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와도 남는 것
화분을 선물 받았다.
밝은 주황색 모자이크 타일로 정육면체 모양이다.
타일 사이에는 흰색 줄눈이 채워져 있다. 오래된 연인 K가 이사 선물로 건넨 화분이다. 지난 6월에 이사를 마치고 집 안에 식물을 들이기 시작했다. 씨앗을 발아하거나, 모종을 구매해 심거나, 장성한 식물을 분갈이했다. 지난 3개월을 거쳐 화분 수가 11개에 이르렀다. 창가에 줄지어 볕을 맞고 있는 초록 순을 보면 혼자 사는 방도 덜 외로워 보였다.
눈에 보이는 화원에 들렸다. 어쩐 일로 오셨냐는 사장님에게 자랑스레 화분을 보여드렸다. 우리는 화분에 식물을 겹쳐보며 고민을 하다, 보스턴 고사리를 옮겨 심었다. 화분을 안고 본가에서 자취방으로 떠나는 두 시간 반의 여정을 시작했다.
"왜 이민 씨는 매주 본가에 가요?"
금요일 오후 직장인들의 단골 대화는 주말의 계획이다. 나는 본가에 간다는 답을 하고, 상대방이 저 질문을 하는 것은 당연한 서순이다. 왕복 5시간은 괴롭긴 해도 매주 가게 되는 건 왜였을까? 사람은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지면 자아가 달라진다고들 한다. 동일한 사람이 영어로 말할 때는 외향적이게 되고, 한국어를 사용할 때는 낮은 음성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나에게는 장소가 그러한 것이었다.
직주근접 때문에 살게 된 지역에서는 나는 빠릿빠릿하고 조금은 예민하고 동료에게 살가운 사람이었다. 고향에서의 나와는 같은 사람이 아닌 것만 같다. 좀 더 감정에 솔직하고, 예민할 일이 없어 너그러운 마음을 가진 사람. 2시간 반이 걸려 도착한 집 근처 역은 안도하게 되는 힘이 있었다. 영화에서 구질구질한 촌구석이 싫다며 고향을 떠나는 주인공들이 결국 마지막에는 그 장소를 그리워하다 결국 방문하지 않았던가. 매주 본가로 떠나고 돌아오며, 매주 이민을 하는 듯한 기분에 잠겼다.
몸을 구성하는 세포들은 매일 바뀐다. 오래된 세포들은 사라지고 새로운 세포들이 차지하여 신체의 일부분은 꾸준히 교체된다. 이곳에서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살 때는, 그녀로부터 온 음식으로 만든 세포들로 100% 나의 몸을 구성했을 것이다. 대학 생활을 하면서 점차 이 지역을 떠나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완전히 떠나왔다. 타지에서 스스로 음식을 해 먹고, 직장에서 제공하는 식사로 때우고, 그녀의 음식으로부터 점점 떠나가는 만큼, 많은 세포들은 그녀가 준 것으로부터 멀어져 대체되고 말 것이다.
매주 본가에 가니 일주일에 하루를 먹는다고 치면 7분의 1, 14% 정도만 그녀로부터 온 것으로 구성될 것이다.
달에 한 번 가는 사람은 3%,
1년에 한 번 가는 사람은 0.3%.
엄마로부터 점점 멀어져 언젠간 0%가 되는 순간도 오는 것일까? 물리적인 거리가 몸의 화학적 구성에도 영향을 주는 것만 같았다. 매주 그녀로부터 떠나고 있단 사실을 깨달으니 쓸쓸한 감정이 들었다.
그러나 심장만은 달랐다. 심장만큼은 세포 교체가 일부만 일어나 평생에 걸쳐서 단 40~50%만 교체된다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쉬지 않는 장기가 그 땅으로부터 온 50%는 교체되지 않는다. 그것도 몸의 정중앙에서 버티고 있다. 얼마나 멀리 떠나오더라도 가장 소중한 50%는 대체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기원으로부터 떠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음은 계속 고향에 간다. 더 이상 심장의 절반을 찾으러 돌아가는 여정이 괴롭지 않았다.
스스로를 뿌리내리지 못한 식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태껏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길에서 쏘다니는 것이라고. 사실 나는 고향이라는 뿌리가 박힌 화분이었다. 지금 들고 있는 화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