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군인 무함마드

재앙의 시작

by 임모씨

30년전 리비아에서 근무를 했던 어느 젋은이가 겪었던 이야기를 써봅니다.

어느곳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찾지 못하여 누군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남겨야겠다는 사명감이 들었습니다.

이런 세상도 있었다 정도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임모씨, 임모씨는 지금 바로 사무실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캠프 전체를 울리는 방송의 목소리는 상당히 다급했다.

저녁을 먹고 혼자 숙소 뒷편에 있는 작은 연못에서 고기들에게 풀을 뜯어주고 있던 나는 무슨일인가 하고 사무실로 황급히 달려갔다.

사무실에 들어가니 나를 맞은 L과장님은 사무실 한켠 응접공간에 뒷모습만 보이던 리비아 현지 군인을 가르키며 어떻게좀 해보라하셨다.

뭘 어떻게 하라는지도 모르는채 그 탁자앞에 서있었다. 그후 L과장님은 이제 둘이서 이야기를 해보라는식으로 손짓을 하더니 자리를 떴다.

인삿말만 유창하게 내뱉은 나의 아랍어의 인사에 약간 놀란듯한 리비아군인은 나를 보며 거만하게 앉으라는 손짓을 하며 황소같은 눈을 부라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아직 리비아에 온지 얼마되지 않아 아무것도 모르는 내게 그냥 던져놓은 똥처럼 그놈은 이것저것 내놓으라는 말만 반복했다.

주로 쌀, 고기, 설탕, 커피등 경제제재를 받고 있던 리비아에서 구하려면 귀찮았던 물건들이었다.

'왜?' 내가 왜 줘야하지? 이런 물음에 답답해 죽겠다는 듯한 짜증과 분노가 섞인 목소리로 '너희가 나에게 주기로 했다는' 나는 전혀 모르는 주장만 되풀이 하고 있었다.

'나는 모르겠다. 여기온지 일주일도 안됐다' 그리고 그런걸 왜 요구하는지 나는 이해가 안된다. 인삿말과는 반대로 엄청 어눌한 아랍어로 나는 같은 말만 되풀이 하며 그놈의 짜증을 더 돋구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왜 이런놈앞에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지 이해할수도 없었을뿐더러 다짜고짜 뭔가 달라고 하는 저 거지는 또 뭔가, 그리고 왜 우리 캠프 사람들은 저놈을 어려워하고 무서워하는 눈치일까 머리속이 뭔가 엉클어진 느낌이었다.

어쨌든 나는 모르겠고, 지금 내가 뭘 어떻게 해야할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내 상사에게 물어보고 나중에 정리해주겠다는 입에발린 서툴은 아랍어만 계속해서 지저귀고 있었다.

그놈은 바빴나보다. 내가 알아듣지도 못할 여러소리를 해대더니 시계를 가르키며 내가 준비하라고 한 물품을 다음에 올테니 꼭 준비해놓으라고 하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그놈이 내뱉은 말들은 분명 그동네의 욕이 섞인 짜증들이었을것이다.

일어선 키를 보니 덩치는 큰데 키는 그 위압적인 큰눈에 비해 그리 크지않았다.

나는 내 평화로운 시간에 갑자기 당한 봉변과 그와중에 어찌할지도 모르고 그놈이 내뱉었던 말을 그대로 맞아버린 모멸감에 어마어마한 분노가 일었다.

물론 그놈이 문밖으로 나간걸 확인하고 말이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방언처럼 터진 온갖 쌍욕이 내 입밖으로 나왔고 애꿎은 책상을 내리치는 행동으로 뭔가 밀렸다는 굴욕적인 상황을 만회하려는 무의식이 나를 이끌었다.

사무실과 연결된 복도쪽에서 이를 보고있는것으로 보이는 L과장님과 다른 직원이 내 모습을 고스란히 보았을것이다.

보시든지 말든지 나는 내가 있던 연못으로 향했다. 고기들에게 풀도 뜯어먹이고 담배도 맘껏 피면서 열받음을 식힐 셈이었다.

물론 사무실에서 그리 가는길에 큰소리로 쌍욕을 해가면서 돌맹이를 차며 분풀이를 하는것고 잊지 않았다.

씻고 들어가던 반장님들과 여러 직원이 내 미친 행동을 봤을것이다.

그렇다. 나는 자고 일어나보니 여기 리비아, 그리고 사막 한가운데 외딴섬처럼 둥둥떠있는 가건물 투성이 캠프에 와있던것을 실감했던것이고, 내가 앞으로 맞이할 여러가지 험한일들의 시작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던것이었다.

여기 함께 일하는 한국인분들과는 사무실분들이나 현장,또는 정비반 반장님들이나 누구하나 친해진 사람도 없었고, 또한 누구하나 먼저 다가와서 살갑게 말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나중에 왜 그랬는지는 알았지만 한국과 너무다른 환경과 내가 애초 기대하던 리비아의 모습, 내가 할 업무에 대한 모든게 생각했던것과는 크게 어긋나 있던 그때 내 상황은 내가 먼저 다가가기 보다는 그냥 시간이 날때마다 혼자 연못에가서 옆에 아무렇게나 자라난 잡초를 뜯어서 물고기에게 던저주고 그걸 또 먹는 신기한(?) 광경을 보며 시간을 때우는게 내가 마음을 다스리는 유일한 길이었던것이었다.

일주일도 채 되지않아 내 앞에 큰 시련이 떨어졌으니 갑자기 엄마가 보고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