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1: 2021.01.04 UNTITLED>

사라진 80년대의 낭만: 펜을 다시 든 이유

by IMMM

I. 흑심 연필과 패드 사이: 사라진 낭만과 익숙해진 편리함

글은 손으로 써야 제맛이다. 국민학교로 입학하여 초등학교로 졸업한 세대. 가방 속 필통에 흑심 연필과 지우개가 필수였고, 겨울이면 교실 가운데 난로를 위한 번개탄 당번이 있었던 시절을 지나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익숙한 것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것들에 적응해야 했던 시기를 지나왔기에, 타자기를 두드리는 것이 익숙해진 지금에 와서야 문득 향수병 도지듯 글은 손으로 써야 제맛이라고 느끼는 걸지도 모른다.

이제는 나도 회의와 미팅을 다닐 때 패드를 들고 다니며, 그 편리함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수첩과 좋은 펜을 고집했던 것은, 빠르게 변하는 것들에 대한 소위 반항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지키고자 했던 나의 그 반항심은 결국 기를 다 펴지 못하고 이제는 패드의 편리함에 배신해버렸지만 말이다.

2018년을 마지막으로 멈췄던 이 반항을, 3년 만인 오늘, 나는 다시 시작했다. 무슨 바람인지 모르게 무작정 서점으로 향해 다이어리 하나를 사 왔다. 딱히 쓰고자 했던 것은 없으니, 주저리주저리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II. 운전병으로 군대에 가기까지: 10대와 20대의 뜨거운 허세

나의 10대는 평범한 듯 평범하지는 않았다. 부모님의 말을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하던 아이였지만, 반항심에 방황을 했던 마지막은 2006년 월드컵을 중환자실에서 봤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오토바이 사고로 죽다 살아난 아주대병원이었다. 나를 지금까지 숨 쉬게 해준 분은 이국종 교수님이다. 남들보다 나는 조금 늦게 시작했다. 그래도 살았으니 다시 시작도 했겠지.

나의 20대는 독일 무제한 고속도로 같았다. 10대의 마지막 생사결로 인해 어머니가 많이 아프셨다. 이렇게 살면 안 될 거라 생각했다. 대신에 열정적으로 놀았다. 좋게 표현하면 다양한 경험을 하려고 노력했다. 이마트 건설 현장 노가다부터 시작해, 곱창집, 고깃집, 이자카야 등을 지나, 호스트바 웨이터부터 BAR의 실장까지. 해보고 싶고 궁금한 일들은 일단 경험해봤다.

나는 영화를 전공했다. 내 영화의 진실성을 위해서는 내가 직접 모두 다 해봐야 한다는, 허세적인 철학이 있었다. 남들 눈에 노는 걸로 보인 것들이 나에겐 공부라고 스스로 자부했다. 그러다 자원입대 신청을 하고 친구 집으로 놀러 간 미국 여행에서 정훈병이 떨어졌다는 소식에 귀국했고, 귀국하자마자 일주일 뒤 군대에 입대했다.

2009년 9월 1일 그 날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일주일 만의 입대라니, 다음 날 아침 "엄마 나 군대 가", "다음 주에"라는 말을 무슨 헛소리하듯 바라보던 엄마의 표정이. 세상이 내일 종말이 올 듯이 놀았다. 열이 났지만 집에 갈 수 없었다. 어떻게든 넣어달라 우겨 간신히 커트라인으로 운전병으로 입대했고, 휴가와 외박을 나오다가 제대했다.

제대 후 돌아온 대학교에서는 영화를 너무 잘 찍고 싶은데 그렇지 못함에 회피로 교환학생을 갔고, 연애를 했고, 유학을 갔고, 아이가 생겨서 한국에 왔고 결혼을 했다. 유학은 실패하고 가장이 되길 선택했고, 학생 신분이 싫어 사업한다고 만든 내 첫 회사가 2013년 5월 1일 대학교 4학년 때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배짱과 허세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때는 뭘 해도 다 잘할 수 있다라는 열정과 자신감이 있었다. 500에 50짜리 지방의 원룸에서 서울 교대로 회사를 옮겨오고, 강남 삼성동 건물에까지 확장해서 회사를 운영하는 데까지 3년, 열정이란 이름으로 불타오르던 20대를 지나 30대에 오니, 그 지나친 열정과 과욕이 나를 멈추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III. 30대에 멈춘 나의 화산: 끓어오르는 분노와 울화통의 눈물

30대에 시작에서 넘어진 지 2년이 흐른 21년의 나는 마치 휴화산 같다.

어디를 향한 분노인지는 모르겠으나, 꾹꾹 눌러져 있는 나의 **火(화)**들은 겉으로는 성숙한 인간이기를 표방하고 있지만, 언제 터져버릴지 모르겠다. 억지로 참아 누르는 이 화들이 터질 것 같으면 분출하지 못함에 눈물로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아직도 감정의 갈무리를 못 해 울화통의 눈물이라니. 아직도 멀었구나 생각한다.


IV. 삐뚤게 오다 정자로 오다: 이 사부작거림이 나를 치유하기를

뭐 어쩌랴, 이렇게 쓰고 나니 후련한 것을.

역시 글은 손으로 써야 제맛이다. 삐뚤게 오다 정자로 오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나의 글씨들이 어쩌면 지금 내 마음을 가장 잘 대변해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 감정이 이토록 잘 보이는 것도 신기하다. 꾹꾹 눌러 담는 이 펜 속에 마음이 차분해져 가길 바란다. 다만 시간이 지나고 이 다이어리를 봤을 때, 부디 이 불안과 분노가 치유되어 있기를 바래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를 위해 사부작사부작 써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