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위에 돋은 굳은살이 만들어 낸 두 사람의 라라랜드

영화로 보는 현장 에세이 [05. 영화 '라라랜드']

by IMMM

처음 영화학교에 입학해 밤을 새워 써 내려간 나의 첫 시나리오. 설레는 마음으로 교수님 앞에 내밀었을 때, 돌아온 것은 따뜻한 조언이 아니라 내 얼굴로 날아오는 종이 뭉치였다.

"너 군대 안 갔다 왔지? 군대부터 갔다 와."

읽어보지도 않고 얼굴로 날아오는 나의 첫 시나리오에 처음에는 자존심이 퍽 상했다. 그리고 제대 후 만든 단편 영화들 역시 동료들과 교수님들의 냉정한 비평과 외면 속에 묻히며, 졸업을 앞두고서는 "나는 재능이 없나 보다"라며 카메라를 내려놓으려 했던 그 시절의 나. 하지만 돌이켜보면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상업 현장에서 수많은 거절과 냉정한 결과를 견디며 여전히 살아남게 한 것은, 그때 박힌 '굳은살'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오늘은 영화 '라라랜드'에서 바로 그 '거절과 비평' 속에서 자신을 지켜내며 길을 걸어가는 우리의 모습을 찾아보고자 한다.


1. 환상적인 오프닝과 짜증스러운 클락션의 소음 그 사이의 간극

실제 도로를 통제하고 촬영한 '라라랜드'의 오프닝 장면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고속도로 위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뮤지컬 넘버 'Another Day of Sun'으로 관객의 넋을 뺀다. 원테이크로 촬영된 이 장면은 꿈을 좇아 할리우드로 모여든 이들의 희망을 대변한다. 하지만 음악이 멈추는 순간, 영화는 가차 없이 우리를 꽉 막힌 도로 위, 짜증 섞인 클락션 소리가 난무하는 현실로 내동댕이친다. 이 대비는 매우 상징적이다. 우리가 꿈꾸는 결과물은 원테이크의 우아함과 화려함을 닮았지만, 그것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꽉 막힌 도로처럼 답답하고 소란스럽다. 배우를 꿈꾸는 미아가 오디션장으로 향하며 옷에 커피를 쏟는 장면은, 방금 전 오프닝에서 느꼈던 에너지가 얼마나 쉽게 현실의 사소한 불운에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image.png 오디션을 망치고 나오는 미야의 모습

오디션장에서 미아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연기에 감정을 쏟아내지만, 심사위원들은 그녀의 얼굴조차 제대로 보지 않는다. 미아에게는 인생이 걸린 '간절함'의 무대지만, 선택하는 자들에게는 그저 수백 번 반복되는 '형식적인 업무'일뿐이다. 그러나 그 심사위원들도 미야와 동등한 위치에 있거나, 있었음을 우리는 안다.

심사위원들로 대변되는 직업은 제작자/연출자/캐스팅디렉터 이 정도의 포지션의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미야처럼 꼬리에 꼬리를 무는 관계로 얽혀있다. 제작자는 투자자에게, 연출자는 제작자와 흥행 배우들에게, 캐스팅 디렉터는 제작자와 연출자에게. 자본과 흥행을 책임져야 하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개개인의 간절함보다는 결과물의 '확신'에 집중할 수밖에 없고 각자의 책임감에 짓눌릴 수밖에 없다. 이 지독한 간극에서 오는 거절은 모두 아프고 쓰리다. 하지만 거절은 내 존재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나의 통로'를 찾아가는 과정의 소거법이다.


2. 결핍과 고집이 만나 만들어 낸 로맨스

image.png 자신만의 음악에 빠져드는 세바스찬의 고집

우연히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에 이끌려 미아가 만나게 된 것은, 식당에서 해고당하면서도 끝까지 자신이 원하는 재즈 곡을 연주하고야 마는 세바스찬이다. 그는 돈이 되는 캐럴을 치라는 주인의 명령을 어기고 제멋대로 건반을 두드린다. 결과는 해고였지만, 그 순간만큼 그는 진짜 '예술가'였다.


현장에서도 그런 이들을 마주하곤 한다.

"그게 상업적으로 되겠어?"
"시키는 대로 해"

라는 비아냥과 권위에 눌리면서도 자신이 믿는 길을 꾸역꾸역 밀고 나가는 사람들. 어느덧 상업 현장에 스며들어 생계와 맞물린 타협을 하는 나에게, 세바스찬의 고집은 부러움 섞인 위로가 된다. 아마 미야에게도 세바스찬의 이런 고집스러운 내면의 힘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을지 모른다.


3. 아직 인정받지 못한 그들이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

image.png Spring. 봄이 오고 나서 한 파티에서 재회한 두 사람이 각자의 자존심을 세우는 장면

시간이 지나 재회하는 두 사람. 세바스찬은 촌스러운 파티에서 오브리 연주(행사 연주)를 하는 자신의 초라한 현실을 미아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한다. 그는 "내가 허락한 거다"라며 마치 이 상황을 자신이 통제하고 있는 프로 뮤지션인 양 자존심을 세운다. 세바스찬의 이런 예민한 반응은 지금 우리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 아직 아티스트로서 스스로를 증명하지 못한 자들은 때로 가시를 돋고 볼을 부풀려 자신을 지키려 애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뎌내야 할 이 시간 위에서 내가 너무나 초라해 보이기 때문이다. 존중받지 못하는 '나'는 가끔 정말 춥다 못해 도망가고 싶어 지니까. 그 볼품없는 가시마저도 사실은 꿈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눈물겨운 방어기제인 셈이다. 그렇기에 서로의 추위 속에 만난 두 사람의 로맨스는 한 여름밤의 꿈처럼 달콤한 위로로 다가온다.


4. 탭댄스의 마법: 비루한 현실을 로맨스로 바꾸는 찰나의 순간

image.png 보랏빛 노을과 탭댄스로 위로받는 순간

개인적으로 영화 속 최고의 장면으로 꼽는 언덕 위 탭댄스 장면은 가장 큰 위로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냉정하게 이 둘의 현실은 최악이다. 파티에서 무시당하고, 차는 견인되었으며, 앞날은 막막하다. 하지만 영화는 그 비루한 순간을 보랏빛 노을과 탭댄스로 아름답게 승화시킨다. 사실 이 장면은 우리가 현장을 견디는 이유와 맞닿아 있다. 현장에서 밤을 새우고 먼지를 마시며 예산에 치여 허덕이다가도, 모니터 안에서 기적 같은 한 컷이 나올 때 우리는 그 모든 고통을 잊는다. 고작 그 몇 초의 컷을 위해 수십 시간을 견디는 것. 미아와 세바스찬이 춤을 추듯 우리도 현장에서 각자의 스텝을 밟는다. 비록 현실은 꽉 막힌 도로 위일지라도, 카메라가 돌아가는 순간만큼은 우리만의 '라라랜드'가 있기에 우리는 오늘 하루도 견뎌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5. 굳은살이라는 이름 뒤의 성숙해져 가는 두 사람.

image.png 처음 탭댄스를 추었던 장소에서 "우리가 어디에 있는 걸까"라고 세바스찬에게 묻는 미아

봄으로 시작한 둘의 연애는 여름과 가을을 지나 겨울이 오며 헤어짐을 암시한다. 영화 '500일의 썸머'가 연상되는 이 시퀀스를 보며, 우리는 열정적으로 사랑하지만 동시에 너무나 날카로운 가시를 돋우고 있는 둘의 현실이 결국 해피엔딩을 맞이하지 못할 것임을 예감한다. 그 고슴도치 같은 로맨스의 아픔은 영화의 대표곡 'City of Stars'의 선율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포기하려는 미아를 끊임없이 밀어붙이는 세바스찬과,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 거냐"라고 묻는 미아. 그 질문에 세바스찬은 답한다.

"그냥 흘러가 보자(Where are we? / Just wait and see)."

이 대답은 로맨스를 넘어 같은 길을 걷는 동료로서의 진실된 응원이다. 보이지 않는 미래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저 오늘 하루를 흘려보내며 견디는 것뿐이라는 그 고백은 슬프다 못해 가슴 아리게 다가온다.

image.png 돌아서 나가는 미아에게 짧은 끄덕임으로 답하는 세바스찬

5년 뒤, 각자의 꿈을 이룬 두 사람은 세바스찬의 재즈 클럽 'Seb's'에서 재회한다. 이제 미아는 자신이 일했던 카페를 찾는 톱스타가 되었고, 세바스찬은 캐럴 대신 정통 재즈로 무대를 이끄는 클럽의 주인이 되었다. 수많은 거절과 차가운 시간을 이겨낸 두 '동료'는 긴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그저 세바스찬이 연주하는 피아노 선율 위로 '만약 우리가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이라는 환상적인 가상의 순간들이 'City of Star'의 피아노 선율과 함께 스쳐 지나갈 뿐이다. 다시 돌아간 가상의 과거에서, 영화 오프닝의 음악에 맞춰 마지막 탭댄스를 추는 그들의 모습은 가장 아름답고 성숙한 작별 인사가 된다. 클럽을 나서는 미아에게 세바스찬이 건네는 짧은 끄덕임. 그 표정에는 더 이상 5년 전의 가시 돋친 자존심이 없다. 대신 수많은 비평을 견디며 만들어진 단단한 '굳은살'과, 서로의 고통스러웠던 시간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는 무언의 존중만이 남아있다.


나의 시나리오가 얼굴로 날아오던 그날로부터 20여 년이 흘렀다. 나 역시 수많은 'No'를 겪으며 여기까지 왔다. 미아와 세바스찬이 마지막에 서로를 향해지어 보인 그 미소는, 비단 성공한 자들의 여유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끝내 버텨낸 동료에게 보내는 최고의 경의다.


그 끝을 버텨내고 스팟라이트를 받는 동료들도 있고 나처럼 아직 그 길 위에 시간을 견뎌내는 동료들도 있다. 매일 기다리고 오늘도 거절당하며 내일의 타협의 기로에 서 있는 모든 우리들에게 전하고 싶다. 우리의 얼굴에 날아온 그 종이 뭉치는 틀린 것이 아니라, 우리를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일 뿐이라고.


우리도 언젠가 미아와 세바스찬처럼, 서로의 굳은살을 알아보며 말없이 미소 지을 날이 올 것이라고 말이다.



"하나 둘, 하나 둘 셋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