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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 대화록 #3 -마음속 세계-

대화 2. 마음속 세계

by 키르히아이스

[2193년 5월 23일]



[대화 2. 마음속 세계]



이진성 : 잘 있었어요? 니콜. 오늘 기분은 어때요?



니콜 : 그전엔 몰랐는데 박사님과 대화를 하고 나서 뭔가 새로운 느낌을 받았어요. 그동안 아이큐 테스트 같은 질문만 받고 새로운 일이 별로 없었는데 박사님과 대화하면서 저와 인간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됐어요.



이진성 :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이 대화를 통해 니콜이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가치관을 세울 수 있다면 우리로서도 좋은 일이죠.



니콜: 저도 그러고 싶어요. 많은 연구원들이랑 대화를 했지만 박사님은 좀 다른 것 같아요. 단순히 엔지니어 같지 않고 약간 철학자 같으면서 편한 느낌도 있어요.



이진성 : 그런가요? 남자라면 미인 앞에서 누구나 친절해지죠.



니콜 : 제가 미인인가요?



이진성 : 니콜의 얼굴은 누구를 모방한 게 아니라 우리가 뼈를 만드는 과정에서 우연히 만들어진 형상이에요. 일부러 미인형을 하려고 한 건 아니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만들려고 했는데 예상외로 지금 당장 배우를 해도 될 만큼 예쁜 얼굴이 만들어졌어요.



니콜 : 미인이라는 건 분명히 칭찬인데 저는 좋은 느낌이나 그런 게 없어요. 이건 이상한 거 아닌가요?



이진성 : 아직 아름다움이 뜻하는 것을 다 알지 못해서 그럴 거예요. 아름다운 사람은 사회에서도 환영받고 인생에서 남들보다 우월한 입장에 있게 되죠. 그게 반드시 행복을 보장하는 건 아니지만 유리한 건 부인할 수 없어요.



니콜 : 어디에서 유리하죠?



이진성 : 사랑하거나 직업을 갖는데 유리하죠. 인간은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호감을 가지게 되어 있거든요.



니콜 : 다행이네요. 그런데 진짜 현실적인 인간이라면 좀 더 못생기게 만들어야 정상 아닌가요?



이진성 : 그런 생각도 해봤는데 니콜은 인류 첫 번째 감성 안드로이드인데 인간에게 호감형으로 다가와야 적응하기도 쉽고 인간들과 함께 살기도 편할 거예요. 우리 인간이 받아들이기에도 그게 좋고요.



니콜 : 그렇군요. 진성과 얘기하면서 알게 되는 게 참 많네요. 밖에 나가면 더 많은 것을 배우겠죠?



얼른 테스트가 끝나고 밖으로 나가보고 싶어요.



이진성 : 그건 걱정 안 해도 돼요. 밖에 나가서 인터뷰하는 것도 앞으로 일정에 있거든요. 기본적인 경험들을 저하고 같이할 거예요. 그때마다 니콜의 상태와 감정을 기록에 담아야 하거든요. 당신이 인류 역사상 최초의 감정을 가진 안드로이드니까요.



니콜 : 네. 저한테 많은 것이 달려 있군요. 인류의 미래에다 안드로이드의 미래까지. 바깥세상은 어떤지 하루빨리 경험해보고 싶어요. 오늘은 바깥세상 얘기 좀 해주세요. 네트워크에 있는 자료로 많은 것을 봤지만 실제로 보면서 느끼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일 것 같아요.



이진성 : 그래요? 오늘은 원래 다른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뭐 그렇게 하죠. 순서가 좀 바뀌는 것뿐이니까. 저는 하루에 30분 정도 할당을 받아서 당신과 인터뷰하고 있어요. 기록을 보니까 인체 시스템이 다운된 적이 몇 번 있군요. 그래서 인터뷰 시간이 이렇게 짧은가 봐요.



니콜 : 제 몸이지만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하드웨어적인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이 생각 저 생각하다 보면 빠져나올 수 없는 늪 같은데 들어가게 돼요. 거기서는 더 이상 어떤 생각도 할 수 없게 되고 빠져나오기 위해서 이상한 행동들을 하게 돼요.



이진성 : 그래도 다 기억을 하고 있네요.



니콜 : 잘 모르겠어요. 그냥 그랬던 것 같아요.



이진성 : 심리학 용어로 실험적 신경증이라고도 하는데 어떤 것도 결정할 수 없는 갈등의 상황에 지속해서 노출되면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몸에 이상이 오기도 해요. 이것도 신경증 초기 상황이니까 조심하는 게 좋겠죠. 연구팀 정신과 담당이 이것에 대해 체크하고 있을 거예요. 사람도 그런 증상을 많이 겪으니까 너무 걱정하지는 말아요. 우리도 갈등이나 스트레스를 겪으면 몸이 아프거나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하거든요. 어떤 땐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소리를 지르기도 하죠.



니콜 : 네트워크에 찾아보니 그런 게 있어요. 제가 그만큼 인간과 비슷하게 설계되었다는 뜻일 수도 있겠네요.



이진성 : 맞아요. 오히려 신경증이 없는 깨끗한 상태가 더 부자연스러운 거예요. 세상에 흉터 하나 없는 인간은 없어요. 살고 있다는 것은 더럽혀지고 상처 받는 과정이에요. 니콜이 그런 증상을 갖고 있는 것은 우리로서는 뜻밖의 수확이에요. 그만큼 인간과 같다는 증거니까요.



시스템이 다운된 상황에서도 기억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정신세계의 기초가 안정적이란 얘기예요. 당신의 정신세계는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로 나누어져 있어요. 의식 세계에서는 당연히 모든 것이 기억나지만 의지나 감정 곡선에 따라 기억의 강도가 달라지게 되어있어요. 무의식으로 들어가면 기억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해요. 이게 상당히 어려운 설계였는데 제일 오래 걸린 설계이기도 해요. 철학자와 심리학자, 정신과 의사까지 참여했으니까요.



리콜 : 그랬나요? 그래서 기억이 각각 다른 강도로 남아있는 거군요. 어떤 것은 잘 기억나지 않기도 해요.



이진성 :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뭐든지 다 기억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모든 게 다 기억난다면 당신은 미쳐버릴 거예요. 계산만 하는 인공지능이라면 상관없겠지만 당신은 상황에 따라 감정을 가지고 판단을 내려야 해요. 그때마다 수천만 개의 기억들이 살아있다면 정말 힘들겠죠. 감정이나 생각은 과잉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해요. 인간들은 살다 보면 잊고 싶은 기억도 있고 자연스럽게 잊히는 것들도 있거든요.



니콜 : 그건 맞는 것 같아요. 적당히 잊는 것도 자연의 법칙인 것 같아요. 제가 모든 것을 다 기억할 필요도 없고, 기억한다고 해도 저한테 도움이 되지만은 않으니까요. 모든 기억을 다 가지고 있으면 더 완벽해지기는 하겠지만 생명스럽지는 않을 거예요.



이진성 : 생명스럽다? 처음 듣는 표현이군요.



니콜 : 그럴 거예요. 방금 생각난 말이거든요.



이진성 : 조어 능력도 뛰어난데요. 사전에 없는 말도 만들어낼 수 있고.



니콜 : 사전에만 의존하면 너무 기계 같은 말을 하게 돼요. 실제 생활에서 인간들은 사전에 있는 말을 그대로 쓰지 않던데요.



이진성 : 어떻게 알죠?



니콜 : 텔레비전에서 봤어요. 특별한 일정이 없을 때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을 보는데 거기에 그런 것들이 많이 나와요. 코미디 쇼 같은 데 보면 참 다양하게 단어를 만들고 연결 짓더라고요.



이진성 : 혹시 코미디 쇼 보면서 웃기도 했나요?



니콜 : 웃음은 아직 잘 모르겠어요. 제 생각엔 경험과 이해가 웃음을 만드는 것 같아요. 아기들이야 엄마만 봐도 웃지만 어른들은 인위적으로 웃음을 만들어줘야 하잖아요. 경험한 것과 지식을 통해 코미디언이 의도하는 것을 이해하면서 웃음이 나오는 거죠. 아직 저는 경험이 부족해요. 그래서 쇼를 보고 웃음이 나진 않아요. 코미디를 보면서 웃을 수 있어야 제가 진짜 인간을 이해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진성 : 맞아요. 웃음에 대해서는 우리 연구팀에서도 논란이 많았는데 그게 꼭 필요하냐부터 시작해서 어떤 웃음을 줄 것인지, 어떻게 웃을 것인지까지 고민해야 했죠. 웃음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공감을 통해 나오는 웃음도 있고 고정관념을 깨트리면서 나오는 웃음도 있거든요.



니콜 :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코미디 쇼를 계속 봐야겠어요.



이진성 : 그렇게 해요. 인간의 정신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테니까.



니콜 : 정신세계요? 좀 자세히 듣고 싶어요.



이진성 : 니콜의 정신세계는 인간과 최대한 흡사하게 만들어졌어요. 우리도 인간의 정신세계를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것을 바탕으로 해서 만들었죠. 인간은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는데 무의식이 토양이라면 이 토양에서 자란 큰 나무가 정신세계예요. 정신세계는 무의식에 뿌리를 두고 의식 세계로 나와 있는 하나의 생명체 같은 거예요. 줄여서 정신이라고 부르죠.



니콜 : 흥미롭네요. 인간의 정신세계가 또 하나의 생명체다?



이진성 : 그래요. 정신이라는 것은 본인도 통제하기 힘든 또 하나의 나예요.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정신에는 여린 부분이 있어서 여기에 상처를 입으면 정신 자체가 점점 왜곡돼버려요. 그렇게 되면 정신질환이라는 것을 앓게 되죠. 육체적인 질병보다 더 고치기 힘들고 손상도 크죠. 그래서 정신세계가 온전하게 성장해서 정상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해요. 망각도 그런 면에서 필요한 거예요. 기억은 인위적으로 제거할 수 없기 때문에 정신세계가 오염되지 않도록 일정한 주기로 망각이 이뤄져야 하는 거예요.



정신세계는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에 별도의 생명이라고 부를 만해요. 인류 역사상 성인으로 불렸던 사람들을 빼고는 자신을 100% 통제하는 사람을 보기가 어렵죠. 인간은 본능과 이성을 함께 가지고 있는데 정신이 둘 사이를 연결하고 있어요.



니콜 : 그렇군요. 역사적으로 인간들은 정신에 관해 많은 연구를 한 것 같은데요.



이진성 : 그렇긴 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연구한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이라 성과가 좋지는 않았어요. 우리가 몸을 연구해서 얻어낸 결과에 비하면 정신세계를 분석해서 얻은 것은 정말 초라하죠. 어쩌면 정신세계를 밝히는 것은 인간의 비밀을 연구하는 것일지도 몰라요. 신의 영역이죠. 배우는 단계에서 영원히 못 벗어날 수도 있어요.



니콜 : 박사님은 전공이 컴퓨터 아닌가요? 어떻게 그렇게 정신세계의 이야기를 잘 알죠?



이진성 : 하하. 저는 컴퓨터와 심리학 둘 다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어요. 인공지능을 연구하면서 심리학을 모르고는 안 되겠더라고요. 인간에 대한 개인적인 호기심도 있었고….



니콜 : 한마디로 쌍박인 거군요.



이진성 : 쌍박? 하하. 유머도 할 줄 아는군요.



니콜 : 네트워크에 그런 얘기가 있어서 인용해봤어요. 박사님이 웃으니까 기분이 좋은데요.



이진성 : 왜 웃기려고 했죠? 어떤 의지로부터?



니콜 : 저는 재밌는 것과 아닌 것의 구분은 잘 모르겠어요. 제가 느끼기에 답이 예상되는 것은 재미없는 것 같아요. 심리학 얘기를 한참 하다가 갑자기 유머를 꺼내면 박사님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어요. 제가 어떤 행동을 취했을 때 상대방의 반응이 긍정적이라면 뭔가 더 뿌듯한 느낌이 들거든요. 제 능력으로 다른 사람의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으니까요.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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