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크리에이터는 누구인가?

영화로 보는 현장 에세이 [13. 영화 '트루먼쇼']

by IMMM
"그는 언제든 떠날 수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요.
하지만 그는 떠나지 않죠. 자신이 처한 세상이 진짜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영화 <트루먼 쇼> 중 크리스토프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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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한 편의 쇼와 같다면, 우리는 지금 어디쯤에 와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간혹 이 쇼는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가짜처럼 느껴지게 하고, 세상이 나를 '억까'하나 싶을 정도로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알고 있다. 스튜디오의 벽을 뚫고 멈춰 선 트루먼의 배처럼, 우리도 어딘가에 결국 도착할 것이라는 사실을.


오늘은 영화 "트루먼 쇼(The Truman Show)"를 통해 우리가 진정으로 찾아야 할 'EXIT'에 대해 들여다보고자 한다.



1. 하늘에서 떨어진 조명, 시작부터 조성하는 불안함은 우리의 삶을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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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시작부터 관객의 가슴을 조마조마 만들며 불안감을 조성한다. 평온한 하늘에서 뜬금없이 조명이 떨어지고, 분명 죽었다고 믿었던 아버지가 노숙자의 모습으로 길거리에서 나타나는 등, 트루먼의 큐시트처럼 짜인 완벽하고 평범한 일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영화를 시작하면서 알 것이다. 트루먼이 이 세계를 쇼로 인지하는 순간 이 영화는 끝이 날 것이라는 걸. 그렇기에 영화 속 제작진들처럼 우리는 이 쇼가 트루먼에게 언제 들킬까 봐 불안해하며 이 영화에 몰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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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도 트루먼과 참 닮아 있다. 사회가 정해놓은 '평범함'이라는 각본, 타인의 시선이라는 카메라, 그리고 "이것이 너를 위한 안전한 길이야"라고 속삭이는 안락한 세트장. 우리는 그 안에서 마치 그것이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내 배역인 듯 연기하며, 도전과 변화를 두려워한 채 안주하며 살아간다. 어쩌면 매일매일 찾아오는 막연한 불안함은, 트루먼이 어느 날 아침 마주했던 '떨어진 조명'과 닮아 있을지도 모른다.



2. 가짜 바다와 트라우마, 나를 가두는 가장 큰 벽은 결국 나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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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의 상징적인 인사말, "못 볼지도 모르니 미리 인사하죠. 굿 애프터눈, 굿 이브닝, 굿 나이트!"는 역설적으로 그의 삶이 얼마나 지독하게 반복적이고 고정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쇼의 연출자인 크리스토프는 트루먼의 어린 시절 아버지를 바다에서 잃게 만드는 '물 공포증' 트라우마를 심어줌으로써, 그가 스스로 섬 안에 갇히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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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 단순하게 표면적으로 드러난 트루먼의 캐릭터만 보였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영화 속 크리스토프와 같은 업종의 일을 하면서, 이 얼마나 잔인하고 포악한 기획이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1998년작이니 망정이지, 지금 같은 시기에 이런 영화가 나왔다면 비평가들을 비롯해 '까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어느 기자들은 이 시선 자체를 물어뜯고도 남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 감히 표현하는 문장 중, 내 작품을 만드는 시간이 마치 '분만의 고통'과 같다고 한다. 자식 같다는 의미에서 그런 표현들을 쓴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그 모습이 영화 속 크리스토프와 닮아있다. 한 발자국만 멀어져 우리들만의 리그를 바라본다면, '트루먼쇼'는 인간이길 포기한 잔인한 소시오패스적 기획이다. 소위 '시청률', '관객 수'로 평가되는 자신의 가치 때문에 우리는 책임질 수 없는 유혹에 빠져들고는 한다. 그렇기에 영화 속 크리스토프도 인터뷰 중 전화 혼 실비아의 전화를 미처 무시할 순 없었을 것이다. 점점 인간성을 상실해 가는 나 자신을, 누군가는 나를 멈춰주길 바라는 마음이었을지도. 가짜 세상이 주는 안락함과 현실에서 겪게 될 실패에 대한 공포를 트루먼이 갖지 않기를 바란다는 이유로 크리스토프는 트루먼의 트라우마를 연출하지만, 그건 인간이 인간에게 해서는 안 될, 자신이 전지전능한 것 같은 착각에서 오는 자기 오만과 기만었다. 여태까지 트루먼쇼를 보면서 느끼지 못한, 창작자가 가져야 하는 도덕적 관념의 잣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장면이었다.



3. 수평선 끝에서 마침내 마주한 벽, 그리고 진짜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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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루먼은 결심한다. 수많은 억까와 비바람에도 그걸 뚫고 나갈 것이라는 걸. 그렇기에 영화 속 관객들은 30년간 트루먼을 지켜보며 그 끝을 마음속으로 간절히 응원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마침내 트루먼은 배를 타고 수평선 끝에 도달한다. 그리고 그가 마주한 것은 끝없는 바다가 아니라, 구름이 그려진 딱딱한 벽이었다. 그 벽을 만졌을 때 트루먼이 느꼈을 배신감과 절망, 그리고 한편으로 느꼈을 해방감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이 복잡한 감정일 것이다.


그 순간, 크리스토프는 마지막 순간까지 트루먼을 회유한다.

"밖은 여기보다 더 가짜 같아. 여기는 널 다치게 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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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과잉보호하는 부모의 마음처럼 트루먼을 회유하지만, 반대로 자신의 커다란 쇼가 자신의 예상 속에 엔딩을 맺는 것을 붙잡는 그런 모습으로 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트루먼은 슈퍼스타답게 자신의 인생을 지켜봐 준 이들에게 정중하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어두운 문밖으로 걸어 나간다.

"못 볼지도 모르니 미리 인사하죠. 굿 애프터눈, 굿 이브닝, 굿 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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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마주한 현실이 아무리 비참하고 차가울지라도, 그것이 '진짜'이기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 가짜 평온함에 취해 멍하니 서 있기보다는, 거친 파도에 부딪히더라도 내 의지대로 키를 잡는 삶, 트루먼이 연 문은 '자아의 독립'일지도 모른다. 단순히 관객을 향한 인사가 아닌, 지금까지 자신을 가두었던 가짜 세상에 대한 완벽한 작별이자, 불확실하지만 진짜인 세상을 향한 당당한 선언이었을 것이다. 결국 인생의 마지막 한 걸음은 그 누구도 아닌 내가 혼자 내디뎌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 영화였다.



� 에디터의 노트 (Editor's Note)

이번 13화는 우리가 믿어왔던 세계가 무너질 때, 비로소 진짜 내가 시작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만의 '씨헤이븐'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들도 다 이렇게 살아", "지금 이 나이에 무슨 새로운 걸 해"라는 말들로 세워진 보이지 않는 벽이죠. 하지만 트루먼이 그 벽에 손을 댔을 때 깨달았듯, 그 벽은 생각보다 단단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밀어내기로 결심하는 순간, 문은 열립니다.


많은 동종 업계의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가끔 우리가 '커리어'라는 거대한 세트장 안에 갇혀 있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바뀌는 비바람 속에서, "이 벽을 넘으면 낭떠러지는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우리를 붙잡곤 하죠. 하지만 트루먼이 마주한 벽이 실은 '문'으로 가는 톨로였듯, 우리를 가로막는 것처럼 보이는 변화와 한계점들도 실은 새로운 세계로 나가는 EXIT일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내 머리 위로 조명이 떨어지거나 아버지가 나타나는 극적인 균열은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마음속에 "이게 정말 나의 전부일까?"라는 작은 의문이 생겼다면, 이미 여러분은 배를 띄울 준비가 된 것입니다. 비록 그 끝이 파란색 페인트가 칠해진 벽일지라도, 그 벽을 손으로 짚고 걷다 보면 반드시 여러분만의 문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진짜 여러분의 쇼가 시작될 테니까요.


그 문 앞에서 우리가 나눌 인사를 미리 준비해 봅니다.


"굿 애프터눈, 굿 이브닝, 굿 나이트!



PS. 영화 속에 PPL을 풍자하는 장면들이 보이길래 몇 컷 추가해 봅니다.
오늘따라 PPL의 역사가 궁금해집니다. 98년도부터 PPL이 존재했다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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