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현장 에세이 [07. 영화 '머니볼']
"자신이 평생 해온 경기에 대해 우린 놀랄 만큼 무지하다"
Mickey Mantle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타자 미키 맨틀의 명언을 시작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너무 오랜 시간 몸에 새겨진 고정관념과 관습에 갇힌 필드는 본질이나 데이터적 사실을 수용할 여백이 없다. 야구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를 거쳐 학습된 분야에서, '경험'과 '직관'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관행을 객관적인 분석으로 재검토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오늘의 영화 '머니볼'은 실화를 바탕으로 이 단단한 카르텔에 금을 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단장 빌리 빈(브래드 피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현장의 모습을 투영해보고자 한다.
수십 년간 야구판을 지켜온 스카우트들이 모인 회의실은 노랗고 텁텁한 조명 아래 담배 연기와 낡은 종이 더미로 가득하다. 그곳의 백발노인들은 "걔는 여자친구가 못생겨서 자신감이 없어"라는 식의 전근대적인 직관을 내뱉는 반면, 빌리가 피터(조나단 에이치 헨드릭스)를 데려와 구축한 사무실은 차가운 블루 톤의 모니터 빛과 무미건조한 키보드 타격음이 지배한다. 이 두 공간의 대비를 통해 베넷 밀러 감독은 고정관념과 변화에 대한 상반된 태도를 보여준다. 이에 더해 야구 경기 장면보다 '전화기를 붙들고 트레이드를 성사시키는 빌리의 얼굴'을 더 집요하게 클로즈업하며, 홀로 시스템에 도전하는 자의 고독한 압박감 또한 강조한다.
우리의 현장도 이와 닮았다. 소위 '입봉'하는 연출과 작가들은 본인의 작품임에도 의견을 관철하기가 쉽지 않다. 몇 백만 분의 확률을 뚫고 기회를 잡아도, 자본 아래에서 '신인'은 경험과 직관으로 무장한 업계 선배들의 간섭을 받는다. 투자사, 제작사, 각 파트의 베테랑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은 작품을 만드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생존 게임이다. 영화 속 빌리 역시 선수 출신이었으나 스타플레이어는 아니었기에, 급격한 변화를 주도하는 그의 리더십은 끊임없이 의심받는다. 자본이 움직이는 모든 산업에서 플레이어들은 각자의 불안 속에 뭉쳐 변화를 거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2014년 웹드라마가 처음 시작될 때도, OTT가 등장했을 때도 방송국들의 반응은 비슷했다.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잠깐 반짝이는 콘텐츠다". 10여 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더 이상 TV를 소비하지 않는다. 웰메이드 콘텐츠는 거대한 자본이 잠식한 해외 OTT에서 나오고, 우리는 그 안에서 저비용 고효율의 결과물을 생산하는 콘텐츠 공장이 되었다. 당시 기성세대가 자신의 '밥그릇'과 안정감을 지키기 위해 변화의 노크를 무시했던 결과다. 새로운 물결에 확신을 가졌던 나조차 결국 기성세대의 세상에 편입되고 싶어 그 확신을 끝까지 지키지 못했으니, 이 영화 속 빌리의 투쟁이 남의 일 같지 않게 다가온다.
부자 구단인 양키스와 달리 가난한 구단이었던 오클랜드는 우선 머니 게임에서 지고 시작한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었던 빌리가 선택한 것은 고정관념, 즉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데이터였다. 그런 데이터로 빌리가 선택한 선수들은 하나같이 '결함'이 있는 이들이었다. 팔이 꺾여 송구가 안 되는 포수, 나이 든 노장, 사생활이 복잡한 투수. 기존 스카우트들이 "쓰레기"라고 부르던 이들을 빌리는 '출루율'이라는 하나의 데이터로 엮어낸다.
영화 속 야구처럼 '출루율'이라는 기준이 되는 데이터가 있다면 통계의 기준점을 만들어 볼 수는 있으나, 콘텐츠 시장에서 그 기준점을 잡기란 사실 쉽지 않다. 흥행 스코어가 보증된 배우들, 작가와 연출들에게 큰 개런티를 지급하는 것은 검증된 데이터의 논리다. 아직 검증되지 않은 잠재력에 투자를 하는 것은 투자가 아닌 '투기'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흥행 스코어가 보장된 그들 조차 항상 검증된 결괏값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다. 9회 말 2 아웃부터라는 야구만큼 콘텐츠 시장도 정말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항상 현장의 편견이 놓친 본질을 발굴하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가 왜 이들을 선택했는가"를 결과로써 증명해 내기란 영화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빌리처럼 주어진 상황 안에서 최선의 기획을 하고, 항상 거대 텐트폴 장르들과 싸움을 붙으며 언더독의 영광을 기대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1억, 10억, 100억... 어떤 자본의 콘텐츠든 예산 안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만드는 사람들에게나 의미가 있을 뿐이다. 결국 스코어로 연결되는 관객을 움직이는 것은 검증된 스타들의 '이름값'이며, 그것이 리스크를 줄이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처럼 이상은 항상 현실의 벽 앞에 무력하게 무너지곤 한다. 그렇기에 빌리도 20연승이라는 최고의 데이터를 만들어 낼 때 가장 불안해했던 것일 지도 모른다. 갑자기 찾아온 기적은 한순간에 사라지고는 하니까 말이다.
스탠퍼드 장학금을 뿌리치고 프로를 선택했던 빌리의 첫 시작. 그러나 재능을 빙자한 스카우터들의 환상은 빌리의 현실을 책임져주지 않았다. 언제든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가볍게 사회에 발을 내딛는 순간, 빌리처럼 우린 이미 돌아갈 수 없을 만큼 멀리 와버린 자신을 발견한다.
그 어중간한 길 위에 서 있는 우리에게 누군가는 지금도 늦지 않았다며, 확신이 안 서면 그만두라고 쉽게 말한다. 그러나 우린 쉽게 그만둘 수도 없기에, 결과를 만들지 못한 우리에게 쏟아지는 "능력 밖"이라는 서러운 냉대들을 견뎌내야 한다.
"재능이 있으면 계약은 할 수 있지만, 자신감은 성적에서 나온다"
는 영화 속 해설의 말이 "누구나 할 수는 있지만 아무나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처럼 들리는 건 아직 결과를 만들지 못한 나의 자격지심 섞인 환청으로 들리기도 한다.
영화 말미, 빌리는 말한다.
"이래도 야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How can you not be romantic about baseball?)"
하지만 이 말은 나에게 다르게 와닿는다. 현장을 사랑하기 때문에 너무나 고통스러운 것이다. 빌리는 20연승의 순간에도 구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현장에 발을 들이는 순간 자신의 차가운 숫자가 뜨거운 감정에 휘말려 무너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가장 뜨거운 현장에서 가장 차가운 평정심을 유지해야 하는 모순.
콘텐츠 현장도 마찬가지다. 언더독의 시도가 당장의 '대박'이 되지 못할지라도, 그 과정에서 발굴된 새로운 얼굴과 서사는 언젠가 산업의 토양을 바꾼다. 모든 거물(Star) 역시 한때는 누군가의 '무모한 투자' 대상이었던 신인이었다. 우리가 '출루율 높은 신인'이 홈런을 칠 것이라는 희망을 버린다면, 현장은 그저 숫자 계산기일 뿐이다. 우리도 빌리처럼 여기서 꼭 '우승'하고 싶어서 이 척박한 곳을 견뎌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일터는 지금 어떤 언어를 쓰고 있는가? 여전히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낡은 직관이 데이터의 경고를 압도하고 있지는 않은가? 누군가는 우리의 경력을 숫자로 재단하고, 누군가는 관습을 이유로 새로운 시도를 짓밟지는 않은가? 방해와 불안, 책임감은 우리를 감정적으로 만들고 주변은 끊임없이 채찍질한다. 그 속에서 결국 믿어야 하는 건 나 자신뿐이다. 자신의 신념을 밀어붙일 용기는 쉽게 주어지지 않고, 20연승 같은 기적은 드물다. 다만 스스로 가두고 포기한다면 기회조차 만들 수 없기에 우린 끊임없이 부딪히며 나아가야 한다.
영화 '머니볼'은 세상이 정해놓은 가치 측정 방식에 의문을 던지는 이야기다. 지금 당신의 책상 위, 혹은 편집 모니터 앞에 앉아 있다면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관습의 노예인가, 아니면 새로운 문법을 써 내려가는 중인가. 현장은 언제나, 가장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조금씩 변화 중이다.
"그냥 쇼를 즐겨요(Just enjoy the sh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