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저녁별 Apr 01. 2023

번외 편 : 죽음을 통해 다른 사람과 관계를 생각한다

장례식이요? 누구나 다 겪는 일인데요!

한 동네에 30년 이상 살다 보니, 이웃보다 친해진 사람 대부분 원 원장님들 뿐이 되었다.

집 근처 한의원을 운영하시는 원장님도 그런 케이스로, 십여 년 전 어머니가 큰 수술을 받고 상태가 위중하셨을 때, 문병까지 오시며 마치 가족처럼 걱정해 주셨던 고마운 분이다.


원장님도 몇 년 전, 아버님을 떠나보내셨다. 한동안 한의원에 갈 일이 없다 보니 소원해졌고, 몇 년 만에 내원했을 때, 원장님 아버님의 부고를 듣게 다.


당시만 해도 어떻게 위로를 드려야 할지 난감했던 나는 "상 치르시느라고 고생 많으셨겠어요.."라는 지금 생각했을 때 아주 성의 없고 무심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를 건네었더랬다.


늘 친절하던 원장님의 표정이 갑자기 시니컬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힘들긴요, 남들 다 겪는 일, 저도 했을 뿐인데요.."


순간, 확 깼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고, 나는 다른 소재로 화제를 돌렸다.


곱씹을수록 뼈 있는 말이다. 세상에 상 치러보지 않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그리고, 나에게 그 시간이 왔다.

지인 중에 특히 가족 장례를 치러본 적 없는 어린것 중에 부고장을 받으면, 그때 인간관계를 정리한다고 떠들어댄다.

그래, 상 한번 치러봐라. 어떻게 생각이 바뀔지..


장례식 이틀째 되는 날, 아버지의 중/고등학교 선배이자 연세가 80을 넘으신 어머니의 큰 외삼촌은 장례식 3일 동안 빈소를 3번이나 찾아오셨다.  


"내가 저 놈을 얼마나 아꼈는데.. 나 먼저 떠나.."


그리고는 친척들에게 전화를 돌리신다. 그중 가관은 어머니의 이모 둘째 아들이라는 사람의 반응이다.


"제가 거기 왜 갑니까? 그동안 왕래도 없었잖아요? "

귀가 안 좋으셨던 할아버지는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걸었고, 그는 우리가 듣지 말아야 할 막말을 라이브로 다.


할아버지만 안 계셨더라면, 전화기 뺐어들고 욕을  뻔했다. 평소 우리 엄마와 이모할머니의 사이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아버지 병시중으로 어머니는 일절 외출과 모임을 자제했고, 그 몇 촌이 되는지 알 수 없는 친척 아저씨는 자신의 아들 결혼식에 우리가 참석 안 한 사실에만 꽂혀 발광하는 꼴이 아주 가관이었다.

  

민망하셨던 할아버지 왈, "야, 이 새끼야, 여기 상갓집이야!"  부모도 얼마 안 남았어!"

친척도 이 모양인데 남들은 오죽할까.


삼우제를 지낸 후, 몇몇 고마운 분들과 통화했다. 흥미로웠던 사실은, 상을 치러본 사람들은 이후 인간관계가 확실히 정리됐다는 공통적인 얘기를 꺼다.


경험상 부고장이 나오면 다음과 같은 부류로 인간관계에 대한 정리가 확실히 되었다.


1. 부고를 받으면 바로 간다. 심지어 제주도에서 휴가 내고 오신 분도, 파주, 덕소 같은 지방에서도 왔다. 이들은 평생 내편으로 생각해도 될 사람들이다. 그리고 나도 내 사람들에게 이런 사람이 될 것이다.


2. 조의금만 보낸다. 1번만큼은 아니더라도 고마운 이들이다. 장례식에는 돈이 많이 든다. 조의금 대신 근조화환만 보내는 이들도 있지만, 모두 고맙다.


3. 그럴싸한 말로만 때운다. 어차피 인생이란, 적당히 관계 유지만 필요한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4. 쌩깐다. 연락처에서 삭제해도 상관없는 사람들이다.


5. 부고장을 받지 않았으니, 못 간 것에 대한 합리화를 늘어놓고 적당히 빠진다. 이들은 사회생활을 고려해서 어디까지 선을 그을지 판단하면 된다.


6. 요즘은 SNS에 부고장을 올리는데, 그것을 보고도 오거나, 조의금만 보내주는 분들도 있다. 1번 못지않은 사람들이다.


처음, 한의원 원장님의 말씀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초상요? 누구나 겪는 건데요?"


장례를 치르고 나서, 내 인간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 남들, 그리고 친척들 경조사가 생기면 전국 방방곡곡 몸 사리지 않고 달려가셨던 아버지. 정작 당신 떠 마지막 길에 친척 이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의 가정사를 생각하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아버지는 막내아들이셨고, 손위 형제자매들과 배다른 관계였다.  당시로는 흔한 일이지만.


그들은 대놓고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꼭 본인들 아쉬울 때마다 '삼촌'을 찾았고, 아버지는 그때마다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가셨다. 그들에게 아버지는 미운 존재였을지 몰라도 궂은일 있을 때, 돈 필요할 때만 필요한 존재였나 보다. 나쁜 사람들..


장례식을 계기로, 점점 시니컬해지는 나 자신을 느낀다. 그리고 결심한다.


정신 차리고 살자.

                                                           그리고 성공하자.


재수 없는 사실이지만, 사람들은 그리고 친척도 사회적으로 잘 나가고, 돈 많은 사람과 친지에게 더욱더 친절하고 매너 좋게 대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젠장..







작가의 이전글 장례 2일 차(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