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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카오임팩트 Apr 07. 2021

살아 있는 실험실, 리빙랩

#시민참여 #생활실험#지역문제해결에제격#핫해핫해

이번 콘텐츠는 100up 문제정의 툴킷에 수록된 '함께 알면 좋은 문제해결 프로세스'를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소개해드립니다. 100up에서는 문제정의와 더불어 그 이후의 문제 해결 과정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론들을 살펴보고자 해요. 이 방법론들이 문제 해결의 완벽한 솔루션은 될 수 없지만, 분명 문제를 바라보는 인사이트를 주고, 문제해결 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도구가 될 거예요. 우리 함께 살펴볼까요? :)


리빙랩이 21세기 들어 혁신에 활기를 주는 중요한 접근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리빙랩은 공공(행정)과 민간 그리고 공동체 영역을 한데 엮어
연구와 실행을 연결하는 플랫폼을 제공한다.

 

전 세계 400여 개의 리빙랩들이 모여 있는 ‘유럽리빙랩네트워크’는 리빙랩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말과 같이 리빙랩은 ‘사회 혁신(Social Innovation)’을 대표하는 방법론으로 꼽힙니다. 우리말로는 ‘생활 실험실’ 정도가 어울리는데, 말 그대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 곳곳을 실험실로 삼아 사회 문제의 혁신적 해법을 찾아보려는 시도를 가리킵니다. 당연하게도 그곳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 모두가 실험의 참여자이자 설계자이고, 해법을 찾아내야 할 주체입니다.

 

“리빙랩은 개방과 사용자 참여 그리고 실제 생활에서의 실험에 초점을 둔다는 원칙을 따르는, 혁신 프로젝트 수행을 위한 다양한 이해관계자 조직이다.” - 네덜란드 아이멕 리빙랩 


“리빙랩은 시민과 예술가, 기술자, 비즈니스와 공공 영역의 조직들이 함께 모여 지역의 도전 과제를 해결할 아이디어와 도구 그리고 기술을 함께 창조하는 공간이다.” - 영국 브리스톨 리빙랩 


복잡해 보이지만 리빙랩 만의 핵심 요소 두 가지를 꼽으라면 '능동적 시민의 참여'와 '실제 현장에서의 구성', 즉 ‘시민’과 ‘현장’입니다. 이 두 가지 요소만 기억하면 됩니다. 



리빙랩의 뿌리를 찾아서

 

‘리빙랩’이란 말을 처음 쓴 건 미국의 MIT 미디어랩의 윌리엄 미첼(William J. Mitchell) 교수와 그의 연구팀입니다. 이들은 새로운 ICT(정보통신기술)에 최적화된 주거 환경을 연구하려고 학교 근처의 아파트를 빌려 수백 개의 센서와 카메라로 거주자의 행동을 지켜보았습니다. 이곳의 정식 명칭은 플레이스랩(Place Lab), 즉 ‘공간 실험실’이었는데, ‘사람이 머물며 생활하는 실험실(Live-in/Living Laboratory)’이란 설명이 붙곤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때까지만 해도 리빙랩은 별칭에 지나지 않았고 사용자(시민)도 그저 관찰의 대상에 머물렀던 셈이지요.

 

리빙랩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사용자 중심 열린 혁신’의 흔적은 유럽에 더 뚜렷하게 남아있습니다. 1960~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사용자 중심 디자인’이 대표적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2000년대 들어 유럽 곳곳에서 진행되던 인텔리전트 시티즌 프로젝트로까지 이어졌는데 미첼 교수가 프로젝트 자문을 맡으면서 리빙랩은 비로소 새로운 지위를 얻었습니다. 아울러 시민의 자리도 더 탄탄해졌습니다. 세계적 사회 혁신 디자이너인 에치오 만치니(Ezio Manzini) 밀라노공대 명예교수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리빙랩은 미국에서 시작했고 당시엔 굉장히 기술 중심적이었다. 하지만 지금 유럽의 리빙랩은 새로운 기술의 적용보다는 다양한 사회 문제의 해결 그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모든 이해관계자, 특히 최종 사용자(시민)가 포함돼있는가, 또 어떤 역할을 담당하는가'이다.” 


 

리빙랩은 지금도 살아 움직인다

 

2018년 유럽리빙랩네트워크가 꼽은 최고의 리빙랩은 캡틴(CAPTAIN) 프로젝트입니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가 2020년까지 3년간 약 50억 원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로, 노인들이 오래도록 집에 머물며 일상생활을 해나가도록 돕는 방안을 찾는 게 목표입니다. 


캡틴 프로젝트의 리빙랩 현장 모습


주거 환경을 연구한다는 점에서 MIT의 플레이스랩과 비슷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큰 차이가 있습니다. 노인과 연구자, 엔지니어 등으로 ‘캡틴 이해관계자 공동체’를 꾸리고 다달이 워크숍을 열어 ‘함께’ 해법을 만들어나간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이들은 이 공동체의 의견을 ‘(개선) 요구의 유일하고도 공식적인 원천’으로 삼는다고 말합니다.



“모든 참여자들은 자신들이 이 모임의 성원이라고 느꼈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경험과 지식을 공유했다.”


유럽리빙랩네트워크도 “출발부터 사용자(시민)를 참여시키는 것이 어떤 (리빙랩) 활동에서건 성공의 열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민의 역할은 어디까지 와있나

 

2016년 독일 함부르크 시의 올라프 숄츠(Olaf Scholz) 시장은 MIT 미디어랩과 하펀시티대학과 함께 시민 스스로 난민들의 새 터전을 결정하도록 하는 길을 찾아보기로 마음먹습니다. 이들은 시티사이언스랩(CityScienceLab)이라는 리빙랩을 꾸리고 이 어려운 도전에 나섰는데, 이름 하여 ‘공간 찾기(Finding Places)’ 프로젝트입니다.

 

여기엔 시티스코프(CityScope)라는 기술이 쓰였습니다. 증강현실로 구현된 커다란 도시 위에서 크고 작은 레고 블록을 움직여 다양한 아이디어를 시뮬레이션해볼 수 있도록 하는 플랫폼입니다. 시민의 제안이 어떤 변화로 이어질지 곧바로 눈에 보이게 함으로써 평범한 시민도 전문가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평등한 토대를 제공했다.”

 

3개월간 약 400명이 참여한 서른네 번의 워크숍 끝에 6곳에 750명이 머물 수 있는 새로운 거주 공간을 짓기로 했습니다. 시민 스스로 결정한 만큼 난민들이 더 따뜻한 환대를 받게 되었다는 점도 의미가 있습니다. 리빙랩은 벌써 여기까지 와있습니다.

 


리빙랩은 함께 할 때 빛난다

 

우리나라에서도 행정안전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비롯한 여러 정부 부처들과 서울, 대구 등 많은 지자체들이 벌써 몇 년째 리빙랩을 내건 사업들을 진행해왔습니다.  2016년 서울 금천구 독산4동에선 골목길 주차난과 쓰레기난을 해결할 해법을 찾고자 시흥대로 126길 골목에 리빙랩을 꾸렸습니다. 거주자 우선주차구역을 ‘공유 주차’ 공간으로 바꾸고, ‘재활용 정거장’마다 ‘도시 광부’를 두었습니다. 100일간의 실험을 마칠 즈음, 차들로 꽉 막혀있던 골목에는 숨통이 트였고, 골목 곳곳에 함부로 버려져 눈살을 찌푸리게 하던 쓰레기들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시흥대로 126길 골목에서 진행된 리빙랩 현장


주민들의 힘만으로 만들어낸 변화는 아닙니다. 행복주차주민위원회가 이끌되 동주민센터와 구청이 뒷받침하고, 기술력을 가진 기업과 교통 전문가도 힘을 보탰습니다. 이 사례는 민과 관, 산과 학이 힘을 모을 때 비로소 변화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자세한 내용 보기)

 

2017년 출범한 한국리빙랩네트워크는 두 달에 한 번 꼴로 꾸준히 포럼을 열고 있고, 부산ㆍ대구ㆍ광주 등 지역 네트워크도 하나씩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대학리빙랩네트워크도 출범했습니다. 더 큰 연결이 가져올 더 큰 변화가 기대됩니다. :) 

 


답은 늘 리빙랩에 있다

 

시민과 더불어 리빙랩을 리빙랩답게 하는 또 하나의 핵심 요소는 현장입니다. 캠페드(Camfed)는 아프리카 여성에게 더 많은 교육 기회를 주려는 비영리 기구인데요.  1990년대 이들은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소녀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는 원인을 찾아 나섰습니다. 이들이 찾은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놀랍게도 에이즈(AIDS)였습니다. 에이즈로 부모들이 일찍 죽는 바람에 남겨진 아이들끼리 서로를 돌보느라 학교에 갈 수 없었던 것이지요.

 

학교를 아무리 많이 지어주고 학비를 후원하든 에이즈 감염을 막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 뒤 이들은 교육 당국뿐 아니라 보건의료 당국을 만나 문제의 해법을 함께 찾아나갔습니다. 아동 학대와 폭력이 만연한 나라에서는 경찰과 사법 당국을 설득해 강력히 처벌이 이뤄지도록 애쓰기도 했습니다. 현장에서 바라본 문제는 이처럼 책상머리에 앉아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게 얽혀있습니다. 

 

“멀리서 볼 때 간단해 보이던 사회 문제들도 가까이에서 보면 그 복잡함에 놀라게 된다.

그 복잡함을 직시하고 그것들을 인정하는 것이 문제 정의라고 생각한다.”

 

고려대 김승섭 교수의 이 말은 현장에서 진짜 문제와 부딪혀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리빙랩은 문제 정의를 중요하게 여기는 100up과 가장 잘 어울리는 방법론이지 않을까요? 

 


리빙랩, 알고 보면 별로 어렵지 않다

 

2018년 8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오픈 리빙랩 데이즈 2018’이 열렸습니다. 32개 나라에서 300여 명이 참석한 이 행사에서 포르투갈 포르토 리빙랩은 어떻게 시민을 공익을 위한 활동적 이해관계자로 바꿔냈는지 경험을 소개했어요.

 

이들이 꼽은 성공의 핵심 요소는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시민의 믿음 얻기, 이해관계자들 간 새로운 관계 맺기, 세대 간 상호작용을 위한 기회 만들기, 소통 전략으로서 스토리텔링 활용하기, 알파 유저에 투자하기, 재미있고 활동적이며 상호작용하는 이벤트에 투자하기, 이러한 시도들을 기록하고 평가하기, 학습한 교훈들을 축적하기 등이었습니다. 알고 보면 좋은 리빙랩을 만드는 데는 그리 대단한 기술이나 능력이 필요한 건 아닙니다. 

 

끝으로 한 가지 덧붙이자면, 지난 7월 5일 문재인 대통령이 ‘대한민국 사회적경제 박람회’에서 “연구자와 일반시민, 사회적경제 조직들과 지역 대학이 함께 참여하는 사회 문제 해결형 R&D(연구 개발)도 추진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대통령이 리빙랩에 힘을 실어준 만큼 앞으로 곳곳에서 더 많은 리빙랩들이 꾸려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게 있습니다. 리빙랩은 어디까지나 정책 실험이고, 실험은 반드시 데이터를 남겨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과연 실험이란 이름에 걸맞은 데이터를 쌓아가고 또 나누고 있을지, 늦기 전에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리빙랩이 더 궁금하다면 함께 보세요. 


[책]

『줄리엣과 도시 광부는 어떻게 마을과 사회를 바꿀까? -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30가지 사회 혁신 실험』(윤찬영, 2019)

『모두가 디자인하는 시대 - 사회혁신을 위한 디자인 입문서』(에치오 만치니, 2016)

[보고서]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리빙랩(Living Lab)이란 무엇인가」(윤찬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함께 만들어가는 사회문제 해결형 R&D ‘리빙랩길잡이’」

[기사/블로그 포스트]

[한국 사회혁신 지도] 1/10 가격으로 95% 안질환 잡아내는 카메라

‘건너유’ 리빙랩(Living LAB) 프로젝트 


written by 윤찬영

현재 (사)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의 현장연구센터장이자 행정안전부 정책실험 숙성 TF에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줄리엣과 도시 광부는 어떻게 마을과 사회를 바꿀까?』(2019)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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