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마음을 영원히 이해 못하겠지
엄마는 나를 낳고 몸조리도 하지 못한 채 동생을 가졌다. 덕분에 그해 2월에는 내가, 10개월 뒤 12월에는 남동생이 태어났다. 25살의 나이에 아이가 둘이나 생겨버린 엄마. 당신도 어렸으면서 어떻게 어린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할 수 있었을까.
언니 하나, 오빠 둘 있는 집의 막내딸. 육상선수 출신에 공부도 잘하고 예뻤던 당신. 딱하게도 그 시절 여자들이 다 그랬듯 오래 공부를 할 순 없었다. 남은 것은 예쁜 외모.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의 호감을 사기 충분했다. 그렇게 아빠를 만나 결혼을 했다.
엄마는 그런 삶에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사회가 규정한 가정주부란 이런 것의 교과서였다. 아침에 일어나 가족들을 챙기고, 빈 집에 남아 청소를 하고, 가계부를 정리하며 생활비에 대해 고민하고, 다시 돌아온 가족들을 챙기는 삶. 그렇게 10년을 살았다. 그리고 그 삶이 당신의 전부가 될 때쯤, 아빠가 떠났다.
살아야 했다. 그리고 자식들을 살려야 했다. 엄마는 고속도로 톨게이트, 어린이집 등 예상치 못한 곳들에서 각종 일을 하게 되었다. 진정으로 원해서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예전처럼 예쁘게 살림 살면 좋겠어. 반주를 할 때면 푸념하듯 하는 말이다. 일이 힘들다는 말인지, 아빠가 있던 삶이 그립다는 말인지. 그 물음은 나 혼자 간직하기로 했다.
가끔 어린 나를 떠올리는 엄마는 그게 좋은 추억이든, 아픈 추억이든 항상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로 결론이 난다. 너도 아기였는데 동생이 있어서 다 큰 애 같았어. 그래서 많이 못 안아줬어. 버스 탈 때 자리가 없으면 동생만 앉히고 너는 엄마 손잡고 서있게 해서 미안해. 다리 많이 아팠겠다. 아니. 난 기억도 못하는 일을 아직도 미안해하는 엄마가 아파.
내가 중학교에 입학할 때쯤 엄마는 지금 회사에 들어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회사에 자리를 잡아갈수록 살림은 놓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엄마가 놓아야 했던 일을 내가 하나씩 잡았다. 내가 집안일이 익숙해질 때쯤, 엄마는 출근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고마움인지, 미안함인지 모를 얼굴을 하고선. 꽉 막힌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엄마가 열심히 돈 벌어서 나중에 꼭 가사도우미 분이랑 같이 있을 수 있게 해 줄게. 또다시 어린 딸이 보였나 보다. 안타깝게도 약속은 지키지 못했지만 얼마나 그렇게 해주고 싶었을까. 얼마나 사무쳤을까.
대단하게도 살았다.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어, 젊은 나이에 다시 혼자가 되었고, 아득바득 삶을 버텨냈다. 전부를 주고도 미안해하는 당신의 마음을 영원히 이해 못하겠지. 돌이켜보면 어때? 엄마의 인생에 우리를 담았던 게 후회스럽지 않아? 혼자가 되었던 순간 다 포기하지 그랬어. 그냥 다 잊고 당신 혼자로 살지 그랬어. 그랬다면 더 빛났을지도 모르는데.
엄마 결혼하지 마. 누군가의 엄마로 살지마. 20대의 당신을 다시 만난다면 나는 그렇게 말했을 거야.
엄마 우리 두고 떠나. 우리는 엄마의 짐이야. 30대의 당신을 다시 만난다면 나는 그렇게 말했을 거야.
어느덧 오십의 문턱에 선 당신. 나는 나중에 40대의 당신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을까.
나의 엄마. 나의 의진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