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작가의 책에 대한 회의 [일류의 조건]

단, 일단 하루키는 제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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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기를 마친 사이토 다카시의 [일류의 조건] 이라는 책에 대해 간단한 코멘트를 남겨보려 한다.


책의 표지에 커다랗게 쓰여있듯이 이 책은 '자기계발의 바이블' 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달고 있다. 누적 1,000만 부를 판매했다니 판매 부수도 상당하다. 다만 20년 이상 자기계발과 명상 분야를 업으로 삼고 있는 내가 (독자 문의 쇄도로 18년 만에 복간 했다고 하니 알 법도 한데, 이 책의 존재를 전혀 몰랐다) 모르는 책이었다.


개인적으로 평소 일본인 작가의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100퍼센트가 그렇다거나 예외 없이 그렇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일본 작가들의 책을 보면 뭔가 허탈한 느낌을 지우기 힘들 때가 많기 때문이다.


'바로 이거다! 이것이 새로운 법칙이다!'

라고 외치지만 막상 책을 펼쳐보면 허술하기 짝이 없다.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된다!'

라고 외치지만 뭐, 뭐, 그렇겠지;;; (심드렁한 느낌이랄까)


300 페이지도 안되는 컨텐츠로 (억지로 억지로 최소한 300 페이지 가까이는 어떻게든 만들어보려는 노력이 역력해 보이는 280이나 260p, 큰 폰트로 꾸역꾸역;;; ) 책 한 권 분량 어떻게든 채워넣으려는 분위기...


물론 이런 책들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많은 책들에서 내가 본 분위기였다.

그리고 그런 나름의 편견이 들어가서일까, 일본어를 한국어로 번역한 특유의 문체 등도 어느날부터는 거슬리기 시작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느낌에 불과할 테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일본 저자의 책은 특별히 끌리는 경우가 아니라면 거르는 편이다. 그래도 좋은 책을 여러권 건지기는 했다 - 기억나는 책이라면 녹즙 한잔의 기적, 당뇨에는 밥 먹지 마라 (에베 코지), 청소력 등등.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 <일류의 조건> 을 어찌 어찌 알게 되고, 나의 무수한 <일본인 책들은 믿거> 라는 관념의 숲을 뛰어 넘어서 읽게 되었다.


책 마지막을 덮으며 (종이책이 아닌 이북으로 보았으니 덮지는 않았지만) 나는 투덜거렸다. '에필로그' 를 읽으며 아 이제 끝나나보다 (안도의 한숨) 했는데 '저자 후기' 가 또 등장했다 (답답한 한숨).


이 책이 말하는 일류가 되기 위한 3가지 조건은 다음과 같다.


훔쳐라

요약하라

추진하라


첫째,

훔치라는 것은 더 뛰어난 타인의 기술을 완벽히 자기 것으로 만들라는 뜻이다. 저자는 훔친다는 것이 그저 모방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강변한다.


변화를 위한 가장 위대한 기법이라 일컫는 NLP (신경언어 프로그래밍) 에도 비슷한 개념이 있는데 그것을 모델링 이라고 보른다. 즉 누군가 타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나도 할 수 있다,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따라할 수 있다면 가능하다고 한다.


저자의 훔치라고 강조할 때마다 나는 NLP의 모델링이 계속 떠올랐다. 20년 전에 NLP가 존재하지 않았던 때는 아니다. 아무튼 저자는 굳이 '훔친다'는 용어를 꼭 사용해야만 했을까? 더 좋은 단어도 많았을 텐데.


둘째,

요약하라, 는 대목에서는 최근 두려울 만큼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AI(인공지능)이 떠올랐다. 사실 이 '요약' 이라는 작업을 인공지능만큼 잘 할 수 있는 도구도 드물 것이다. 방대한 데이터를 넣어주고 이것을 300자로 요약해줘, 3가지로 요약해줘, 토크쇼 형태로 이해하기 쉽게 오디오 파일로 만들어줘, 너는 이 내용의 전문가니까 내가 묻는 질문에 선생님처럼 대답해줘, 등등 별별 주문이 가능할 것이다. 물론 이런 능력은 GPT 생성모델의 빙산의 일각일 뿐이지만.


물론 책은 요약하면서 발달하는 우리 두뇌의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우리보다 훨씬 더 뛰어난 능력을 가진 기계를 도구로 사용하면서 기계가 할 수 없는, 우리가 기계보다 나은 두뇌의 측면을 더욱 활성화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예컨대 <질문하는 능력> 과 같은 것들 말이다.


마지막으로,

추진력에 대해서는 너무나 일반적인 이야기이므로 여기서는 생략하려고 한다. 다만 책 구성상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요건에 대해 딱 나누어 떨어지는 구성을 하고 있지 않다. 결국 요점을 파악해내는 것은 독자의 문해력이라며 저자는 독자들에게 수수께끼를 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과제라도?




KakaoTalk_20250523_194944930.png 무라카미 하루키, from 나무위키


저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예를 마지막 챕터 전체를 할애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하루키가 바로 훔치는 힘, 요약력, 추진력 이 세 가지 요건을 모두 갖춘 훌륭한 사례라는 것이다.


나는 하루키의 작품을 읽어본 적은 없지만 이 책을 통해서 그 작품에 대한 궁금증이 폭발하기는 했다. 무엇보다도 다묘가정 고양이들의 집사인 측면에서 '노르웨이숲' 이라는 고양이 품종의 존재와 동명인 그의 소설 제목 간의 관계도 궁금하기도 했고 말이다.


하루키는 소설가가 되어 글을 쓰면서 체력의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달리기를 시작했단다. 그래서 매년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고, 매일 10km를 달린단다. 매일 저녁 9시면 잠자리에 들고 새벽 4시에 일어나 5-6시간 글을 쓰고 나서 다음에는 달린단다. 그야말로 시계추 같은 습관 중독의 삶이 아닐 수 없다.


이 삶에 대한 나의 느낌은 '애매' 하다.

나 또한 그런 삶에 대한 동경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일정 기간 그러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러한 삶이 가치 없다는 판단 등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건 애증일지도 모르겠다.


많은 이들이 그렇듯이, 나는 '반드시 일류가 되어야 한다' 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세속의 일들이 삶의 전부라고 여기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것은 '여우의 신포도 이야기' 의 일부이려나?


나의 개인 도서관 격인 <예스24 북클럽> 에서 하루키의 소설을 찾아보았지만, 없었다. 하루키의 작가 이전 시절 재즈바를 운영했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그의 글과 음악의 관계를 조명한 책만이 검색 결과에 나타날 뿐.




언젠가는 하루키의 소설을 읽어보아야겠다.

-- <일류의 조건> 은 내 마음 속 하루키라는 이름에 굵은 밑줄 하나 그어주고 사라진 셈이다.


P.S. 역시 일본 작가의 책은 믿거다.

하루키는 일단 이 법칙에서 제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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