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계곡: 스스로 과소평가
6년차 커리어 시점에 두번 째 승진이라는 걸 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디엠이 쏟아졌다.
팀장님 승진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누구나 처음엔 자신이 없다.
내 목표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실무자일 때는 내 일만 잘해도
인정을 받을 수 있는데,
팀장은 팀 전체가 잘해야 내가 잘 하는 것이다.
한번도 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팀장이 될 수 없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의심부터 했다.
그리곤 팀원들에게도 고백을 했다.
제가 팀장은 처음이라
시행 착오가 많을지도 몰라요.
이번 글에는 내가 신입 팀장이 되었을 때의
새로운 미션들, 그리고 자신감이 뚝뚝 떨어졌던
시행착오들을 기록해보고자 한다.
(나중에 다시 팀장이 되면 이것부터 잘 챙겨야지-)
팀장이 되면 가장 첫 미션이지 않을까 싶다.
내가 스타트업에 와서 느낀 건데
스타트업에선 개인들이 팀 목표 설정을
매우 중요시 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규모가 꽤 큰 기업에 비해
변화도 많고 업무량도 많다 보니
우선순위를 정하기 위해 목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CRM 팀장이었는데, 큰 사업별로
CRM이 기여해야 하는 OKR을 작성했다.
각 OKR마다 담당자도 명확하게 구분했고,
그에 맞는 수치적인 목표는 담당자와
싱크해서 부서에 공유했다.
여기서 겪었던 실수는 목표 설정이
너무 오래 걸렸던 점..
전사 OKR 수치를 기다리다가
1개월을 훌쩍 낭비한 적이 있었다.
레슨런. 하염없이 기다리지 말고
그래도 팀이 다음 6개월 간 어떤 업무가
중요한지는 탑레벨로는 알고 있으니
그거라도 세우고 팀과 싱크를 계속 맞추자.
목표 수치가 하나 채워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보다 액션 하나를 더 해야 할 것을
찾는 것이 팀장의 역할이다.
CRM은 마케팅 부서에 속해 있는데,
그 중에서도 협업부서가 가장 많은 팀이었다.
디자인, 사업, 정보보안, 개발, 제품, CX팀까지
협업이 늘 몸에 베어 있어야 했지만
그로 인해서 팀 우선순위가 타 팀 프로젝트에
의해 많이 뒤바뀔 때도 있었다.
이게 개인의 동기를 많이 무너뜨릴 때도 있었다.
그래서 전사 핵심가치 외에도
CRM 팀원들에게 늘 강조했던 건
"협업을 잘 한다"이다.
내 기준으로 협업을 잘 한다의 기준은
이런식으로 파악할 수 있다.
타 부서가 눈치보지 않고 우리 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타 부서가 요청을 하고 우리가
거절해도 양쪽다 찜찜할 것이 없다.
타 부서가 우리와 협업했을 때의
경험을 좋게 기억하고 있다.
타 부서가 우리 팀원들이
똑뿌러지게 일한다고 인정한다.
협업을 잘하는 개개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내가 많이 했던 건 "공감대 형성"이다.
이게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각자 입장에 맞게만 상황을 해석하는게 당연하다.
그래도 팀장은 실무자보다 갖고 있는
정보량이 더 많다 보니
타 부서 상황과 왜 그들이
이 시기에 이런 요청을 했을지를 파악해서
조금이라도 갈등이나 어려운 마음을 풀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각자 입장을 이해하게 되면
힘들어도 공동 목표를 향해
그들의 고민을 한번이라도 더 들어주게 된다.
타 부서 리더들에게도 가끔 팀 회고 차원으로
협업 경험을 물어보곤 했는데
모두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어 어깨가 으쓱했다.
이 것이 부모의 마음인가-
일을 아무리 잘해도 누구나 회사에선 고민이 있다.
업무 환경, 방향성, 동료 관계, 커리어 등
정말 다양하다.
팀원이었을 때는 다른 팀원과 1:1을 하면
솔직히 정말 가벼운 커피챗 정도로 그쳤다.
하지만 팀장이 되니, 1:1을 대하는
자세가 바로 바뀌더라.
1:1이 있을때 회의록에 늘 같은 아젠다를 써갔다.
"이번 한주는 어떤 것에 집중하고 있나요?
그 OKR을 달성하는데 어떤 고민이 있나요?
그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제가 어떤 것을 도와드릴 수 있을까요?"
가능하면 팀원들에게 1:1 전에 꼭 회의록을
미리 작성해달라고 요청하고
난 들어가기 전에 아젠다를 미리 숙지하고 들어갔다.
이제 나는 고민을 들어주러 1:1을 하는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1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임무가 생기면
직접 개입하거나 해결해줄 수 있는
담당자를 찾아갔다.
내 팀원이 힘들다는데 내가 나서야지-!
팀장이 되고 나선, 팀원의 고민이 내 고민이고
그래서 더 돈독함과 신뢰가 형성되었던 것 같다.
팀장이 되고 나서 진짜 어려웠던 것 중에 하나이다.
팀장은 실무를 같이 할 수 없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대부분의 회사는
팀장이 실무를 하는 걸 원치 않는다.
리더는 실무를 잘 할 수 있게
환경 구축을 하거나
팀원을 교육하거나
실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더 시간을 투자하는 것을 기대한다.
내가 혼자서 빠르게 실무를 하면
캠페인 하나가 빨리 끝나지만,
손이 부족해서 내가 하는 건
사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아닌
그냥 쌓인 일더미를 내가 함께
치워주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실무는 실무를 잘하는 팀원들에게 맡기고
손이 부족하면 팀 채용 티오를 따오거나
자동화 방법을 알아보거나
우선순위를 조율하는 것이 팀이
목표 달성을 빠르게 할 수 있는 방법이다.
팀장이 되니 첫 6개월은 부족한 것만 보였다.
스스로 과소평가하게 되는 절망의 계곡에서
헤엄을 치는 나를 구조해주었던
팀원들이 오늘은 특히나 더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