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 위기종들의 틱, 틱... 붐!

영화로 보는 현장 에세이 [10. 영화 '틱, 틱... 붐!']

by IMMM
저는 존이에요. 뮤지컬 작가죠. 멸종위기종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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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시작하는 주인공 조너선 라슨의 이 자기소개는 결코 가벼운 농담이 아니다. 자본이 모든 가치를 결정하는 세상에서, 오직 자신의 감각과 열정만으로 무언가를 창조하려는 창작자들은 문자 그대로 '멸종 위기종'이다. 모든 예술가는 꿈꾼다. 찬란한 성공을. 그리고 자신이 천재가 아님을 깨닫는 찰나, 잔인한 현실의 시간에 혹독하게 치이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에는 궁금했다. 예술을 전공한다는 것이 대체 어떤 의미일까? 나조차도 영화학교를 나왔지만, 예술은 정말 배울 수 있는 영역일까? 그 의문은 여전하다. 다만 이제야 조금 깨달은 점이 있다면, 예술학교에 진학한다는 것은 예술 그 자체를 배우기보다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보호받는 마지막 울타리 안에서 '자신이 다른 길을 갈 수 있을지'를 치열하게 고민해 볼 기회를 얻는 시기가 아닐까 싶다.


그 마지막 보호 테두리가 사라지고 상업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예술가'로 치장했던 우리의 시간은 수많은 거절과 냉정함 앞에 상처 입고 좌절한다. 이때부터는 더 이상 자아실현의 문제가 아니다. '생존' 그 자체다. 오늘은 뮤지컬 <렌트(RENT)>의 작가 조너선 라슨의 삶을 다룬 영화 "틱, 틱... 붐!"을 통해, 차가운 사회에 던져진 창작자들의 시간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1. 사랑에 이끌릴 것인가, 공포에 이끌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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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생애 중 8년이라는 시간을 통째로 갈아 넣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조너선은 뉴욕의 식당 서빙 일을 하며 8년 동안 단 한 편의 뮤지컬 '슈퍼비아'를 쓴다. 그사이 주변 친구들은 하나둘 '현실'을 마주하며 꿈에서 깨어난다. 광고 대행사의 고액 연봉이나 안정적인 직장으로 떠나가는 그들을 보며 조너선은 스스로 묻는다.

"공포에 이끌릴 것인가, 아니면 사랑에 이끌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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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생각처럼 풀리지 않는 조너선의 상황과 먼저 꿈을 떠난 친구들의 경제적 자립은 '꿈과 현실의 괴리'를 뼈아프게 마주하게 한다. 보통 우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심한 무력감을 느낀다. 나조차도 40을 앞둔 이 시점에, 때로는 단돈 만 원, 백만 원이 없어 주변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가 있다. 안정적이지 못한 이런 순간들을 마주할 때면 거울 앞에 선 내 모습에는 차마 말로 표현하지 못할 비참함이 드리우곤 한다. 나의 상황을 이해하고 격려해 주는 이들이 있는 반면, 먼저 안정을 찾았거나 다른 업종에 종사하는 이들은 "그 나이에 아직도 그러고 있느냐"며 나의 비참함에 진한 한 숟가락을 더 얹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순간에 무너질 수 없다. 조너선의 8년처럼, 이 고립이 10년이 될지 20년이 될지 알 수 없으나 우리는 이 너머의 문을 열기로 스스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보호의 테두리를 넘어 상업 사회로 나오는 순간 마주하는 이 차가운 현실을 견뎌내는 것, 그것이 예술가라고 자칭했던 우리가 치러야 할 첫 번째 대가다.


2. 기획자의 숙명: 보이지 않는 것을 증명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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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조너선의 워크숍 무대와 그의 현실을 대비하며, 삶 자체가 한 편의 뮤지컬처럼 흘러가는 구성을 취한다. 조너선이 꿈꾸는 화려한 무대처럼 우리 삶도 환상적 일지 모르나, 막이 내리는 순간 마주하는 현실은 늘 냉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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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에게 가장 잔인한 형벌은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조너선이 워크숍을 앞두고 완벽한 '한 곡'을 쓰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를 때, 세상은 그를 그저 '꿈꾸는 백수'로 취급한다. 이것은 창작을 업으로 선택한 이들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수련의 동굴'이다. 절벽 끝에서 날개가 돋아나기를 기다리는 절박한 시간이다. 영화 내내 들리는 "틱, 틱..." 하는 시계 소리는 우리의 초조함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의 경험이 익어가며 마침내 문이 열릴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3. 마침내 문을 여는 이들에게: <렌트(RENT)>의 탄생과 진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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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조너선은 결국 8년을 바친 <슈퍼비아>를 무대에 올리지 못했다. 상실감에 빠진 그에게 에이전트 로자는 현실적인, 그래서 더 뼈아픈 조언을 건넨다.

다음 작품을 써. 그게 끝나면 또 쓰고 계속해서 쓰는 거지.
그게 작가야. 언젠가 하나 터지길 바라는 거라고.
다음 작품은 네가 잘 아는 것에 대해 써.
연필 날카롭게 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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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무책임해 보이는 이 말이 가장 진정성 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우리가 이미 그 현실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영화학교 시절을 돌이켜보면, 내 작품은 항상 '가짜다', '허세다', '진정성이 없다'는 평을 듣곤 했다. 기술의 문제라기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관념들의 집합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을 업으로 삼아 돈을 벌고자 한다면 상업 예술의 냉정함을 마주해야 한다. 나 혼자 즐거우려면 집에서 내 돈으로 만들면 그만이다. 하지만 대중 앞에 서기를 원한다면 조너선처럼 자신의 본질을 쏟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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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창작자가 이 지점에서 무너진다. '내가 틀렸나?' '내 감각이 시대와 맞지 않나?' 그러나 조너선은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실패와 고뇌를 그대로 담은 "틱, 틱... 붐!"을 썼고, 결국 뮤지컬의 역사를 바꾼 <렌트(RENT)>에 도달했다. 비극적 이게도 그의 공연이 오르기 전날 그는 숨을 거두었지만, 그의 '광기 어린 집착'은 영원한 걸작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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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일은 출산의 고통과 같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도, 고달픈 현실 속에서도 모든 것이 음표와 대사로 보일 정도의 집착이 있어야만 비로소 한 작품이 태어난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실패할지도 모르는 기획'들은 언제든 투자자에게 외면당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필수적인 공정이다. 우리가 겪는 비참함과 결핍, 보이지 않는 미래를 견디는 이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다. 우리는 지금, 다음 문을 열기 위해 연필을 날카롭게 깎고 있는 중이다.



� 에디터의 노트 (Editor's Note)

이번 에세이는 40을 앞두었지만, 여전히 통장 잔고보다는 꿈의 무게가 더 무거운, 그래서 여전히 비참함 한 숟가락을 일상처럼 삼키는 저를 다시 마주하고자 이번 영화를 선택했습니다. 영화학교 시절 "진정성이 없다"는 평에 밤잠을 설치던 그 청년은, 중년을 바라보며 아직 그 길을 찾지 못했지만 이제야 비로소 자신의 밑바닥을 솔직하게 꺼내 보인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술은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증명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제가 겪은 결핍과 상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문을 두드리는 이 간절함이 언젠가 제 다음 작품의 가장 강력한 연료가 될 것임을 믿습니다. 조너선이 그랬듯, 저 또한 제가 가장 잘 아는 이야기를 언젠가 쓰고 만들 수 있기를 다짐해 봅니다. 문 밖은 여전히 차갑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쓰고, 그리고, 만들어낼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있다는 유일한 증거이니까요.


P.S

개인적으로 이번에 영화를 다시 보며 느낀 점이, 우리나라만 나이에 대한 강박이 있는 줄 알았는데,

미국도 30살이 된다는 스트레스가 있나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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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에 마흔, 마흔 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