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현장 에세이 [01. 영화 '인턴']
2015년, 처음 영화 《인턴》을 보았을 때 나는 잘 나가는 IT 기업의 대표 ‘줄스(앤 해서웨이)’에게 온전히 마음을 빼앗겼다. 막 사업을 시작해 공격적으로 확장하던 시기였다. 아직 줄스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도 저 위치까지 빨리 나아가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쉼 없이 달리는 그녀의 일상,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압박감, 그 화려함 뒤의 고독마저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 고통이 성공의 증표처럼 멋져 보이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다시 꺼내 본 영화에서 내 시선은 줄스가 아닌 ‘벤(로버트 드 니로)’에게 머문다. 그 시절 고위 임원까지 지내며 전성기를 누렸던 남자가 은퇴 후, 삶의 목적을 찾기 위해 새파랗게 젊은 CEO 밑에서 수습 기간을 견디는 모습. 그 도전이 얼마나 눈부시고 위대한 것인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모두의 무관심 속에서도 벤은 품위와 여유를 잃지 않고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한다. “경험은 결코 늙지 않는다(Experience never gets old).” 이 한 문장이 품은 무게를 이제야 뼈저리게 깨닫는다.
어느덧 40의 문 앞에 접어든 나에게 다시 ‘막내’로 일을 시작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결단이다. 전공 분야가 아닌 다른 곳에서 사회 초년생으로 돌아가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 상상만으로도 두렵고, 과연 내가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 앞선다.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자신이 이루어놓은 것들을 끊임없이 붙잡고 살아간다. 사실은 별것도 아닌 그 작은 ‘감투’가 주는 권위와 권력에 목숨을 걸고, 그걸 놓칠까 봐 아등바등한다.
벤은 70세의 나이에도 과거를 내세우지 않는다. 기꺼이 셔츠를 다려 입고, 젊은 상사의 까다로운 비위를 맞추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찾아 나선다. 반면 나는 어떠했던가. ‘내가 누군데’, ‘내가 예전에 얼마를 만졌는데’라는 자격지심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혼자만의 낡은 영광에 갇혀 현재의 초라함을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 벤은 자신의 경험을 타인을 돕는 지혜로 사용했지만, 나는 내 경험을 나를 가두는 감옥으로 쓰고 있었다.
이제 그 무거운 과거를 묻어두고 다시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한다. 2022년 이후 3년의 긴 공백을 거쳐, 2025년 11월 드디어 첫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바로 ‘단편영화’다. 영화학교를 다니던 시절 이후 처음 접하는 단편 작업은 나를 다시 초심의 자리로 데려다 놓고 있다.
이미 상업적인 시스템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지금 이 시점에 단편을 작업한다는 것이 생계 면에서 얼마나 큰 결단인지 새삼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해 주는 동료들의 노력과 믿음, 그 따뜻한 도움들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있다. 내 마음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감사함으로 가득 차오른다.
벤이 보여준 태도처럼, 이제는 손수건을 준비하고 타인의 말을 경청하며 내가 서야 할 자리를 정확히 아는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나를 믿고 도와주는 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허울 좋은 껍데기를 버리고 다시 처음부터 배우겠다는 태도. 그것이 쳇바퀴 같은 절망을 벗어나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유일한 길임을 믿는다. 내 경험이 정말 늙지 않고 가치 있는 것이 되려면, 우선 그 경험을 바닥에 내려놓고 겸손해져야 한다.
오늘 이 글에 마침표를 찍고 나면, 내일부터 두 달여간 준비한 작은 영화의 촬영이 시작된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여전히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부딪히는 지점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나도 벤처럼 나만의 손수건을 품에 넣고 현장으로 향하려 한다. 내일의 내가 어디로 나아가게 될지, 두렵지만 궁금하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그 설레는 사부작사부작을 다시 시작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