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하지 않아도 아이는 자란다
"엄마(아빠)는 너를 바꾸려는 게 아니라, 네가 흔들려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자리를 지키고 싶단다."
부모 교육 현장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우리 아이는 말을 안 듣는 게 아니라, 아예 안 들으려고 해요." , "이 아이는 왜 이렇게 고집이 셀까요?" 특히 다문화 가정의 부모들은 여기에 한 마디를 더 얹는다. "정체성이 복잡한 아이라서 더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런데 오늘 조심스럽게 다른 시각을 꺼내 보려 한다. 문제는 아이를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설득하려는 방식' 자체가 아이에게 너무 무거웠기 때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설득이 '정체성 개입'이 되는 순간
일반 가정에서 부모의 말은 주로 행동을 교정한다. "그건 예의가 아니야", "그렇게 하면 손해 본다"는 말들이다. 그런데 다문화 가정에서 같은 말이 아이에게는 전혀 다르게 들릴 수 있다. "너는 이렇게 존재하면 안 된다.", "너의 한쪽 모습은 여기서 환영받지 못한다."
부모는 분명히 행동을 말했는데, 아이는 자신의 존재를 평가받았다고 느끼는 구조이다. 이때 아이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말로 반항하거나, 아니면 더 조용히 자기 일부를 숨기거나. 후자가 사실 더 위험하다. 겉으로는 순응처럼 보이지만, 내면에서는 정체성 단절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한국인 아버지와 외국 출신 어머니를 둔 중학교 2학년 A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아버지는 "밖에서는 한국 사회 규범을 따라야지, 튀면 안 된다"고 말하고, 어머니는 "집에서는 우리 문화도 지켜야 해, 네 뿌리를 잊으면 안 돼"라고 말한다. 두 말 모두 틀리지 않다. 그러나 A의 내면에는 이런 문장이 쌓였다. "나는 항상 상황에 맞게 바뀌어야 하는 사람이다.", "나는 있는 그대로 존재하면 안 된다."
결국 이 아이는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차라리 아무 데도 속하지 않고 싶어요." 이것은 반항이 아니다. 지속된 설득 속에서 정체성이 지쳐버린 신호이다.
부모의 말 뒤에 숨은 것, 바로 '불안'
부모들께 솔직하게 묻고 싶다. 우리는 정말 아이를 설득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아이를 통해 우리 자신의 불안을 통제하고 싶은 걸까?
차별받을까 봐 두려운 마음, 실패하면 회복하지 못할까 봐 두려운 마음, 내가 부모로서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 이런 불안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문제는 이 불안이 아이의 선택과 정체성 위에 올라탈 때이다.
아이들은 귀신같이 알아차린다. "이 말은 나를 위한 말이 아니다. 이건 부모님의 불안을 덜기 위한 말이다"라고. 그 순간부터 아이는 말을 듣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해 듣지 않게 된다.
고등학생 B는 예술 계열 진로를 꿈꾸고 있다. 부모는 말한다. "너 같은 상황에서 그 길은 너무 힘들어. 차별도 많고, 불안정해." 현실적인 조언처럼 들리지만, B에게는 이렇게 들렸다. "너는 이미 불리하다. 그러니 더 안전한 선택을 해야 한다." B는 결국 이렇게 물었다. "그럼 저는 언제 제 선택을 해볼 수 있죠?" 이 아이가 원한 것은 허락이 아니었다. 시도할 권리를 존중받고 싶었던 것이다.
설득 대신, 질문을 바꾸는 것부터
부모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은 질문을 바꾸는 데서 시작된다. "어떻게 하면 아이를 설득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이 아이가 지금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으로 시선이 바뀌는 순간, 부모의 말도 달라진다.
"왜 그렇게 하니?" 대신 "그 선택이 너에게 어떤 의미야?"
"그건 위험해" 대신 "그럼에도 끌리는 이유가 있겠지."
"그건 안 돼" 대신 "나는 걱정되지만, 네 생각을 더 듣고 싶어."
이 말들은 정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관계를 안전하게 유지한다. 그리고 안전한 관계야말로 아이가 스스로 자라는 토양이 된다.
실제로 초등 고학년 C의 부모님은 잔소리를 줄이고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요즘 네가 뭘 고민하는지는 잘 모르겠어. 그래도 네가 숨기지 않아도 되는 집이었으면 좋겠어." 몇 주 뒤, C는 학교에서 있었던 차별 경험을 스스로 꺼내놓았다. 설득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가 말할 공간이 생긴 것이다.
정체성을 정리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흔들려도 괜찮은 공간을 만드는 사람
다문화 가정에서 부모의 역할은 아이의 정체성을 정리해 주는 것이 아니다. 정체성이 흔들려도 괜찮은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아이들은 결국 성장한다. 다만 설득 속에서 자라느냐, 환대 속에서 자라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오늘 이 글을 읽으신 부모들에게 한 문장을 남기고 싶다.
"아빠(엄마)는 너를 바꾸려는 게 아니라, 네가 흔들려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자리를 지키고 싶단다."
이 말이 가능한 순간, 설득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다. 관계 그 자체가 이미 아이를 자라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 소개] 임준 박사(아동청소년교육) / IAM교육연구소 대표
다문화청소년이 지각한 부모지지와 이중문화수용태도가 삶의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 연구로 박사학위 취득. 엔지니어 출신으로 공학적 사고와 교육학적 이해를 융합한 미래 인재 양성 전문가이자 연구교수,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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