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참 힘들다, 공부가 더 쉬웠어요.
나는 만 한 살, 세 살짜리 두 아이의 엄마다.
엄마가 되는 어떤 교육과정이나 커리큘럼 없이, 아기를 낳았더니 자동으로 엄마가 되었다.
출산준비물부터 아기 용품까지 모두 다 인터넷 검색과 책을 뒤적뒤적하여 준비를 했다.
제품은 많고 필요한 건 또 뭐 이리 많아?
같은 종류의 물건도 브랜드가 여러 개이기에 리뷰보고 비교 분석하여 주문하는데 꽤나 시간이 든다.
우리 아기한테 조금이라도 좋은 것을 해주고 싶은 마음에.
우리나라 병원 시스템상 모자동실이 흔하지 않기에, 제왕절개 후 퇴원까지 거의 모유수유를 하지 못한 채 산후조리원에 입소를 했다. 아기가 모유를 먹지 않는다. 나 또한 처음부터 수유를 한 게 아니기에 아기에게 배고픔만 선사한다. 우울.. 무력감이 몰려온다. 하아. 지나고 보니 이게 뭐라고 그땐 모유수유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다. 그렇다, 나의 두 아기는 분유 먹고 쑥쑥 잘 컸다!!!
(혹시나, 저와 같은 산모 있으시면, 내려놓으세요. 산 넘어 산입니다. ;D)
이제 백일의 고비 시작이다. 킁킁 아저씨 소리를 내며 새근새근 자는 이쁜 아가를 2-3시간마다 맘마를 줘야 한다. 내 잠은 안녕! 혹시나 자세가 잘못되어 숨쉬기 힘들어질 까봐 노심초사. 밤마다 이유 모르게 악을 쓰며울어가는 아기를 안고 엎고 초보엄마는 쩔쩔맨다. 뭐가 문제지? 밥도 주고 기저귀도 갈아주고 놀아도 줬는데, 졸린가? 배가 아픈가? 병원을 가야 하나..?!!!...이러나 저러나 모두에게 공평하게 시간은 간다.
마침내 백일의 기절 (기적)이 찾아온다.
아이를 낳고 분만휴가 3개월 뒤 일터로 복귀를 하였다. 100일짜리 아가를 남에게 맡기고 출근하는 심정이란, 죄책감이 몰려오고, 아기가 너무너무 걱정이 된다.
육아는 별세상이다. 아기가 없을 때와 비교해서 세상이 180도, 아니 3차원에서 4차원으로 변하는 마법!
남편과의 갈등이 점점 고조되고, 우는 아기를 달래며 먹이며 씻기며 재우며 몸과 마음이 지친다. 아기는 이쁘지만 나는 너무너무 힘들다. 이건 정말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깐.
말 못 하고 걷지 못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다. 아기는 자라면서 이불이 애착물건이 된다. 집안을 쓸어가며 청소한 꼬질꼬질한 이불이 세상 제일 소중하덴다. 이사를 하면서 어린이집이 바뀌고 둘째가 나오자, 지난번 어린이집에서 잘 지내던 아이는 바뀐 환경 탓에 새로운 어린이집에서 엉엉 운다.
어린이집 다니는 것은 쉴 새 없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이다. 첫째가 걸려온다 모세기관지염이 오고 열이 펄펄 나고 밤새도록 기침을 하느라 잠을 못 잔다. 결국 한 달 된 둘째가 옮는다. 입원을 한다. 마음이 찢어진다. 열탕 소독을 한 젖병을 아침저녁으로 병원으로 나른다. 아이는 계속 감기에 걸려온다. 이주 간격으로 열이 오른다. 마음이 덜컹. 또? 하아.. 39도가 넘고 축 처지는 아이를 보면 세상 예민해진다. 주변에 관대해지지가 않는다. 마음, 감정의 컨트롤이 좀처럼 어렵다.
선생님과의 상담 및 준비물 준비 등 거의 백 프로가 엄마의 몫이다. 나도 20대엔 당당한 여성이고 남녀평등을 부르짖곤 했는데, 아이를 낳고는 그런 거 따질 시간, 여유조차 없다. 그냥 내가 해야만 하는 것. 남편을 시킬 수도 없고, 시켜도 미덥지 않다. 인생이 점점 고달파진다.
일터에서 한창 집중해야 될 중요한 시기에 육아로 인해서 시간을 뺏긴다. 하아 싱글 때 남아돌던 시간 지금 줬으면 좋겠다. 이모님 구하는 것도 어렵다. 어렵게 모셔도 나는 처절한 을이다. '내 아기'를 돌봐 주실 분이기 때문.
한국나이 4살 후반, 이제 어린이집에서 기관을 옮겨야 할 때이다. 여러 군데 전화를 돌리고 설명회를 참석하고, 인터넷 카페를 뒤적뒤적하면서 후기를 찾는다. 오늘은 이곳이, 내일은 저곳이 마음에 들면서 걱정도 된다. 고민하는데 몇 날 며칠이 걸린다. 하 아직 유아인데, 벌써 이러면 대학까지 어쩌지? 아기 키우기 참 쉽지 않다. 기관을 어렵게 정하고 난 뒤에도, 아기가 적응을 잘할 수 있을지, 걱정 한 보따리다. 부모는 죽는 날까지 자식 걱정을 한다더니, 이제야 그 말의 진정한 의미가 이해가 된다.
유전자의 힘은 정말로 대단하다. 후세를 낳고 길러 종족을 보존하기 위한 동물의 본능. 나는 거기에서 한치도 가벼워지지 못한다. 번아웃이 온다. 사는 게 재미없다. 주위에서는 내려놓으라고 한다. 내려놓는다? 마음이 보이면 들어서 책장 밑구석으로 내려놓고 싶다. 눈에 안 보이니 쉽지 않다.
아이가 울고 불고 떼를 쓰고 난리가 난다. 훈육을 한다. 정답이 뭘까? 유튜브를 열심히 찾아가며 팁을 찾아본다. 우는 아이의 얼굴을 바라본다. 정말로 슬픈 표정이다. 태어나서 생을 3년 겪은 아이가 뭐 이리 서글프고 슬퍼서 세상이 무너지는 표정을 짓나. 나도 마음이 아파온다.
아이를 볼 때는 최대한 웃는 얼굴로 밝게 대하며 긍정적인 표현을 해주려 애쓴다. 내 마음과의 간극에서 공허함이 밀려온다. 그래도 웃는다. 최대한 참고 아닌 척한다. 나약한 나는 강한 척을 하느라 애쓴다.
엄마, 그 이름은 정말로 무겁다.
......
이 모든 걸 견디게 해 주는 건 지나가는 낙엽만 봐도 꺄르르 웃는 아이의 얼굴, 목소리, 냄새.
점점 커가면서 장착하게 되는 새로운 기능들의 놀라움과 기쁨의 희열.
나를 너무나 닮아서 어릴 때 내 사진을 보는 것 같은 기분.
바라만 봐도 자연 스래 샘솟는 사랑.
통통한고 하얀 예쁜 볼.
점점 길어지는 팔과 다리, 쑥쑥 성장하는 말솜씨.
엄마를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주는 우리 아가들.
너희가 없는 세상은 이제 상상할 수가 없다.
나에게 나보다 더 중요해진 꼬물꼬물 옹알옹알 거리는 자그마한, 아직은 엉성한 삶의 존재들.
유전자든 본능이든 가상세계이든지 간에, 지금 나에게 느껴지는 진심이니 어쩌랴!
우리 꼬물이들 제발 건강하게 쑥쑥 잘 자라자.
아직 가야 할 길이 머나멀고, 넘어야 할 산이 몇 개인지 헤아릴 수도 없지만, 받아들이다.
내 삶을. 나의 존재이유를.
삶은 참 어렵고, 엄마는 무겁고 조심스럽다.
+
공부는 당연코 쉽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미화가 되나 보다.
삶의 한 챕터 한 챕터의 고비마다 어찌어찌 넘어가면서 사는 게 인생이라면 그 또한 어쩌리.
받아들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