상이 있다는 것이 분명한데 이럴 경우에는 평생 약을 먹어야 하고 약을 먹는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의사의 소견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병은 개들에게는 흔한 질병 중 하나였다. 원인을 알 수 없고, 강아지가 스스로 놀라고 고통스럽지만 완벽한 치료법은 없는 병이었다. 언제 다시 몸이 굳을지 모르는 이상한 병이다. 우리는 고동이의 병이 어떤 것인지 알아내기까지 그리고 특별한 치료법이 없다는 사실을 알기까지 몇백만 원의 돈을 지불했다. 고동이가 아프면 큰돈을 지불해야 하는 부담도 있지만 그 돈의 가치가 고동이의 건강을 회복할 만한 가치였으면 했다. 만약 그렇기만 하다면 큰돈이 부담이지만 단 한 푼도 아깝지 않았다. 그렇지만 앞으로 고동이가 겪어야 할 일들은 딱히 해결책도 없는 일이 아니던가. 우리는 고동이의 선한 눈빛을 보며 안타깝기도, 미안하기도 했다. 그렇게 폭풍우 같은 하루가 지나고 또다시 우리의 날들은 평범하게 흘러갔다.


어쩌다가 고동이가 같은 증상으로 아픈 날이면 나는 몇 차례 병원에 갔지만 특별한 조치는 없었다. 나는 그 이후 이런 일들이 벌어질 때마다 그저 고동이의 곁에서 고동이가 빨리 이 떨림을 멈추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러다가 나 혼자만의 힘으로 안 되겠다는 느낌이 들 때면 또다시 서둘러 병원에 간다. 남편과 함께 고동이에 관한 전화를 하다가 '나 지금 병원인데 나중에 이야기할게.'라고 하면 남편은 더 이상 나의 다음 대답을 물어보지 않는다. 그저 다시 내가 이야기를 시작할 때까지 잠잠히 기다릴 뿐이다. 고동이가 괜찮아졌는지, 혹시 더 아픈 건 아닌지. 걱정하며 기도하는 시간으로 침묵을 채운다. 우리 가족에게 이런 일들이 몇 번 일어난 뒤 남편은 내가 하다가 멈춘 이야기들에 관하여 궁금해하는 것을 참는 눈치다. 궁금한 이야기가 있어도 시간의 운명에 마음을 잠잠히 내려놓는다. 급한 마음이 앞서도 일어날 일들은 일어나고 쏟아질 물은 언젠가 쏟아지기 마련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인생에 벌어질 어쩔 수 없는 일들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기 위해 우리의 마음을 때때로 단단히 붙잡는 연습을 한다. 서로에게 신뢰를 주고, 서로를 서로가 의지하며 보다 더 진한 사랑으로 표현하기를 아끼지 않는다. 신기한 것은 이런 모든 상황을 고동이도 알고 있는지 언제나 고동이는 우리 곁에서 가장 큰 믿음의 존재로 서 있다. 생명으로 존재하는 우리가 서로의 마음으로 온전하게 통하는 순간이다. 


아직 고동이는 젊고 귀엽지만 언젠가 우리 곁을 떠날 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 머리로는 알고 있는 이 일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까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두렵기도 하다. 마지막을 생각하노라면 우리는 오늘을 충만하게 살아야겠다고 여긴다. 인간이란 지혜롭지만 또한 어리석어서 각자의 날들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영원할 것처럼 살아간다. 영원할 것 같은 착각이 오늘날의 삶을 허무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과연 언제쯤 알아차릴 수 있을까. 고동이가 알 수 없는 병으로 온몸을 떨 때마다 나는 두려우면서도 일상의 평안한 날들을 헤아린다.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날은 결코 기적과 같은 일이었음을 느낀다. 그리고 나는 때때로 고동이의 눈빛을 보며 고동이와 같은 존재들을 생각한다. 끝끝내 행복으로 가는 여정마저 잃어버린 존재들, 일상을 죽음의 순간으로 채우는 존재들. 아프고 병든 순간마저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들에 대한 생각은 내가 무엇이든 쓰는 사람으로 만든다. 고동이에게는 우리가 있지만 고동이와 같은 존재들에게 누군가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를 찾아 헤맨다. 이 현실을 마주하면 마주할수록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피하고만 싶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그다음의 이야기를 궁금해해야 한다. 그 이야기가 결론을 맺을 때까지, 앞으로의 날들에 대한 기록은 생명이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이야기로 채워야 한다. 나는 이것이 인간으로 존재하는 이들의 소명이라 여긴다. 


동물 보호 단체 등에서 제시한 유기 동물이나 동물 학대에 관한 실태를 보면 우리의 현실이 보다 더 심각하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한 예로, 지난 9월 4일에 배포된 보도자료에 따르면,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강아지 공장에서는 약 1400마리의 강아지들이 발견되었다. 번식장의 환경은 아주 심각하게 열악했으며 최소한의 생명 존중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는 환경이었다.  (기사 참고 : 경기도 화성시 강아지 공장, 적발사례기준 세계최대규모인 1,426마리 발견, 경기도와 20여 개 동물보호단체들이 함께 전원 구조) 내부 고발자에 따르면 해당 번식장에서 동물 학대 행위가 빈번했으며 최악의 밀집 사육으로 동물들은 일상에서 생명으로 존재할 권리를 박탈당했다. 기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어 내려가는 것이 버거울 정도로 끔찍한 모습이 상상되지만 나는 이 현실을 마주하기로 한다. 저 먼 과거에 있었던 일이 아닌 바로 오늘날 지금 이 순간도 어디에선가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심지어 이런 현실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꽤 많은 곳에서 일어나는 현실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우리가 어떤 것을 바라보고 있느냐, 하는 관점과 시점에 대한 점검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나는 이런 이야기들을 마주하려고 해" 언젠가 남편에게 내가 했던 말이다. 저 먼 우주를 보며 사는 사람들은 우주로 가는 꿈을 꾼다. 높은 빌딩을 보며 사는 사람들은 그 빌딩을 살 수 있을만한 능력을 키운다. 욕심과 탐욕이 아니라면 자신의 옳은 가치관으로 일상을 채운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그 어떤 가치관이 보다 더 빛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감히 더 많은 사람들이 낮고 낮은 곳을 바라보기를 원한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일상을 빼앗긴 생명들이 자신의 삶을 되찾기를.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이들이 그들을 보호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남편은 그런 나의 고민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마주하는 이야기들이 두려울 때도 기꺼이 용기를 내준다. 자, 이제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다짐하는 표정으로 그렇게 나에게 질문한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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