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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랑 있을 때가 좋을 때에요

그렇겠죠?




헬스장에서 우연히 마주하게 된 한 아주머니의 말씀이었어요.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시간 맞춰 운동을 같이 다니자고 하시더라고요.

전 아이들이 학원 가는 시간에 맞춰 나오는 거라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고 했더니 그분은 자녀들이 아직 어린가 보다고 저보고는 대뜸 그맘때가 가장 좋을 때라며 아이랑 시간을 많이 보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사실 아들아이가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게 거슬려 신경을 다른 데로 쏟아보고자 가방 싸들고 운동 나온 거였는데  이 사실을 간파당한 듯 아주머니께서는 계속 말씀을 이어가시더라고요.

아들만 둘을 두셨는데 스무 살이 되고부터는 군대부터 시작해 유학 다녀와 취업하더니 이내 결혼한답시고 다 떠났다며 시원섭섭하다고요.


아들만 둘이셨으면 힘듦도 있으셨을 텐데요, 오히려 지금이 가장 편하시지 않느냐고 했더니 잠깐 생각에 젖어드는 듯하다가 금세 아니래요.

순간의 고통은 잠깐이었고 오히려 공부한다는 아이들을 많이 데리고 다니지 못해서 아쉽다면서요. 그분의 차분한 목소리에서 남편과 둘이 보내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적적한지가 유추되더라고요.

새하얀 마스크를 썼음에도 마치 투명한 마스크를 쓴 양 그 외로움이 읽히는 듯했고요.


아들아이가 핸드폰 보는 시간이 점차 늘어났어요.

일정 시간 공부한 만큼 핸드폰 사용 시간이 주어졌지만 그 룰을 없앴거든요.

학교와 학원만으로도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얼마나 많을까 싶어 어느 순간부터 자유롭게 핸드폰 사용을 허용해 주었는데 이제는 대놓고 손에서 놓질 않아요. 웃긴 짤들을 보거나 영화를 보는 것 같더라고요. 하지만 제 맘이 온전치 않으니 한 날은 용인되었다가 한 날은 잔소리도 했다가 듣질 않으면 혼자 자전거를 끌고 나와 텃밭도 갔다가 도서관도 갔더랬죠.

화가 나도 집에 있는 게 최선이라는 전업주부란 타이틀을 제가 만들어 놓았기에 더 힘들었나 봐요. 근데 거리두기라는 단어를 쉬이 접하게 되면서 잠시 잠깐의 시간을 제게 허락해주니 변화가 생기 긴하더라고요.

집에 들어갈 땐 한결 표정은 가벼워짐을 느꼈으니까요.그래도 제 얼굴엔 짜증 반이 드러나 있었는지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현재만 보고 살면 안 되겠냐고요. 과거 30% 미래 60% 현재는 10%만 보고 있으니 제가 자꾸만 만족하지 못한 하루하루로 우울이 증폭되는 게 아니겠냐고요.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봤을 때 언제가 가장 행복했는지만 생각하래요.


맞아요. 언니랑 동생에게만 지원되었던 그 시절 혼자 외로움을 삭였던 그때가 있었어요. 뭐 공부 잘하는 자식을 밀어주는 게 당연지사였겠지만 나도 좀 품에 안아줬으면 하는 생각을 지금도 간간이 하는 걸 보면 오로지 나의 존재만으로도 사랑받고 있음에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은 어린 날이 더 좋았겠다 싶거든요.


부모란 자리에서 잘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건

현재에 집중하고 오늘만 바라보며 지금 이 시간을 소중히 여기면 될 것 같아요.

그렇다면 아이를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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