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서울동물영화제 리뷰] 장소에 존재하기 - 마거릿 테이트의 초상
계절이 바뀔 때쯤이면 언제나 제가 반복하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옷장정리죠. 요즘 넓은 집에 사는 분들은 옷에 방을 내어주기도 하던데 저는 그렇게 옷이 많은 편도 아니어서 침대 옆 붙박이장 하나면 겨울 외투들까지도 충분합니다. 옷을 정리할 때마다 저는 흠칫 어색할 때가 있습니다. 옷장에 있는 옷들을 바라보면 사람들이 바라보는 저를 상상하게 되기 때문이죠. 이 옷을 입은 나. 과연 진정한 나일까. 고민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물론 사회적인 동물로 살아가는 인간은 옷을 입습니다. 옷은 나를 보호하는 수단이자,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죠. 그러나 이 옷이 진정한 나를 감추고 있다면 지금 내 옷장에 걸려있는 옷에 대하여 저는 좀 회의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어디에서나 솔직한 모습으로 누군가를 대하고 진실함으로 관계를 맺고 싶기 때문이죠.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 상대방에게 다가갔을 때 과연 이 옷을 입었을 때와 같은 마음으로 임할 수 있을까. 저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온통, 그리고 세상 또한 온통 사실적인 것과는 다른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죠. 우리에게 예술이 필요한 이유는 이 사실적인 것과 그럴 수 없는 현실이 혼란스럽게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어지러운 혼란을 예술이 조금씩 정리해 줄 수 있는 거죠. 이번 서울동물영화제에서 볼 수 있어던 < 장소에 존재하기 -마거릿 테이트의 초상>은 앞서 제가 말했던 예술의 방법, 그리고 정리의 방법들을 알려준 것만 같았습니다. 영화는 온통 결핍의 세계를 더욱더 치열하게 그려나가는데요. 그 모든 과정은 결국에 우리가 존재하는 모습은 어떤가, 하는 질문을 안겨줍니다.
오래되고 낡고 병든, 그래서 이젠 더 이상 어떤 이들에게도, 어떤 곳에서도 쓸모가 없어진 것들에 대하여 파고 들 수록 그 반대편에 서 있는 다양한 꾸밈음들과 번져가는 색과 농도로 켜켜이 쌓인 삶을 마주할 수 있게 됩니다. 그 어떤 한쪽이 완벽한 존재라고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죠. 어쩌면 영화는 결국 아무것도 담아내지 못하는 존재들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스스로 설 수 있는 삶은 그 어디에도 없다고 말이죠.
하나의 객체로 하나의 생명으로 또 하나의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로 생명이 생명답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명은 서로에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필요합니다. 좋은 옷, 예쁜 옷을 아무리 걸쳐도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면 그 어떤 화려한 옷도 나를 표현해 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어쩌면 거짓과 허무함만 남는 무용인 물건일 뿐이죠. 어쩌면 우리는 끊임없이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들의 모습을 돌아보며 존재로서의 확인을 지속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로를 기대어 서 있을 때 비로소 우리가 진짜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들을 알아차리고 생각하며 이를 실천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어찌 됐건, 누구의 삶을 바라보건 우리의 시선은 우리로부터 시작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보고 계신가요. 진실로 나를 바라보고 타인을, 생명을 바라보는 시선이란 무엇일까요. 영화의 반복된 프레임은 끊임없이 질문합니다. 저는 영화를 통해 한 가지 확신한 것이 있습니다. 모든 순간들의 생명은 서로 흘러가지 않고 다가오고 있습니다.
1. 내가 뽑은 영화의 키워드
#생애 #시선 #현실 #혼돈 #정체성
2. 한 줄 감상평
비로소 삶을 알아차리는 방법에 대하여
3. 추천하고 싶은 사람과 그 이유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고 좋아하는 사람을 바라보면 지금껏 내가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이 생기죠. 그 감정을 파고들었던 적이 있다면 아마도 이 영화가 영화를 대하는 자세와 비슷했을 겁니다. 영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방법, 그래서 나아가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조금 더 색다르고 진지한 자세로 다가가고 싶은 분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합니다.
영화 [ 장소에 존재하기 -마거릿 테이트의 초상]은
'제6회 서울동물영화제'에서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2023.10.19.(목)~ 10.2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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