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할머니 -1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가 불쌍했다.
그리고 엄마의 엄마도 불쌍했다.
그리고 나는 나도 불쌍했다.
그래서 어느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들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는 했다. 그 사람이 불쌍해 보여서도 아니고, 그 사람이 힘들겠다는 마음이 들어서도 아니고, 나도 저런 마음이 있고 저렇게 힘든데 라는 공감의 눈물이랄까
할머니는 깻잎과 고추를 따서 자식들을 키웠다고 했다.
엄마는 구질구질한 영도가 싫다고 했다.
어릴 적 한 번씩 말해주던 엄마의 어릴 적 모습이 나를 가슴 아프게 했다.
엄마는 웃으면서 구질구질하다고 이야기했지만,
그 당시에 얼마나 우울했을까 라는 생각이 나의 마음을 일렁일렁거리게 했다.
엄마의 감정과 경험들이 자식의 피에 기록된다고 한다.
그래서 내 마음의 우울들이 깊게 있는 것일까
나는 그런 생각도 하곤 했다.
할머니는 늘 걱정과 근심으로 살아가셨다.
내가 과거형으로 쓰는 이유는 할머니는 치매가 왔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오래 살기 싫다고 하셨다.
하지만 치매가 걸린 할머니는 오래 살고 싶다고 이야기하셨다. 할머니는 이혼한 아들이나 자식과 와이프가 중요한 아들이나 멀리 떨어져 있다가 다시 돌아온 아들에게 민폐 같은 존재가 되고 싶지 않으신 것 같았다.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딸 집에서는 죽어도 안 지낸다면서 같이 살 아들집 하나도 못 고르던 할머니. 그래서 늘 죽어야지라고 말을 읊조리곤 하셨다.
할머니는 쓸데없는 자식 걱정을 많이 했다.
할머니가 없어도 잘 지내는 아들들 걱정을 참 많이도 했다. 막내딸인 엄마는 궁상맞게 그런 생각도 하지 말라고 잔소리하곤 했다.
엄마는 치매 걸린 할머니를 데리고 지냈다.
어쩌면 치매 걸린 장모님이 싫을 수도 있었을 테지만 아빠는 집에 데려오라고 했다.
그래서 엄마는 아빠가 가끔 철없이 굴어도 함께 같이 데리고 있자는 말에 흔쾌히 알겠다고 해서 같이 살고 있나 싶기도 하다.
할머니의 치매를 온전히 다 받아내기 버거웠던 엄마는 엄마의 언니와 엄마의 오빠에게 릴레이를 하듯 바통터치를 했다.
그 당시 일을 했던 나도 가끔 보는 귀엽던 할머니가 며칠을 보면 힘들어질 쯤이었던 것 같다.
장기전이 되니 서로 다들 지쳐갔다. 길게 길게 이어가던 할머니의 돌봄은 결국 요양병원으로 가게 되었다.
그렇게 지낸 지 언 3년이 다 되어가는 것 같다.
3년이 된 지금 문득 깨달았다.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가 치매가 걸려서 나중에 하늘나라 가는 것은 주님의 뜻일지도 모르겠다고 할머니는 걱정과 근심이 너무 많아서 사는 평생 내내 걱정 속에서만 살고 울고 그랬을 거라고 그런데 지금은 모든 것을 잊고 자신만 생각하고 해맑게 살다 죽는 것이니 그 또한 행복이지 않겠냐
주님의 큰 뜻이야 엄마
엄마도 크게 웃더니 일리가 있네 했다.
할머니는 뒤늦게 교회를 다니던 분이었다.
그래도 엄마가 믿기 전부터 믿고 계셨다.
어릴 적, 가끔 엄마의 형제자매들이 이야기하던걸 들었을 때 할머니는 미신을 참 좋아했다고 했다.
보름달이 뜨는 날 물을 떠놓고 비나이다 비나이다를 참 좋아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엄마는 가끔 엄마네 집안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할머니의 비나이다로 귀신이 몰려서 그런 것이다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여하튼 그래도 내가 알던 할머니는 7살 내 머리를 매만져주며, 하나님의 나팔소리 찬양을 부르던 할머니였다.
할머니집에서 자던 날이면, 일요일에 할머니와 함께 가던 교회 그리고 지루하던 어른 예배에 할머니 다리에
얼굴을 파묻고 딴짓을 하던 나
스덴그릇에 시래기된장국이 자주 나와 밥을 말아먹어주던 할머니 나에겐 자꾸만 그 기억이 떠오른다.
할머니는 막내딸의 첫딸인 나에게 한 없이 좋은 분이었다. 할머니는 나를 잘 돌봐주셨고, 시장에서 내가 가지고 싶어 하던 장식품들을 사주기도 하셨다.
할머니는 내가 간다고 하면 늘 조미김을 시장에서 사 오시곤 네가 좋아하는 김 사놨다며 꺼내주셨다.
할머니네 집에 먹을 반찬이 마땅히 없어서 김을 많이 먹었는데 할머니는 김 좋아한다며 늘 검은 봉다리에서 꺼내다 상위에 올려주셨다.
그런데 할머니는 남험담도 잘했다.
서글서글 잘 웃는듯 하지만 동네에서도 교회에서도 좋은 집사님이었지만 엄마 앞에서 남욕을 많이 했다.
할머니의 기준에서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이면 그렇게 험담을 했다. 엄마는 그런 행동이 나쁜 행동이라고 잔소리를 하곤 했다.
할머니는 못생긴 것도 싫어했다.
엄마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할머니가 어릴 적 시집을 갔는데 옛날에는 얼굴도 안 보고 시집을 갔다고 한다.
할머니가 시집간 첫날밤 도망갔다고 했다.
새신랑의 얼굴이 너무 못생겨서 그냥 도망 왔다고 했다.
너무 웃겼지만 사실 나는 할머니의 강단이 너무 멋있었다.
왜냐면 나는 그렇게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물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할머니는 재시집이기 때문에 한번 다녀온 남자와 결혼을 했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엄마가 어릴적에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술만 먹으면 폭력적이었다고 했다.
할머니가 많이 맞았다고 했었나..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막내딸에게 눈깔사탕을 사다주기도 하고 막내딸을 참 아꼈다고 엄마의 오빠들은 우스개소리로 명절마다 안주삼아 이야기하는걸 듣곤 했다.
명절마다 그렇게 하하호호 옛날 이야기를 하다가도 술만 먹으면 아수라장이 되어 집에 가곤 했다.
나는 참 외가집이 좋았지만 한편으로 무서웠다.
서로에게 있는 보이지 않는 결핍과 다른 생각을 안고서 서로를 찌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