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존중·소속감, 아이들에게도 '정서적 연봉'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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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표는 올랐는데 왜 아이는 행복하지 않을까?
당신의 아이는 오늘 학교에서 존중받았습니까?
인정·존중·소속감, 아이들에게도 '정서적 연봉'이 필요하다.
3월 16일 제62기 경영자 독서모임 MBS프로그램(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 정기 강연에서 서울대 신재용 교수가 강연을 펼쳤다. 그의 저서 《정서적 연봉》을 주제로 한 자리였는데, 강연 내내 나는 계속 다른 얼굴들이 떠올랐다. 그가 말하는 것은 분명 직장인과 조직의 이야기였는데, 내 머릿속에는 내가 연구해 온 다문화청소년들의 얼굴이었다.
신 교수가 제시하는 '정서적 연봉'이란 단순한 급여가 아니라, 인정·존중·관계·성장·의미와 같은 비금전적 보상의 총합이다. 사람은 돈 때문에 회사에 들어오지만, 감정 때문에 회사를 떠난다는 것. 연봉이 충분해도 인정받지 못하거나, 자신의 존재가 의미 없다고 느끼는 순간 사람은 서서히 그 조직을 떠날 준비를 한다는 것.
강연장을 나오며 나는 생각했다. 아이들도 그렇지 않을까. 학교라는 조직에서, 사회라는 공동체에서, 정서적 연봉이 낮은 아이들은 서서히 그 안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다문화청소년을 지원하는 정책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보통 '무엇을 더 제공해야 하는가'를 먼저 고민한다. 한국어 교육, 학습 지원 프로그램, 방과후 교실, 장학금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물론 이러한 지원은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질문 하나는 자주 빠져 있다.
"이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충분한 보상을 받고 있는가?"
직장인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역설이 있다. 사람은 돈 때문에 회사에 들어오지만, 감정 때문에 회사를 떠난다. 연봉이 충분해도 인정받지 못하거나, 관계가 불편하거나, 자신의 존재가 의미 없다고 느끼는 순간 사람은 서서히 그 조직을 떠날 준비를 한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신재용 교수의 저서 《정서적 연봉》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든다. 그가 제시하는 '정서적 연봉'이란 단순한 급여가 아니라, 인정·존중·관계·성장·의미와 같은 비금전적 보상의 총합이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숫자로 환산되는 조건이 아니라, 매일 경험하는 감정의 질이라는 것이다.
이 개념은 직장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나는 이 개념이 청소년의 삶, 특히 다문화청소년의 삶을 이해하는 데에도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다문화청소년은 성장 과정에서 두 개의 문화 사이에 서게 된다. 가정 안에서는 부모의 문화가 살아 있고, 학교와 사회에서는 한국 문화가 중심이 된다. 이러한 경계는 아이들에게 풍부한 문화적 자산이 될 수도 있다. 두 개의 언어, 두 개의 감수성, 두 개의 세계를 동시에 이해하는 능력은 분명 강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 경계는 종종 상처의 통로가 된다.
외모의 차이, 이름의 발음, 부모의 국적에 대한 질문들. 이것들은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반복되면 아이에게 하나의 메시지로 남는다. "너는 우리와 다르다." 이 메시지가 쌓이면 아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방어해야 할 무언가로 여기기 시작한다. 자아존중감은 조금씩 낮아지고, 학교생활 만족도 역시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때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문제집이 아니다. 더 이른 학원 시작도 아니다. 아이가 있는 그대로 존중받고 있다는 경험, 자신의 문화적 배경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자산이라는 인식, 그리고 자신이 이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이라는 확신이다. 바로 '정서적 연봉'이다.
교실 안을 상상해 보자. 한 다문화청소년이 "너는 어느 나라 사람이야?"라는 질문을 받는다. 같은 질문이라도 교실의 분위기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만약 교사가 아무 말도 하지 않거나, 아이의 반응을 그냥 지나친다면 그 질문은 "다름"을 확인하는 경험으로 남는다. 그러나 교사가 자연스럽게 "우리 반에는 여러 나라의 문화가 함께 있어서 더 풍성해"라고 말해 준다면 그 순간은 다양성이 자랑스러운 경험으로 바뀐다. 아이의 정체성이 교실 안에서 자리를 얻는 것이다.
교사의 말 한마디는 그 아이의 하루를 바꾸고, 그 하루들이 모여 자아존중감을 만든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아이에게 "너는 두 문화를 가진 특별한 사람이다"라고 말해 줄 때, 아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외국 출신 부모의 언어를 함께 배우고, 그 나라의 음식과 명절을 가정에서 자연스럽게 경험하는 것은 단순한 문화 체험이 아니다. 아이에게 "네 뿌리는 아름답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행위다.
반대로 부모가 사회의 시선을 의식하며 문화적 차이를 숨기려 할 때, 아이는 자신의 뿌리를 부끄러운 것으로 인식할 수 있다. 학교에서 아무도 모르게 하려는 태도, 집에서만 쓰는 언어를 밖에서 절대 쓰지 않는 행동들은 아이에게 암묵적인 신호를 보낸다. 숨겨야 할 것이 있다는 신호. 그 신호가 반복될수록 아이의 정서적 연봉은 낮아진다.
부모의 태도와 언어는 아이의 정서적 연봉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연구 결과 역시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다문화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국내 연구들에 따르면, 부모의 정서적 지지와 또래 관계의 질, 교사로부터의 인정 경험은 청소년의 자아존중감과 사회적 유능감을 높이는 핵심 변수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특히 다문화청소년의 경우, 학업 성취보다 '소속감'과 '수용 경험'이 삶의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크게 나타난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성적이 아이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감각이 아이를 행복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어떤 정서적 환경을 만들어가야 할까.
학교에서는 다문화 감수성 교육이 선택이 아닌 일상이 되어야 한다. 단순히 특정 나라의 음식과 의상을 소개하는 행사 수준을 넘어서,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일상적 교실 문화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교사가 먼저 다양성을 환영하는 언어를 사용할 때, 그 교실의 모든 아이들이 영향을 받는다.
지역사회에서는 다문화가정 부모를 위한 정서적 지원 프로그램이 강화되어야 한다. 언어 지원을 넘어서, 부모가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여기고 자녀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돕는 상담과 커뮤니티가 필요하다. 부모의 자존감이 높아질 때, 아이의 정서적 연봉도 함께 높아진다.
정책 차원에서는 다문화청소년 지원의 성과 지표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한국어 능력 향상, 학업 성취도와 같은 측정 가능한 수치만이 아니라, 자아존중감·소속감·문화정체성 수용도와 같은 정서적 지표를 함께 추적해야 한다. 측정하지 않는 것은 개선하기 어렵다.
아이들은 우리가 제공하는 프로그램보다 우리가 보여주는 태도 속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운다. 교실에서 스쳐 지나간 교사의 말 한마디, 부모가 아무렇지 않게 차려낸 고향 음식 한 그릇, 친구들 사이에서 웃으며 나눈 이름의 뜻 하나. 이런 것들이 쌓여 아이의 정체성이 된다. 그리고 그 배움은 성적표보다 오래, 훨씬 오래 남는다.
다문화청소년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학원이 아니라 더 높은 정서적 연봉이다. 아이들이 존중받고 있다는 확신 속에서 성장할 때, 비로소 그들의 삶의 만족도도 함께 높아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높아지는 일이기도 하다.
[필자 소개] 임준 박사(아동청소년교육) / IAM교육연구소 대표
다문화청소년이 지각한 부모지지와 이중문화수용태도가 삶의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 연구로 박사학위 취득. 공학 엔지니어로서의 사고와 교육학적 이해를 융합한 미래 인재 양성 전문가이자 연구교수,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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