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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엔터 Aug 17. 2023

세상에 키우기 쉬운 개는 없다

우당탕탕 귤엔터 8화 무결점 댕댕이는 환상의 동물

“어린 동물과 사랑에 빠지기는 정말 쉬워요. 하지만 동물을 키운다는 건 그 이상의 책임과 일이 많잖아요.”


뉴요커가 된 포멜론의 전속계약자님이 했던 말이다. 생각해보면 정말 그렇다. 심지어 탠져린즈와 귤멍멍이들의 원주인이었던 할아버지도 동물을 사랑하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어릴 때 키우던 개와의 기억이 얼마나 좋은 추억이었는지 들려주기도 했다. 저런 큰 잡종개는 실내에서 키우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마당에서만 지내는데 왜 비싼 예방접종을 맞혀야 하는지 그리고 묶어만 놓는데 왜 중성화 수술을 해주어야 하는지 납득하진 못했지만 그 나름대로 개를 사랑했다. 같은 맥락으로 가족 같은 반려동물을 유기하는 사람들도 나름대로 그 동물들을 사랑했을 것이다. 관심 없는 사람에게서 유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까? 그들은 애초에 반려동물과 살지 않을 테니 유기를 할 수도 없다. 많은 경우 학대와 유기는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발생한다.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이상적인 모습을 상상할 것이다. 그것이 개라면 보통은 퇴근 후 지친 나를 반갑게 맞이하는 모습이나, 사람들을 좋아하고, 발랄하고, 공놀이를 좋아하는 모습 등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가진 개가 얼마나 될까? 우리가 탠져린즈 7남매와 만다린즈 7남매 그리고 그 모견들을 구조하고 임시보호하면서 깨달은 것은, 한날한시에 한배에서 나온 남매들조차 외모도 성격도 천차만별이라는 것이었다. 용감하고 사교적인 강아지와 예민하고 겁이 많은 강아지를 보며 어떻게 자매가 이렇게 다른지 모르겠다고 우리는 혀를 내두르곤 했다. 그러면 자식을 키워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원래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내 배에서 나왔는데 어쩜 이렇게 다른지” 때론 한숨도 덧붙이며. 인간도 형제자매끼리 전혀 다른 외모와 성격을 가질 수 있는 것처럼 개들도 마찬가지다.


오렌지와 감귤의 특징을 담은 뇌구조

우리는 그 강아지마다 다른 특성이 재미있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해 입양을 홍보하는 과정에서 이 부분을 강조하려고 노력했다. 요새 유행하는 MBTI를 활용하기도 했는데, 멤버마다 가장 어울리는 유형을 고심해서 골랐다. 예를 들어 탠져린즈의 모견 감귤이는, 낯을 많이 가리고 아무 소리 없이 조용하다가도 흥이 올라올 때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방방 뛰며 표현하는 스타일이라 INFP라고 했다. 눈치가 조금 없지만 속이 편하고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인싸’ 황금향은 ESFP라고 소개했다. MBTI로 표현하다 보니 사람들이 각 캐릭터를 보다 쉽게 이해하고 반가워하기도 했다. 겁이 너무 많아 적응이 걱정되었던 INFJ 조생이의 입양자님은 “가까운 지인 중에 INFJ가 많으니 조생이와도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오히려 우리를 안심시켜주기도 했다. MBTI가 아니더라도 눈을 잘 맞추는지, 낯선 환경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다른 개들과 놀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 등 각자의 특성을 최대한 발견하고 입양 홍보 과정에 표현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러한 개체별 특성이, 그 개가 무슨 품종인지보다 그 개에 대해 훨씬 더 많은 것을 설명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입양자가 반려동물과의 생활을 더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에도 한 번 이야기했던 부분이지만, 사람들은 개의 품종을 통해 어떤 이미지를 고르는 것 같다. 감귤이는 전형적인 하얀 진돗개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정작 인터넷에 나오는 진돗개의 특성 중에 맞는 부분이 거의 없다. ‘진돗개는 주인에 대한 충성심과 복종심이 강하며… 첫정을 준 주인을 오랫동안 잊지 못해.’ 네이버 지식백과에 적힌 정보이다. 하지만 우리 생각엔 감귤이는 탈주한다고 하여 그 마당으로 돌아가진 않을 것 같다. 개의 품종에 대한 서술은 때때로 ‘아시아인은 수학을 잘한다’는 말만큼이나 부적절하고 부정확하게 느껴진다. 단순 범주화해 이야기하는 것은 편리한 방법이지만, 실제로 각각의 개체와 마주할 때는 그다지 유용한 방법이 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내 친구가 ‘수학을 잘하는 아시안’인 것보다는 차라리 ‘수포자’(수학포기자)라는 점이 친구와의 관계에서 더 의미 있는 부분인 것처럼. 동물을 판매하는 입장에서는 단순 범주화해 ‘셀링 포인트’를 찾는 것이 아무래도 효과적일 것이다. 하지만 반려동물을 들이는 사람이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은 한 개체이므로 그 개체의 특성에 주목하고 준비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각자 지니고 태어나는 기질과 자라나는 환경의 아주 복잡한 결과물인 것처럼, 개들도 각자의 기질이 있고 어떤 환경에서 사느냐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는 것 같다. 반려동물과 꿈에 그린 듯한 일상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요소가 영향을 끼치고, 교육과 산책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비교적 많이 이야기되지 않는 것 같다. 우리도 처음에 금배를 반려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삶 안에 산책이 몇 번 추가되는 정도로 생각했다. 얼마나 안일한 생각이었는지. 돌이켜보면 집 안에 소파 하나 추가하는 수준이 아니고 삶이라는 집의 철근 구조만 남기고 모조리 리모델링하는 것에 더 가까웠다. 산에서 구조해 우리집으로 왔던 금배는 처음 들어보는 층간소음과 택배 방문 소리에 짖었고, 밤에도 자지 않고 인형을 물고 와 얼굴에 내려놓거나 배 위에 올라와 잠을 깨우곤 했다. 산책에서는 길을 따라 걷지 않았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음식을 신나게 먹었다. 고양이를 보면 흥분해서 쫓으려 했고 길에서 만나는 개들과 놀고 싶다고 버티는 통에 산책도 고통의 연속이었다. 우리가 출근한 뒤엔 심심했는지 벽지를 뜯어놓기도 했다. 나중에는 그것이 심심하기보다는 고립 장애에 가깝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그 모든 ‘문제들’이 너무 크고 심각하게 느껴졌지만, 나중에 보니 그 모든 일들은 개의 일반적인 행동 범주에 속하는 것이었고 단지 우리가 금배의 언어와 문화에 대해 잘 몰랐을 뿐이었다.


의젓한 금배이사의 과거 시절. 길로 다니지 않고 물건을 파괴했다.


개들은 1초 동안에도 여러 개의 몸 신호를 통해 교감한다. 귀와 눈동자와 얼굴의 방향, 근육의 경직도, 혓바닥과 꼬리 움직임 등등. 개와 함께 산다는 것은, 개가 인간의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인간 또한 개의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는 과정에 가깝다. 완전히 다른 나라의 문화를 배우는 과정인 것이다. 누군가는 금배의 어린 시절 행동을 보며 ‘문제행동’이라 이름 붙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문제행동’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인간 중심적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외국에 살던 사람을 설명도 없이 갑자기 완전히 낯선 곳에 데리고 와서 그 사람이 알아듣지 못한다고 ‘문제행동이 있다’고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지 않을까. 얼마 전 캘리포니아에서 가족과 사는 베르의 입양자님이 훈련사에게 베르가 짖는 걸 교정해야 할지 물었더니 “집에서 짖는다는 건 잘 적응했다는 표현이니 좋은 것”이라고 답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국과 같이 밀집된 주거 환경에서 짖음은 엄청난 문제행동이 되지만, 다른 환경에서는 긍정적인 행동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반면에 갑작스럽게 도심 속 빌라에서 살아야 했던 금배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무척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는 ‘한국 빌라의 층간소음’을 비롯해 도심의 각종 자극을 강아지 금배가 무던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많은 시간을 들였다.


작년 이맘때쯤 방송인 김희철씨가 ‘유기견은 키우기 어려워 초보자에게 추천하지 않는다’는 말을 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하지만 우리 생각엔, 유기견이 키우기 어려운 게 아니라 원래 모든 개는 키우기 어렵다. 김희철씨의 말은 마치 유기견이 아니라면 비교적 키우기 쉬운 개가 존재한다고 보는 것 같다. 어떤 순수한 상태의 이상적인 개 말이다. 우리는 바로 그런 인식이야말로 유기 문제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런 기대를 하며 개를 데려온 사람은, 순진무구한 백지 같은 존재가 아니라 통제 불가능의 복잡한 존재를 맞닥뜨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키우기 쉬운 개’는 없다.


더 나아가 어떤 인간이 상처를 받았다고 하여 그 상처만으로 그 인간의 전부를 설명할 수 없듯이, 구조된 개들 역시 상처받은 부분을 포함해 다양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노지감귤즈의 멤버 조생이는 아주 겁이 많고 조심스러운, 소위 말하는 ‘상처가 있는 유기견’ 같은 개였다. 하지만 조생이의 입양 가족은 기존에 고양이들을 반려하는 입장에서 조생이가 고양이에게도 조심스럽게 다가간다는 특징, 조용한 가족 분위기와 결이 맞는 차분한 성향이라는 점에서 완벽한 개라고 보았다. 조생이는 고양이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며 문제없이 합사에 성공했고, 얼마 전 태어난 아기를 포함한 인간 가족들과도 조용하고 편안하게 잘 지내고 있다.


만약 누군가 반려동물과 함께 살기를 고민하고 있다면 함께 살고자 하는 그 동물을 어떤 단면적 존재, 그러니까 키우기 쉬운 무결한 강아지 또는 상처받아 키우기 어려운 불쌍한 강아지로만 상상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보면 좋겠다. 사람들이 흔히 개에게서 기대하는 ‘댕댕이스러운’ 발랄하고 에너제틱한 모습의 개들은 보통 자극에 대한 흥분도도 높다. 그 흥분도를 가진 채 자극이 많은 도심 같은 공간에서 편안하게 살기 위해서는 개와 사람 모두 여러 가지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발랄한 강아지의 모습 뒤로 자극에 무던해지기 위해 해온 각종 시행착오와 노력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아지길 원한다. 반려동물 품종을 넘어서 각 존재의 고유한 특성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가 회자되길 바라본다.


'댕댕이답지 않은' 조생이는 그 덕에 고양이 식구들과 잘 지낸다. (우측 사진 제공=조생 보호자님 / 인스타그램 @josaengs_journey )




▶ 귤엔터 이사진 : 구낙현·김윤영·금배

MBTI가 ENFP인 사람, INTJ인 사람, 그리고 말이 없는 강아지 금배로 이루어진 팀이다. 매일 산책하는 금배와 더 행복하게 걷기 위해 최근 제주로 이주했다. 걷다가 만난 마당개와 들개의 새끼들을 길거리캐스팅하며 ‘제주탠져린즈’라는 반려견 연습생 그룹을 꾸렸다. 지금은 이들의 소속사 귤엔터로서 반려견으로 데뷔시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강아지 금배와 걸으며 만난 제주의 자연과 개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한다.



※ 이 글은 2022.09.23 경향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 

https://m.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209231607015?utm_source=urlCopy&utm_medium=social&utm_campaign=sha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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