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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엔터 Aug 09. 2023

제주만다린즈와 노지감귤즈에게도 좋은 가족이 나타날거야

우당탕탕 귤엔터 5화 반려견 데뷔는 여전히 진행 중!

너무 유난스러워 보일지도 모르지만 좋은 가족을 찾아주기 위해 세심한 입양 절차를 마련해두었다. 본격적인 입양 전 제주에서 일주일 합숙한 ‘한라봉’과 입양자.


제주탠져린즈의 아픈 손가락이었던 레드향. 반 년 가까이 입양 홍보를 열심히 했는데도 단 한 건의 문의도 없는 멤버였다. 그러다가 딱 한 명의 입양 신청자가 등장했다. 직접 이야기 나누기 전까지는 기대하지 말자고 다짐하며 신청자와 통화를 했다. 그 뒤로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신청자는 가족이 되기 전 직접 만나보고 싶다며 일부러 시간을 내어 제주도 귤엔터 본사(즉 우리집 원룸) 근처에 숙소를 얻어 내려왔다. 사흘간 하루 종일 같이 산책하며, 산책 줄을 잡아보고 레드향과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중간중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전속 계약서를 작성하며 레드향은 이브라는 이름으로 반려견 데뷔가 확정되었다. 계약서를 쓰며 입양자는 우리에게 레드향과 오랫동안 같이 지냈는데 헤어지면 슬프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래서 몇 달 앞서 반려견으로 데뷔한 한라봉(데뷔명 혜준)의 이야기를 전했다. 한라봉 입양자도 처음으로 반려동물을 키워보는 것이라 걱정이 많았다. 매사에 계획을 세우고 계획대로 움직이는 유형의 사람이었는데, 삶에 반려견이라는 통제 불가능한 요소를 들이기로 결심하며 예정에 없던 갑작스러운 휴가를 내고 제주에 왔다. 3년 만의 첫 휴가라고 했다. 일주일간 우리 집에 머물고 함께 산책하며 반려견과 사는 법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여름에 다시 오겠다는 약속과 함께 웃으며 헤어졌다. 이렇듯 좋은 가족을 만나면 헤어지는 게 전혀 슬프지 않으며 오히려 좋은 가족을 찾아주겠다는 약속을 지킨 기쁨이 더 컸다고도 덧붙였다. 그래서 레드향과도 웃으며 헤어질 수 있을 것 같다고.


마지막 일정은 입양자와 함께 레드향을 데리고 서울 집으로 가는 것이었다. 레드향이 살게 될 동네를 함께 산책해보고, 레드향이 새로운 집에 불안해하지 않고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안정되길 기다렸다가 천천히 집을 빠져 나왔다. 레드향이 불안해한다면 집을 몇 번 더 들어갔다 나왔다 반복하려고 했으나, 다행히 잘 적응하여 쉬고 있다는 말을 듣고 안심하며 공항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에 시작된 일정이었으나 공항에 도착하니 밤이 되어 있었다. 제주에서 올라올 때만 해도 레드향을 비행기에 태우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홀로 내려가다니 단출하다는 생각과 함께 눈물이 주르르 쏟아졌다. 어깨를 들썩이며 비행기에서 울다니 엄청난 사연이라도 있어보였겠지. 임시보호하던 강아지를 가족에게 두고 온 것뿐인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났을까. 아무래도 레드향은 입양 문의가 전무했던 터라, 다른 멤버를 다 입양 보내고 나면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낼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겁이 많았던 레드향에게 나중에 혼자 남으면 해주겠다고 미루었던 것들이 생각나서 많이 울었다. 좋은 가족을 찾아주어도 해주지 못한 것들이 생각나면 슬플 수도 있구나. 요즘은 우리가 못해준 것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조차 안 날 정도로 레드향은 가족과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매일같이 레드향, 아니 이브의 소식을 보는 것이 우리의 즐거운 하루일과로 자리 잡을 만큼.


제주에 와서 레드향과 친해지는 과정을 거친 입양자.


지난 글에서처럼 제주탠져린즈 멤버들을 아무에게나 보내는 것이 아니라 좋은 가족을 찾아주겠다고 호언장담하기는 했지만, 입양을 신청하는 낯선 타인이 좋은 가족인지 아닌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지 고민이 들었다. 우리가 온라인 입양 신청서에 공지하고 있는 ‘입양 필수 조건’은 중성화에 동의할 것, 실내견으로 키울 것, 매일 2회 이상의 산책을 할 것, 입양 후 지속적으로 소식을 전달할 것 등이었다. 입양 신청서를 토대로 신청자들과 통화하며 멤버 각각의 특성과 어린 강아지 사회화의 중요성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성장기이며 이갈이 시기라는 것도 힘주어 설명했다. 신청자와 통화를 하는 순간에도 우리가 앉아있는 나무 의자를 강아지들이 물어뜯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아지 7마리의 이갈이 용품으로 사용된 그 나무 의자는 결국 한라봉 입양자가 머물던 중 동서남북으로 갈라지며 부서졌다. 본의 아니게 이갈이의 무시무시함을 눈앞에서 경고한 셈이었다.


레드향의 입양 과정에 덧붙여 우리가 강아지를 입양 보내는 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먼저 신청자가 온라인 입양 신청서를 작성한다. 전화 통화와 영상 통화를 거친 뒤, 신청자가 사는 동네에서 강아지와 함께 만나 실제로 산책을 해본다. 필요하다면 몇 번 더 약속을 잡아서 산책을 한다. 입양이 최종 결정되면 입양자의 집에 강아지와 함께 방문하여 강아지가 ‘무리를 놓쳤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새로운 집과 동네를 천천히 소개했다. 마지막 데뷔 멤버 영귤이 때에는, 아예 금배와 다 같이 입양자 집 근처에 숙소를 잡고 2박3일간 머물며 영귤이의 특성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적응하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 과정은 사실 사람보다는 강아지들을 위한 것이었다. 인간이 얼른 초보 반려인 딱지를 떼어야 새로운 환경으로 갑작스럽게 옮겨진 아이들이 잘 적응하고 무럭무럭 자랄 테니까. 너무 유난스러워 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한 생명의 평생에서 가장 중대한 사건 중 하나라고 여기면 그렇지도 않다고 봤다.


“이 과정을, 지금까지 아이들 하나하나 다 거치신 거지요?” 자몽이를 데려다주는 길에 임시보호자가 물었다. 마당에 남아있던 성견 중 하나인 자몽이가 치료와 가족 찾기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실내 임시보호를 시작하는 날이었다. 그렇다고 대답하며 머쓱하게 웃었다. 임시보호자(우리는 ‘연습생 매니저’라 부른다)는 그동안 이렇게 매번 하려면 여러 가지로 힘들었을 것이라고 위로와 격려의 말을 건네주었다. 자신도 사실은 낯선 생명체의 예측 불가능한 행동을 혼자서 책임져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임시보호를 망설였다며, 이렇게 함께해주는 과정 덕에 무척 안심된다고도 덧붙여주었다. 자몽이를 그 집에 두고 오며, 누군가에겐 번거로울 수도 있는 일이 왜 필요한지 길게 말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걸 신기해했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지도 않은 방식으로 친구들을 사귀고 있는 것 같다고도. 엊그제는 입양 면접으로 서울에 갔다가 퇴근길 도로에 갇혀 제주도행 비행기를 놓쳤던 이야기를 귤엔터 입양자들이 모인 단체 채팅방에서 이야기했다. 연예기획사 SM의 소속 가수들이 모두 모인 프로젝트 ‘SM타운’을 흉내 내어 그 채팅 방을 원대하게 ‘귤타운’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육아 성토방이 되어버린 방이었다. 그곳에 이야기했더니 모두들 그럴 땐 자기 집으로 와서 자고 가라고 말해주셨다. 자신의 집이 공항과 더 가깝다라던가, 멀지만 귀여운 강아지가 있다던가 하는 농담도 해주시면서. 전국 각지에 묵고 갈 곳이 생겼다며 기분 좋게 대화를 마무리했다.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고 여겼던 일들이 우리들에게 어떤 순간 보상처럼 다가올 때가 있다. 요 며칠을 그렇게 보냈다.


우리 엔터의 신견그룹 '제주만다린즈'와 '노지감귤즈'


제주탠져린즈가 모두 데뷔하고 난 뒤, 같은 마당 출신인 제주만다린즈 일곱 남매와 성견 노지감귤즈 네 마리가 입양 처와 임시 보호처를 찾고 있다. 강아지가 많다 보니 각양각색의 문의도 받는다. 왜 실외에서 키우면 안 되냐(마당에서 구조한 아이를 다시 마당에서 키우려는 심보는 뭘까), 왜 2회 이상 산책을 해야 하냐(활동량이 채워지지 않은 아이로부터 당신 집을 지키려고요), 산책은 강아지가 원한다고 해서 하는 거냐(분신사바라도해서 물어봐야 했을까) 등의 물음들. 강아지 때문에 힘든 일은 사실 거기서 거기이다. 방금 깐 새 이불에 배변 실수를 한다든지, 전선을 씹어 먹는 거나 땅에 떨어진 음식을 먹는다든가 하는 일들 말이다. 하지만 무례한 인간들은 항상 상상을 초월한다. 강아지 특성에 맞게 최선의 가족을 선택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신청자를 거절하는 경우도 있는데, 개중에는 강하게 불쾌감을 표하는 사람도 있었다. 유기견에게 집과 가족을 ‘베풀어주겠다’는 선의가 부정당했다고 생각해서인지 화풀이하듯 감정적으로 구는 사람도 있었다.


어느 날 아이들이 갉아 먹는 나무 의자에 앉아 입양자에게 전달할 배변 교육법, 산책 교육법, 초인종 교육법 등을 작성하다보니 문득 “왜 기초 훈련인데 A4용지 5장이나 되는 거지. 이렇게 힘든데 사람들은 강아지를 도대체 왜 키우려고 할까?”라는 말을 우리끼리 농담처럼 주고받았던 적이 있다. 그럴 때마다 이 과정을 함께 헤쳐 나가고 있는 우리의 반려견 금배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다. 금배는 뒷산에 유기되었고, 배변을 한 뒤에 혼나기라도 했던 듯 사람을 피해 숨곤 했고, 입양 갔다가 며칠 만에 파양되기도 했다. 금배와 처음 산책을 했을 때에는 무언가 무서운지 차 밑으로 숨으려고 하고, 막대기를 들고 있는 할아버지를 보면 멀리 도망가려고 하고 움직이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 낯선 사람이 이름을 부른다면 다가가 온몸으로 반겨준다. 사람에게 상처받았는데도 다시 사람을 믿는 것. 그것은 분명히 용기에 더 가깝지 않을까? 옆에서 지켜보며 그 용기에 감동받곤 했다. 마주치는 각종 무례함 속에서도 우리가 만난 좋은 사람들을 떠올려보려고 한다. 아직도 열여덟 마리 중 아홉 마리나 남아서 막막함이 훨씬 크다. 그래도 더 이상 좋은 가족이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과 초조함 속에서 용기낸 결과로 아홉 명의 좋은 사람들을 더 알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들은 진돗개·진도믹스·시골잡종·누렁이·까만 개·중대형견이 그 자체로 좋은 삶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지 않아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일 테니까. 그건 분명 가치 있는 일이다.




▶ 귤엔터 이사진 : 구낙현·김윤영·금배

MBTI가 ENFP인 사람, INTJ인 사람, 그리고 말이 없는 강아지 금배로 이루어진 팀이다. 매일 산책하는 금배와 더 행복하게 걷기 위해 최근 제주로 이주했다. 걷다가 만난 마당개와 들개의 새끼들을 길거리캐스팅하며 ‘제주탠져린즈’라는 반려견 연습생 그룹을 꾸렸다. 지금은 이들의 소속사 귤엔터로서 반려견으로 데뷔시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강아지 금배와 걸으며 만난 제주의 자연과 개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한다.



※ 이 글은 2022.06.24 경향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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