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액 연봉을 뿌리치고 손가락만 빨았던 이유
나는 아주 일찍부터 스스로 진로를 확정지을 수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쯤의 일이다.
진로상담이라든지 적성검사 같은 아무런 외부의 도움도 필요 없었다.
질문의 시작은 단순했다.
난 나중에 무슨 일을 하며 먹고 살까?
우주와 인간의 내면에 관심이 있던 내게 처음 떠오르는 생각은 철학과 심리학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글쓰기였나보다. 국문학이란 것이 떠올랐으니까.
어린 마음에도 뭔가 한참 부족한 영역들이라고 느꼈다.
철학, 심리학, 국문학... 이런 것들을 배워서 어떻게 돈을 벌어서 먹고 산다는 말인가?
단순한 생각은 다음으로 이어졌다.
내게 가장 즐거웠던 일은 무엇이었지?
이 생각이 결정타였다.
답을 찾는 데는 단 1초도 걸리지 않았고 나는 곧바로 '컴퓨터' 라는 결론으로 직행하게 되었다.
1984년,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
당시에 컴퓨터라는 것을 처음 접했다.
영등포구에 살 때였는데 반 친구들 중 나름 잘 나가는 아이들 몇몇이 컴퓨터 학원이라는 데를 다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의 컴퓨터는 애플II 모델로 RAM은 64KB에 5.25인치 얇고 커다란 플로피디스크를 넣으면 징징 하면서 데이터 읽어내는 소리가 나는, 지금으로 치자면 컴퓨터와 관련된 장치라고 상상하기도 힘든 그런 것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래도 초록색 단색 모니터 화면에 키보드가 연결된 것을 보면 누구라도 컴퓨터임을 인식할 수는 있는 형태이기는 했다.
아무튼 그 외계인이 던져놓고 갔을 법한 물건을 본 나는 한눈에 반했다.
키보드에서 알파벳 자판을 찍으면 - 한글 자판이 없고 쓸 수도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 어떻게 화면에 그 글자가 찍혀나오는지!
알만한 분들은 아시겠지만 모니터는 모니터인데 화면에서 '이미지'가 전혀 나오지 않는 것이나 마우스라는 장치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요즘 MZ 세대들에겐 충격이겠지만 컴퓨터는 그 자체로 어린 내 영혼을 흡수하는 것만 같았다.
이런 첫만남을 계기로 컴퓨터는 내 가슴 속으로 쑥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내 어린 시절 가장 큰 즐거움을 주는 판타지였다.
게다가 그것이 돈을 벌어주는 직업이 될 수도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비록 내 심상에 떠오른 순서상으로 보면 차선이기는 했지만.
1990년 대입 시험을 쳤다.
나는 학력고사 세대의 끝물이다.
선지원 후시험.
성적을 예상하고 시험을 쳐서 안되면 거의 무조건 재수였다.
나름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나는 단체생활을 혐오했다.
그런 나에게 재수라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선지원 후시험이라는 조건 하에서 내겐 딜레마가 하나 있었는데 당시 컴퓨터 관련 학과들은 모두 이과에서 최상위 커트라인에 속한다는 거였다. 내 인생에 재수는 없는 건데 큰 허들 하나가 생겼다. 그런데다 한 가지 훨씬 더 큰 딜레마가 있었는데 나는 수포자였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수포자가 된 사연]
중학교 2학년 1학기때까지 수학 시험에서 줄곧 만점을 받던 어느날 원래 수학샘이 출산 휴가를 가시고 땜빵으로 온 임시교사샘이 너무 싫어서 수학 시간만 되면 무조건 책상에 엎드려 잤다. 옆 친구에게 종 치면 깨워달라고 부탁하고서. 몇 달이 지나 다시 돌아오신 원래 수학샘이 - 담임도 아닌데 - 교무실로 부르셨다. 너는 어떻게 늘 만점 받던 애가 한 자릿수 점수를 받게 됐냐고 다그치셨다. 이후로 노력하면 될 줄 알았던 수학 점수는 오르지 않았다. 내 인생 복잡한 퍼즐의 한 조각이다.
학교를 정하고 과를 정하자니 나름 인지도 있는 학교의 '생물공학과' 가 하향지원 - 재수는 불가했기에 - 의 안정권으로 나왔다.
컴퓨터 관련 과를 정하고 안정권인 학교를 정하자니 듣보잡 학교가 나왔다.
1시간 정도는 고민했던 걸로 기억한다.
생물공학? 이름도 그럴싸 하고 당시에도 유전자 관련 분야는 먼? 미래에 비전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생물학과 같은 고리타분한 이름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중학교 때 개구리 뒷다리 잡고 해부 실습 하던 때의 악몽만 자꾸 되살아나고 내가 생물이라니? 나는 무생물 - 기계, 컴퓨터 - 이 훨씬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싫은 일은 죽어도 못하는 성격이다.
어릴 때의 꿈을 찾아 가기로 결정!
대학에서의 공부는 즐거웠다.
거의 기숙사-수업-도서관을 오가는 미친 공부를 했다.
그렇다고 공부만 한 것은 아니고, 밤 11시쯤 되면 새벽 3시까지 매일 술을 마셨다.
솔직히 고등학교 때는 그다지 공부에 집중하지 않았다.
나는 이 고해苦海와 같은 인생에서 완전히 탈출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다.
비록 수포자이긴 했지만 국어나 영어 같은 과목에서는 대충 하는 둥 마는 둥 공부를 해도 대학에는 적당히 갈 만한 성적을 유지했다. 대신 수학은 해도 안되니까 오히려 속상했다.
듣보잡 대학에서 컴퓨터쪽을 전공하긴 했지만 이를 악물고 공부 하는 복학생들을 제치고 - 그리고 후기대라 나름 똑똑한 친구들도 많았다 - 대부분 장학금을 받으며 다녔고, 과에서 수석을 해서 전액 장학금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석사 과정도 마치고 직장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직장생활 7년 차, 2003년도였는데 당시 연봉이 5,000만원 정도 됐다.
22년 전인 당시 물가로 따지면 그리 작은 돈은 아닌 듯하다.
연봉을 1억을 주겠다는 대기업 프로젝트의 스카웃 제의도 있었고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자회사로 가진 글로벌 기업의 전산실에서의 스카웃 제의도 있었다.
요즘 유행어 중에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라고 하던데
나는 오히려 그 반대로 '박수칠 때 떠나라' 를 실천했다.
다 뿌리치고 직장 생활에서 완전히 떠났다.
그러고 나서 5년 넘게 손가락만 빨며 - 하고싶은 일을 하며 지내긴 했지만 - 지냈다. 그 어렵던 와중에 결혼도 하고 아들도 낳았다.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했던 것은 그런 나를 믿고 따라준 아내 덕분이다.
내 삶에 내려진 딱 하나 천운을 꼽으라면 아내를 잘 만난 일이 아닌가 싶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나는 중1 때 진로를 결정하던 생각의 첫번째 흐름으로 다시 돌아갔다.
철학? 심리학? 국문학?
내가 컴퓨터와 IT 업종을 버리고 맨땅에 헤딩 하듯이 돌아간 그곳이 아마도 마음의 고향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IT 컨설팅 관련된 일을 했었다.
가장 단순하게 표현하면 현업의 기존 업무를 컴퓨터로 바꾸고, 세부적인 업무들을 디지털화된 비즈니스 프로세스로 옮겨서 일하도록 하는 작업이었다.
현업에서는 늘 불평이 뒤따랐고 생산성 향상이나 그로 인한 고마움 등을 느낄 수 없었다.
또 직원들이 기업에 속해서 하는 일의 수익의 대부분은 오너에게 집중되고 직원들은 고생만 하는 구조에 대한 불만도 컸다.
나는 원래의 질문을 끝없이 반복했다.
답은 언제나 내 안에, 나의 내면에, 나의 과거에 있었다.
그래서 박수칠 때 떠나는 용기를 얻었다.
아니, 그건 용기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에게 길은 하나뿐이었으니까.
내가 최종적으로 사표를 내고 그만두고 나오는 길에 동료 과장이 내게 물었다.
두고 두고 이 질문, 이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기억에 울린다.
당시에 나는 그저 피식 웃고 말았지만, 과거로 다시 돌아간다면 같은 선택에 더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려 한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물론, 나름대로 열심히 잘 살아왔으리라고 믿는다.
한 때 코딩으로 밥을 먹고 살았던 전공자로서 코딩과 글쓰기의 공통점을 가끔 생각하게 된다.
요즘은 코딩 툴이 많이 발전해서 디버깅 작업이 훨씬 더 편해졌는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아주 곤역이었다.
먼저 목적하는 알고리즘의 윤곽을 전체적으로 잡는다.
그런 알고리즘대로 코드를 작성한다 - if 조건이 뭐하면 then 뭘 해라 - 하는 식이다.
이런 코드를 컴퓨터가 알아보게 인터프리터 - 번역기 -에 넣고 돌린다.
원하는 결과를 흐뭇하게? 본다.
참 쉬울 것 같지만 문제는 내가 생각하는 코드와 컴퓨터가 이해하는 코드에서 항상 핀트가 어긋난다는 데 있다.
인터프리터에 넣고 돌리면 삐빅! 제대로 해서 넣어라!? 하고 컴퓨터는 뱉아낸다.
알아듣게 제대로 고쳐달라는 말이다.
if를 iif 등으로 오타를 치는 문제가 아니라 논리적으로 뭔가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뭐래?
나는 분명 제대로 한 것 같은데.
컴퓨터는 뱉아낸다.
......
이만 하면 제대로 됐겠지?
틀렸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고쳐서 다시 넣는다.
삐빅!
피곤에 쩔은 눈을 비벼가며 코드를 이잡듯이 뒤져봐도, 내가 보기엔 틀린 곳이 없는 것 같은데!!!
과장하자면, 때로는 이 과정을 거의 무한 반복 한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단다.
내가 맞다고 생각하고 보면 분명 다 맞아 보이는데, 그래서 더 제대로 수정이 안되는 것이다.
글쓰기?
처음 초고를 줄줄 써내려 갈 때는 내가 뭐 천재작가(!?) 라도 된 것 같다. 글이 이렇게 신나게 잘 써질 수가 있나! (물론 늘 그런 건 아니지만)
그 초고를 다시 보면 일차로 오타라든지 어색한 문장이나 표현 등이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퇴고를 한 두 세 번? 하다 보면, 이만하면 잘 된 것 같다 - 난 역시 천재작가! ㅋㅋ
자신있게 옆지기에게 보여준다.
바쁘다, 피곤하다, 그럼 온갖 물질적 조공까지 바쳐가며 겨우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 물론 천사같은 성격이라 잘 읽어주지만 / 싹싹 - 와? 천사는 맞는데 얼음 조각상 같은 천사가 된달까, 팔이 안으로 안굽는달까. 글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을 조목조목 뱉어낸다.
그렇다.
컴퓨터 언어의 인터프리터 수준이다.
근데 듣고 보면 그 말이 구구절절 다 옳다.
세컨드 브레인처럼 장착하고 퇴고, 또 퇴고를 거친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 몇 달도 몇 년 같고, 몇 년은 평생 같다. 내 경험상 3년 주구장창 퇴고하며 묵힌 원고가 책으로 나온 것이 2건이다 - 출판사의 편집자를 만난다. 이 또한 인터프리터라 원고를, 나의 피같은 프로그램을 뱉아낸다. 여기서는 주로 마케팅부 입맛에 맞게... 라는 주문이 뒤따른다. 그러면 퇴고 또 퇴고...
혹시 이 기나긴 글의 끝까지 잘 따라와 주신 독자님이 계시다면 정말 감사드리고싶다.
드디어 결론이다.
그리고 코딩으로 밥 먹고 살기도 쉽지 않듯이 - 끊임없는 야근에 수시로 철야까지
글쓰기로 밥 먹고 살기도 쉽지 않은 건 세상이 다 알만한 일일 게다.
이 자리를 빌어 '행복한 편의점' 으로 유명한 김호연 작가님의 에세이를 추천하고 싶다.
그나마도 나름 글쓰는 입장에서 제목마저 큰 울림의 임팩트를 남긴다.
전업 작가로 서기까지의 그 과정이 너무나 처절했다.
결국에는 무명에서 히트작도 내고 유명한 작가가 되셨으니 그 과정을 책으로나마 볼 수 있었던 나로서는 가까운 지인의 일처럼 너무나 기쁘기 짝이 없다.
그리고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