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오케이-!

아들과 밸런스게임

by 내가짱


항암을 계속해야 해서 여름휴가는 친정집이었다.

호중구 수치가 낮아서 계획보다 또 한 주 미뤄지는 바람에 딱 여름방학에 입원을 해야 했었다.

삼일 내도록 입원을 하고, 친정집에 있는 아이를 보러 갔다.


멍한 상태로 아이를 보는 둥 마는 둥

나는 거의 누워있다시피 했다.

너무 미안했다.

아이들의 기억력은 어릴 때 거의 없다고 괜찮다고 하지만 내 마음은 하나도 안 괜찮다.

즐거웠던 기억은 어린 시절이라도 필름처럼 조금씩 남아 있을 텐데 그 필름 하나를 통째로 날려 보내버린 기분이랄까?


그 여름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어서 적어본다.

하루는 자기 전에 아이가 갑자기 밸런스 게임을 시작했다.



엄마 엄마는 토끼가 좋아? 고양이가 좋아?

: 음 토끼


지금 우리는 고양이를 키우고 있고 알레르기가 있어서 항암 중이라 고양이를 시댁에 맡겨놓았지만 어릴 때 키우던 토끼 통그리가 생각이 났다.


엄마는 그럼 쉬운 게 좋아 어려운 게 좋아 보통이 좋아?

:옛날엔 어려워도 좋은 걸 받을 수 있으면 어려운 게 좋았는데 지금은 보통이 좋아.


보통으로 사는 게 제일 어렵다는 걸 너는 나중에 알게 될까? 아등바등 어렵게 올라가려고만 하다가 스트레스받고 아픈 나처럼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엄마 그럼 할머니가 좋아? 할아버지가 좋아?

:그럼 넌 할머니가 좋아, 할아버지가 좋아?


아 고민되는데, 할머니는 맛있는 음식을 해줘서 좋고,

할아버지는 나랑 놀아줘서 좋고, 아 어쩌지

:그럼 둘 다 좋다는 거야?

:엄마도 그럼 둘 다 좋아

엄마는 이유가 뭐야?

(밖에 다 들리는 것 같아서 그냥 둘 다 좋다고만 한 건데 이유까지 꼬치꼬치 캐묻던 아들..)

:엄마는 할머니가 엄마 아플 때 돌봐줘서 고마워서 좋고,

할아버지는 엄마를 묵묵히 지켜봐 줘서 좋아


이렇게 아파서 다 커서도 민폐인 내가 너무 미안해 엄마아빠라는 생각에 혼자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럼 엄마는 가난한 게 좋아, 부자인 게 좋아, 보통이 좋아?

:넌 어느 것이 좋은데?

나는 보통이 좋아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었다.


:왜 보통이 좋은데?

부자면 돈을 다 쓰게 돼버려서 사고 싶은 걸 못 사게 되잖아.

큰 집을 사서 돈이 없어서 맛있는 것도 못 먹을 수도 있잖아? 그래서 나는 보통이 좋아

그리고 가난한 것도 괜찮아! 돈을 모아서 집을 사면 되잖아.

지금처럼 나는 우리 집이 좋고 딱 보통이 좋아.

:아, 하랑이는 지금 집이 딱 좋아?

응. 딱 좋아!



조금 더 좋은 집, 조금 더 좋은 것 해주고 싶은 마음에 일을 손에 쥐고 놓지 않고, 매번 얼마씩 모을 수 있을까? 얼마나 아껴야 할까라고 절절 메며 살던 나를 뒤돌아 보게 한 말이었다.

나보고 더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너 같아서

마음이 징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엄마는 휴직하고 복직하지 말고 그냥 집에서 쉬라고 이야기하셨다.

돈은 있다가도 없는 것이라면서..

그럼에도 나는 아직 망설여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조금 더 나은 상황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기도 하고, 나 자신이 놓아지지는 않는다.


그래도 아이의 말들로 조금은 내 마음의 여유를 둘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참 미안하고,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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