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귤엔터 Aug 17. 2023

유기동물 구조를 고민하는 분들에게

우당탕탕 귤엔터 7화 열다섯 '반려견 데뷔',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일

열여덟 마리. 죽은 탱자까지 열아홉 마리 중에 열다섯이 가족을 찾아 ‘반려견 데뷔’에 성공했고 이제 셋만 남았다. 사람들이 이 콘셉트를 어떻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물어볼 때마다 ‘빨리 보내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나온 섬광 같은 아이디어였다’고 대답하곤 했는데, 일곱 마리 새끼들을 구조한 쓰레기 마당에는 모견을 비롯한 성견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강아지들은 빨리 입양처를 구할 수 있다는 업계의 속설을 신봉하며, 한 달 내로 새끼들을 일단 다 보내고 그다음 성견들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기로 했었다. 보통의 방법으로 입양 홍보 글을 올리면 강아지들이 눈에 띄지도 구분도 되지 않으니, 묶어서 강조하기에 아이돌 그룹이 괜찮겠다 싶었던 것뿐인데 온라인 이모들의 열성적인 호응 덕에 반려견 데뷔 성공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그동안 우리에게 구조나 입양 홍보에 관해 물어보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동네에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불쌍한 아이들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구조하고 어떻게 입양을 보냈는지, 임시 보호처는 어떻게 구했는지 등 다양한 질문을 받았다. 사실 우리도 우당탕탕 과정 속에서 배우는 중이라 흡족한 답변을 하지는 못할 것 같다. 그리고 우리보다는 전문적으로 십수년에 걸쳐 이런 일을 하고 있는 동물구조 단체들이 이미 좋은 답을 많이 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가족을 찾는 이 여정 안에서 후회되는 것들에 대한 부분일 것 같다. 작년 우리처럼 길을 헤매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사람들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시작해 본다.


마당에서 구조된 성견 중 가장 크고 무서워 보이는 인상 때문에 가족 찾기가 어려울 것 같았던 온주


우리가 첫 번째로 후회하는 것은 아무리 초보였다지만 탠져린즈 아이들을 한 달 안에 보낼 수 있다고 예상한 것이었고, 이 대책 없는 계획 아래 성견들의 구조를 막연하게 생각한 것이었다. 모두를 동시 구조하기에 여력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새끼들 먼저 보낸 뒤, 성견들은 마당에서 중성화와 건강검진을 하며 추이를 지켜볼 계획이었다. 고칠 수 있는 병이면 고치면 되고 비용은 모금을 하든 ‘알바’를 하든 뭐 어떻게든 되겠지(정말 대책 없음). 문제는 주인 할아버지를 설득해 마당 환경을 개선하고 성견들을 마당에 계속 둘지, 아니면 우리의 여력이 되는 대로 하나씩 집에 들여 가족을 찾아줄지에 대한 부분이었다.


이 고민은 작년 여름 이호테우 해변을 떠돌던 ‘햇님’이라는 황색 진돗개를 구조한 일에서 비롯됐다. 햇님이는 우리가 제주로 이주하고 처음 마주친 들개였다. 동네 사람들이 그 개를 햇님이라고 했기에 우리는 따라 불렀다. 나중에 더 자세히 다룰 기회가 있겠지만, 우리는 몇 달에 걸쳐 손을 타지 않는 아이와 천천히 친해져서 마침내 집으로 들였다. 하지만 햇님이는 생각 외로 목줄에 대해 엄청난 트라우마 반응을 보였고, 산책이 불가능해지자 햇님이는 요구적으로 울어댔다. 두 달가량 우리는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결국 햇님이는 전문 훈련소에서 위탁 교육을 받고 있다. 언제든 햇님이가 돌아올 수 있는 상황이었고, 트라우마를 가진 성견과 금배와의 합사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이미 뼈저리게 배운 뒤였다. 몇 번 동네에 묶여 사는 마당개들 산책을 해준 적이 있는데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평생 묶여 살던 개들의 산책은 정말 쉽지 않았다. 성견 구조에 대한 이런저런 우려와 조심스러움 그리고 강아지들 케어로 정신없는 나날 속에 성견들의 구조를 결단하지 못한 채 미뤄왔다. 이것을 우리가 가장 후회하는 이유는, 결정을 미룬 결과로 자몽이가 추운 겨울 마당에서 홀로 출산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탱자가 마당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우리는 몇 번이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하고 되뇌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살아있었다면 멋진 반려견이 되었을 탱자


당시 아이들의 소유권자인 주인 할아버지는 모든 개가 최근 1년 안에 접종했다고 했다. 의사가 왕진을 왔었다는 것이다. 접종 기록은 항상 나중으로 미뤄 결국 받지 못했는데 탱자가 죽고 난 뒤에 동네 동물병원을 수소문해 왕진 왔던 수의사를 찾아 물었더니, 광견병 접종만 했던 것 같다고 했다. 구조할 동물의 건강 상태는 병원에 데려가 수의사가 직접 보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만약 병원에 직접 방문하는 것이 어렵다면, 매년 해야 하는 필수 접종은 동물의약품점에서 약품을 사다가 직접 주사하는 간단한 방법도 있다. 접종이라도 이루어지면 전염병으로부터 아이들을 지킬 수 있다. 탱자를 죽게 한 파보 바이러스는 접종만 제때 했다면 쉽게 예방되는 병이었다. 비가 내리던 날 온주의 중성화를 위해 마당을 찾았다가 죽은 탱자를 발견했을 때의 마음에 대해서는 누구도 모르길 바란다. 곧이어 옆에 있던 조생이와 자몽이가 위독해져 입원했다. 이 아이들이 퇴원하고 다시 그 마당에서 살아야 한다니. 새끼들 임시 보호처를 구하기도 쉽지 않았던 터라 성견들의 임시 보호처를 구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으로 노지감귤즈라 이름 붙이고 그제야 성견들의 구조를 결정했다.


구조를 결심하기 전부터 주인 할아버지와 마당 인근 주민들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추후 소유권에 대한 부분을 정리할 때를 대비하고 싶었기 때문에 모든 언쟁에서 속없는 사람처럼 굴려고 노력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아이들의 안전이지 우리의 가치관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저런 개랑 애완견은 다르지. 우리 개는 품종 있는 애거든” “먹고 똥만 싸는 존재들. 시끄러운 애들” “저런 개들은 마당에서 키워야지. 어떻게 집에서 같이 살겠어” 같은 말들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는 이 아이들이 정말 잘 사는 걸 증명해 보이고 말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구조를 결정한 뒤 주인 할아버지에게 소유권 이전과 함께 한 달 치 밥값 대신이라 생각하고 병원비 일부를 부담해달라는 제안을 하자 자신도 요즘 상황이 좋지 않다며 자리를 회피하려고 했다. 아들 전세대출 이자를 내줘야 한다나 뭐라나. 다소 화가 난 귤엔터 멤버 ‘intj형 인간’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것을 조용히 말렸다. 그러곤 주인 할아버지에게 살다 보면 그럴 수 있다며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고 하고 자리를 마무리했다.


주변 부동산과 동네 사람들을 통해 공터, 빈집, 비닐하우스 등 있는 대로 알아보았지만 개 네 마리를 데리고 몇 달 있겠다는 말에 공간을 내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발을 동동 구르던 중 정말 다행히도 조생이와 자몽이의 실내 임보처가 구해졌다. 주인 할아버지는 여전히 전화와 문자메시지에 대답이 없었다. 묵묵히 조생이와 자몽이의 일상 사진을 보내며 잘 지내고 있음을 알렸다. 돈이나 소유권 때문이 아니니 편하게 연락 달라고 너스레를 떨며 응답 없는 전화에 메시지를 남겼다. 감귤이의 실내 임보처도 구해지고, 마지막까지 마당을 지켜야 했던 온주를 개조한 창고에 임시로 옮기기로 계획을 세웠을 무렵 주인 할아버지와 연락이 닿았다. 마당에 남아 있는 온주를 빠른 시일 내 옮겨주면 소유권 포기와 병원비 일부를 해주겠다는 연락이었다. 아이들이 생사를 넘는 와중에도 거드름 피우는 주인을 보는 것은 무척 괴롭다. 우리가 그에게 받고 싶은 것은 소유권 이전과 다신 마당에서 생명을 기르지 않는 것. 이 두 가지에 대한 약속이었고 결국 받아냈다.


입양을 보내는 일이 결국 나의 노력과 무관하게 타인의 선택을 기다려야 하는 일이다 보니, 입양이 되지 않을 것이며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 거라며 낙담하게 될 때가 있다. 온주는 노지감귤즈 중에서도 가장 크고 무서워 보이는 얼굴로 인해 입양처 찾기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던 멤버였다. 마당에 가장 오래 있었던 온주는 가장 마지막에 구조됐고 그마저도 실내 임보처를 구하지 못해 개조한 창고에서 생활해야 했다. 하지만 최근 온주의 사연을 눈여겨본 미국의 한 가족 덕분에 일사천리로 입양 길에 올랐다. 이들은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대형견 세 마리와 함께 사는 가족인데 ‘온주가 생각보다 훨씬 작아서 만지면 부서질까 모두 조심스럽게 만진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한참을 웃었다.  


온주는 미국 일리노이에  엄청나게 멋지고 큰 마당을 갖게 되었다 (사진제공=온주 보호자 / 인스타그램 @doggosfc )


온주가 출국하기 전 제주도에서의 마지막 산책으로 묶여 살던 마당 주변을 걸었다. 아이들이 있던 자리에는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텅 빈 플라스틱 개집만이 그곳에 개가 있었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제주도를 산책하다 보면 마당개도 많지만 빈 개집도 많다. 노지감귤즈처럼 개들이 가족을 찾아 빈집이 된 경우는 얼마나 될까. 작년에 동네를 떠돌던 백구가 포획되어 보호소 안락사 명단에 올라온 걸 보고 전단을 붙여 개를 잃어버린 이를 찾아 주었던 적이 있다. 오가며 볼 때마다 마당에 묶여 살아도 안락사보단 낫다고 생각했던 그 개가 최근 마당을 탈출하여 교통사고로 죽었단 소식을 들었다.


보호소에 나와 고작 몇 개월의 삶을 더 살다 간 것이다. 그 연락을 받고 영화 <데스티네이션>이 떠올랐다. 오늘은 운 좋게 살았을 뿐 죽음을 겨우 면하는 삶. 그것이 마당개의 삶이지 않을까. 지난 일 년 반 동안 동네에 우리가 알던 모든 마당개가 하나둘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개들은 어디로 갔을까. 누구 줬다는 사람도 있고, 팔았다는 사람도 있고, 상관하지 말라는 사람도 있었다. 이 많은 개들이 사라지는 시간에 재치 있는 입양 홍보로 가족을 찾는 것은 얼마나 미미한 일인가. 그래도 마냥 낙담하고 싶지는 않다. 가족을 찾은 열다섯 마리가 죽음을 면하는 삶이 아닌, 안락함과 사랑을 기꺼이 내어주는 가족과 함께할 평생을 생각하면 작지만은 않은 일이다. 이 대책 없는 여정 안에서 불가능한 일이 가능해지는 것을 보아왔다. 어디에선가 동물을 구조하고 임시 보호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기여하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 존경과 응원의 말을 보내고 싶다.


열여덟 멤버 중 마지막으로 반려견 데뷔 준비 중인 연습생 감귤, 오렌지, 레몬 (왼쪽부터). (사진제공=아트레이블스튜디오)



▶ 귤엔터 이사진 : 구낙현·김윤영·금배

MBTI가 ENFP인 사람, INTJ인 사람, 그리고 말이 없는 강아지 금배로 이루어진 팀이다. 매일 산책하는 금배와 더 행복하게 걷기 위해 최근 제주로 이주했다. 걷다가 만난 마당개와 들개의 새끼들을 길거리캐스팅하며 ‘제주탠져린즈’라는 반려견 연습생 그룹을 꾸렸다. 지금은 이들의 소속사 귤엔터로서 반려견으로 데뷔시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강아지 금배와 걸으며 만난 제주의 자연과 개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한다.



※ 이 글은 2022.08.19 경향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 


https://m.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208191625005?utm_source=urlCopy&utm_medium=social&utm_campaign=sharing

매거진의 이전글 유기견 입양자의 자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