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이 아닌 연속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서, 정리된 생각을 확인하고 싶어서, 정리된 생각을 다시 상기시키고 싶어서 글을 썼다. 그런 내가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았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나면서, 생각을 동강동강 쉬이 나눌 수 있는 찰흙과 같다고 생각을 했던 내가 어리석게 느껴졌다. 애초에 찰흙 따위가 깔끔하고 쉽게 나눠질 리가 만무했지. 찰흙은 나눌 수 없다. 나누고자 하면 나눌 수야 있겠지만 사람마다 나누는 기준과 모양이 다르니까 나눌 수가 없는 것이다.
생각이 방향을 잃었다. 정확히는 생각하는 힘이 방향을 잃었다. 힘이 뱡향을 잃자 한 곳에 머물 수 있던 무게를 잃었고 한없이 가볍게 방황하며 떠돌다가 사라졌다. 붙잡을 가느다란 꼬리의 흔적도 없이.
나름 잘 살아지는 것 같아 보였다. 생각하지 않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아득히 멀게 느껴졌다. 그쯤 나는 텅 빈 껍데기와 같은 나를 발견했다. 머리통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는 느낌은 꽤나 견디기 힘들었다. 우스갯소리로 '아무 생각이 없어요.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죠.'와 같이 정말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이었으면 괜찮았을까. 내가 가꾸고 매만지고 싶은 싱그러운 풀잎과 같은 생각, 또 눈이 시리도록 내리쬐는 햇빛의 뾰족한 머리칼과 같은 그런 생각은 없었다. 대신 정말 아무것도 없는 머릿속에는 쓸데없는 주변 소음만이 지저분한 잔상을 그리며 맴돌았다. 그저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를 바라며 머리를 한껏 뒤흔들어도 추잡한 소음은 그런 날 비웃듯 조잘거리며 공명을 겹겹이 쌓았고, 그것들이 휘젓고 나간 자리는 시꺼먼 먼지만 날였다.
그때부터였을까. 정신과를 가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다시 생각을 한다. 끊어진 것이 아니기에, 연결이 아닌 연속이라고 하고 싶다. 세상은 찰흙과 같아서 자를 수 없다는 말은 세상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하지 않고 그냥 어지럽힌 채 남겨두어도 된다는 말과 동일한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나눌 수 없음은 생각할 힘을 방치해도 된다는 합당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자를 수 없다고 세상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하지 않고 사유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은 결국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마치 꽃의 모양이지만 바짝 말라 딱딱한 플라스틱 조화처럼, 향기를 내지 못하고 시들지도 못하는 박제된 꽃과 같은 조화와 같이.
정답을 찾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고 정리를 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다. 정답, 하나의 방향을 정해서 그것만이 옳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다양한 선택지와 다양한 해답을 이끌어내는 풀이를 정리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계속 나는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정답이 없는 답을 하고, 정답이 없는 답의 풀이를 정리하려고 한다. 미련하게도 그렇게 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