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현장 에세이 [06. 영화 '아메리칸 쉐프']
셰프들의 주방은 우리의 현장과 퍽 많이 닮아있다. 미슐랭 스타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담아내는 그들의 요리와, 영화제를 비롯한 관객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우리의 영화나 드라마는 그 결을 함께 한다. 영화 '아메리칸 셰프'는 일류 레스토랑의 주방장 칼 캐스퍼가 SNS 트렌드와 평론가의 권위에 난도질당하며 시작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화려한 코스 요리가 아니라, 낡은 푸드트럭에서 구워내는 '쿠바 샌드위치' 한 조각이다.
오늘은 영화 '아메리칸 쉐프'를 통해,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라는 봉준호 감독이 샤라웃한 마틴스콜세지의 말을 인용해 본질적인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영화 초반, 칼 캐스퍼는 레스토랑 사장의 압박에 밀려 자신이 내놓고 싶었던 창의적인 메뉴 대신, 십 년째 똑같은 '초콜릿 라바 케이크'를 만든다. 이때 줄에 매달린 채 흔들리는 해골 인형을 바라보는 칼의 시선은 마치 시스템에 매여 자유를 잃은 자기 자신을 투영하는 듯하다. 결과는 처참했다. 영향력 있는 비평가 램지 미첼은 그의 요리를 두고 "진부하고 영혼이 없다"며 조롱한다.
우리의 현장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대중의 기호, 투자자의 입김, 혹은 소셜 미디어의 실시간 반응이라는 '타인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끊임없이 압박받고 타협한다. 사실 자본이 투여된 상업 예술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건 쉽게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다. 우리는 우선 스코어와 결과를 만들어 내어 자본의 인정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나다움'을 시도해 볼 수 있는 아주 작은 틈새를 얻는다. 어쩌면 초반부 칼이 평론가에게 쏟아부었던 그 폭발적인 분노는, 평론가 개인이 아니라 자본과 타협하며 영혼을 잃어갔던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가족과의 시간까지 단절한 채 모든 걸 쏟아부었지만, 칼은 결국 모든 것을 잃고 바닥으로 추락한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것은 화려한 주방이 아닌 먼지 쌓인 고물 푸드트럭이었다.
영화 초반부의 칼처럼 우리는 가끔 눈앞의 명예와 압박에 짓눌려 가장 소중한 것을 뒤로 미루곤 한다.
'아이언맨'의 감독으로 유명한 존 파브로는 이 지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그는 '아이언맨 2' 촬영 당시 마블 스튜디오의 과도한 간섭에 지쳐 있었고, 그 이골이 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만든 독립적인 영화가 바로 이 '아메리칸 셰프'였기 때문이다. 극 중 칼의 여정은 곧 감독 자신의 해방기이기도 한 셈이다.
결국 가장 자유로운 곳을 찾아낸 칼. 그곳엔 지시하는 사장도, 평가하는 평론가도 없다. 오직 뜨거운 그릴과 아들 퍼시, 그리고 자신이 가장 잘하고 즐거워하는 '쿠바 샌드위치'만 있을 뿐이다.
돈을 내지 않고 먹는 사람들의 모습에 궁금증을 갖는 아들을 보며 칼은 말한다.
내 인생의 좋은 일들은 다 이 일 덕에 생겼어.
내가 뭐든지 잘하는 건 아니야
난 완벽하지 않아 최고의 남편도 아니고, 미안하지만 최고의 아빠도 아니었어
하지만 이건 잘해
그래서 이걸 너와 나누고 싶고, 내가 깨달은 걸 가르치고 싶어
요리로 사람들의 삶을 위로하고, 나도 거기서 힘을 얻어
너도 해보면 거기에 빠지게 될 거야.
이 대화에는 부족하지만 아빠로서, 그리고 창작자로서 칼이 가진 순수한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나를 비롯해 우리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모두 완벽하지 않다. 아니, 완벽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일을 사랑하는 순수한 열정 하나로 버티는 이들이 대다수다. "똑똑한 사람들은 이 현장에 들어오는 순간 빠르게 그만둔다"는 말이 돌 정도로, 이 일은 사랑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압박과 불안, 때로는 모욕감까지 수반한다.
자신의 욕심과 열정 때문에 소중한 주변의 것들을 후순위로 밀어두고, 평범한 나이에 걸맞은 안락한 생활을 포기하며 사는 우리들. 하지만 우리는 '함께 만든 작품'이 주는 단 한 번의 희열을 위해 그 시간을 버텨낸다. 낭만이라는 이름으로 그 부족함을 위로하며 하루를 견뎌내는 것이다.
잘나가는 레스토랑의 셰프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와 본질을 회복하는 칼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다. 가장 순수했던 학생 시절, 단편영화를 찍던 그 마음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그 '가장 개인적이었던 순간'의 순수함이야말로, 비로소 나를 나답게 만들고 다시금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창의성의 시작점이 아닐까? 영화 속 칼은 우리에게 그렇게 묻고 있다.
아들과 함께 푸드트럭을 타고 대륙을 횡단하는 여정은, 잃어버렸던 '초심'과 '관계'를 복원하는 과정이다. 기술적인 완벽주의에 갇혀있던 셰프가 비로소 손님과 진정으로 소통하는 법을 깨달았음을 보여주며, 결국 최고의 레시피는 화려한 테크닉이 아니라 만드는 이의 즐거움이 프레임 밖으로 넘쳐흐를 때 완성된다는 것을 이 영화는 맛깔나게 증명한다.
칼의 푸드트럭이 SNS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이유 또한 세련된 마케팅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아빠와 전국을 누비며 즐겁게 요리하는 이 시간을 기록하기 위한 아들의 진심 어린 마음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말처럼, 가장 창의적인 것은 결국 나의 가장 깊숙한 곳, 나의 가족, 나의 소박한 기억 속에 숨어 있었다. 남의 눈치를 보며 깎아내던 조각상이 아니라, 내 아이를 위해 정성껏 구운 샌드위치 한 조각에 진짜 '예술'이 깃들어 있었던 것이다.
영화 후반부, 칼의 트럭으로 비평가 램지 미첼이 찾아와 둘은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칼은 자신을 가장 낮은 곳으로 추락시켰던 그로부터 오히려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된다.
우리 모두의 현장은 여전히 치열하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혹은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해 우리는 여전히 소중한 것들을 뒤로 미루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끔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지금 내가 만들고 있는 것이 '남의 입맛'을 맞추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나의 영혼'을 담은 샌드위치인지. 낡은 트럭 위에서 땀을 흘리며 웃던 칼 캐스퍼의 표정처럼, 가장 개인적인 즐거움이 당신의 다음 컷을 가장 창의적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 믿는다.
'아메리칸 셰프'는 그저 성공담이 아니라 '스스로의 정렬'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길거리 푸드트럭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샌드위치를 파는 칼의 표정은, 에어컨 빵빵한 주방에서 권태롭게 지시를 내리던 때보다 훨씬 생경하고 활기차 보였다. 억지로 바닥을 경험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는 가끔 스스로를 좁은 길로 몰아넣고 내면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쩌면 그곳에서만 들리는 작은 목소리가 각자의 내일을 크게 바꾸어 놓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오늘 당신의 주방은 안녕하신가요? 혹시 남의 입맛에 맞춘 요리만 하느라 정작 당신 자신은 허기에 지쳐있지는 않은지, 오늘 밤은 자신만의 레시피를 다시 꺼내어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아무래도 저 자식이 우리 파트너 되겠는데?"
P.S 2015년 개봉인 작품에서 예언했던 2026년
10년이 흐른 지금, "누가 6초짜리를 찍어?"라는 극 중 대사는 너무나 변해버린 콘텐츠 시장을 환기시킨다. 사실 이 때부터 SNS 숏폼의 징조는 지금 시장의 시초였을지 모른다. 감독 존 파브로는 변화하는 시장의 생리를 이미 예견하고, 그 안에서 어떻게 '진심'을 유지할지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