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마
- 박노해 -
너는 초원을 달리는 야생마
어느 날부터 경주마로 길러지로
너는 지금 트랙을 달리고 있다
경주마가 할 일은
좋은 사료를 먹고 좋은 기수를 만나
레이스를 앞서는 게 아니다
경주가가 할 일은
자신이 달리고 있는 곳이 결국
트랙임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리고
트랙을 빠져나와
저 푸른 초원으로 걸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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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은 쓰기 위해서는 손톱을 잘라야 한다. 조금이라도 길어진 손톱은 자판을 자유롭게 두드리는데 성가신 장애물이다. 손톱을 자르고 자판을 두드렸을 때 느끼는 그 부드러움이란 해맑은 미소를 짓는 아이를 만나는 기분이다. 어제부터 잘라야지 했는데 오늘 비로소 자르고 나니 노트북 자판을 통해서 자유로운 세계로 빨려 들어간다.
자판을 쉴새없이 두드릴 수 있다는 것은 글감이 그만큼 풍부하다는 것이다. 그 때의 글감은 의도되고 예정된 빛바랜 계획에 의해서 나온 것들이 아니라 어느 순간 꽂혀서 흘러넘쳐 나오는 글감들이다. 글쓰기님을 만난 것이다.
오늘은 '경주마'라는 글감이 나의 손가락을 움직인다.
내가 최선을 다해서 심지어 다른 이들로부터 가끔씩 찬사를 받으며서 살아가는 삶조차 '경주마의 트랙'을 빠져 나오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엄습해온다. 혹시라도 내가 열심히 살아온 것이 좋은 사료를 먹기 위해서 좋은 기수를 만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 것은 아닐까 처음보는 오래된 항아리의 두껑을 열듯이 조심스러워진다.
이 시의 의도하는 바에 기준을 둔다면 열심히 삶을 산다는 것은 나의 삶이 결국 '트랙' 위였다는 것을 알기 위함인데 이것 자체를 생각해볼 기회가 없었다면 놀란만한 일이다.
교육을 하고 강의를 하는 것 또한 그 학습자들이 경주마로서 스스로 '경주마 트랙'을 발견하고 그 트랙을 벗어나 자신이 야생마라는 사실을 깨닫고 '푸른 초원'으로 눈을 돌릴 수 있도록 하는게 아닐까? 물론 이런 화려한 원리를 충분히 적용할만한 교육 현장은 없다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것이 영원불멸의 변명 또한 되지 않다는 것도 현실 중에 현실아닌가?
내가 주로 만나는 현장의 주민들이 다시 떠오른다. '스스로 말하게 하라' 를 최고의 신념으로 삼고 주민들을 만나고 있다. 수많은 공모사업과 행정주도의 사업 속에서 어느 듯 좋은 사료를 가져오고, 좋은 기수를 모셔오는 것이 주민 지도잗 최고의 덕목으로 추앙받는 현실 속에서 '저 푸른 초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 '경주마'라는 시는 매우 적절하고 강력한 변화의 도구가 될 것 같다.
정말 능력있는 강사는 말이 많지 않더라. 정말 역량 높은 강사는 강의안 ppt 슬라이드가 그렇게 많지 않더라.
남을 교육하기 전에 나를 먼저 교육해야하는 것은 진실 중에 진실!! 나는 어떤 트랙을 달리고 있는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좋은 사료를 먹고 다시 그 트랙을 처음 보는 듯 아무런 생각없이 또 달리고 있는 건 아닌가? 나의 '저 푸른 초장'이 나의 머리 속에 잠시 머문 적은 있는가? 나는 '저 푸른 초장'을 동경한 적은 있는가?
시인이 노래한 '푸른 초장'을 다시 머리 속에 되내이며 마음 깊은 곳 가슴판에 지워지지 않는 글씨로 새겨서 트랙을 달리되 언제든지 트랙을 벗어나 나의 푸른 초장을 달려갈 수 있는 깨어있는 야생마가 되자.
나는 야생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