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할머니-2
할머니는 자식 농사를 참 많이 했다.
그 시절 어느 누구나 자식 농사를 많이 하던 때였다.
8남매였다.
그중 첫째 오빠와 첫째 언니는 배 다른 남매였다.
할아버지 첫 결혼의 자식이었다.
엄마는 어릴 때는 몰랐지만 크고 나서 알게 되었다고 했다.
배다른 첫째 언니는 시집을 세 번을 가게 되었다.
첫 신랑은 일찍 죽고 둘째 신랑은 부자였다고 한다.
그 시댁에서 한 번씩 할머니집에 쌀이라던지 선물을 보내라고 하면 그 언니는 보내지 않고 다른 곳에 쓰곤 했다고 했다.
엄마는 할머니가 내 배에서 낳은 자식이었으면 쟤가 저랬을까라는 말을 내뱉는 것을 엿듣곤 했다.
할머니의 손톱밑에 까만 흙 때들의 수고스러움을 보고도 가슴아리지 않았을 배다른 자식의 마음이 이해가지 않은 나였다. 아마도 엄마도 그랬을 것이라
하지만 엄마는 첫째 언니가 세 번째 시집을 간 후 연락이 뜨문뜨문해지고, 그리고 아주 가끔 보이는 그 얼굴이 점점 우리 할머니처럼 자글한 주름과 까맣게 그을린 그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워했다.
나는 잘 보지 못했던 그 첫째 이모가 할머니를 껴안고 잘 지내냐며 눈물을 글렁거리던 모습을 기억한다.
그때 할머니의 친구인 줄 알았다.
그 정도로 야위었고, 나이가 든 이모였음을 기억한다.
여자가 팔자가 세면 남편을 잡아먹는다고 말하곤 한다.
앞에선 이야기하지 못할 말들을 사람들은 뒤에서 말하곤 한다. 아마도 첫째 이모의 걸음걸음 뒤에 그런 말들이 쑥덕거렸을 것이다.
첫째 이모의 두 번째 남편도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엄마는 이모가 둘째 남편집에서 전남편 아이들과 함께 있었더라면 지금처럼 고되게 살지 않았을 거라 이야기하곤 했다.
이모의 외로움이 결국 아롱아롱 판단력을 흐리게 했을 수도, 아니면 정말 사랑이라 도피처처럼 따라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모는 세 번째 남편과 함께 다른 지역으로 갔다.
이모는 돈욕심이 많은 남편과 고추밭농사를 한다.
어릴 적, 이모가 농사일이 고되고 아내를 머슴같이 부리는 그 모습에 질려 할머니집으로 피신을 온 모습을 기억한다.
내 기억으로는 엄마는 힘들고 같이 못살겠으면 죽을 때까지 그냥 할머니 옆에서 함께 지내는 것이 어떻겠냐고 이야기했었다.
이모는 며칠 지나지 않아, 결국 다시 시골로 돌아갔었다.
결국 아직도 고추밭농사를 하신다.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두 개의 피 중 같이 살기에는 얼마 남지 않을 할머니보단 남편이었던 걸까
아니면 칼로 물 베기였기에 다시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할머니는 그렇게 아주아주 가끔 얼굴을 보이던 큰 이모를 보면 애달프게 울곤 했다. 전화만 받아도 울먹이는 목소리로 여보시요 했었던 할머니는 첫째 딸부터 하나하나 안 애달픈 자식이 없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런 자식은 있었는지 할머니가 맨 정신일 때 물어볼 것을.. 나는 물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물어보았다고 해도 아주 작고 작은 손녀에게 어떠한 답을 낼 수 있었겠는가
내가 이렇게 할머니에 관해 글을 쓰고 싶었던 것은 할머니의 자식들의 행복보다는 힘듦이 많아서였던 것도 있다
드라마를 볼 필요가 없다.
이 집안자체가 평탄하지 않았음에 드라마의 여러 인생을 이 집안 안에 다 들어가 있음을 알고 나선 언젠가 내가 이 이야기를 쓰리라 다짐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