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이 가르쳐준 것

그가 뛰어난 선수이자 훌륭한 리더인 이유

by 김현철

축구 좋아하는 이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잠 못 이루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청년 손흥민 때문이다. 지난여름, 그가 속한 토트넘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지난 시즌의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감독은 교체되고 잉글랜드의 희망이자 토트넘 득점의 40% 이상을 책임졌던 해리 케인마저 그의 경력에 우승 트로피를 추가하고자 팀을 떠났다. 그동안의 주축 선수들은 뒤로 물러나고 젊은 선수들이 대거 주전으로 기용되었다. 대개 이런 시즌엔 미래를 위해 경험이 적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며 팀을 정비하는 기간으로 받아들여진다. 팀 성적이 더 떨어지는 것은 미래를 위한 투자처럼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곤 했다. 그러나 지금 손흥민의 팀은 세계 최고 수준의 프리미어 리그 순위표에서 맨 윗자리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이른바 전문가라 하는 이들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다.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우선 새로운 감독 엔지 포스테코글루의 뛰어난 리더십을 들 수 있다. 팀이 가진 기량을 최대한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과감히 개혁했다. 자신의 경험만을 믿으며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 개혁 중 하나가 모두를 놀라게 한 주장 선임이다. 토트넘 핫스퍼 141년 역사상 처음으로 비유럽계 주장, 손흥민을 선택한 것이다. 손흥민의 실력과 나이, 팀에 대한 기여를 생각하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강력한 규제와 처벌에도 여전히 인종차별이 자행되는 영국에서 토트넘이라는 팀의 조직문화와 손흥민이라는 사람의 역량에 뛰어난 통찰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세계적인 명장이라고 불리던,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주제 무리뉴, 안토니오 콘테 같은 이들도 기존 선수들의 기득권에 눈치를 보다가 팀을 떠나지 않았던가. 그걸 빅리그의 경험이 전혀 없는 포스테코글루가 해냈다. 아마도 뛰어난 통찰력을 갖추고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운 혁신가라서 가능했으리라.

한편 언제 어디서나 혁신은 필요하지만 혁신을 위한 시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손흥민은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여 이 역할을 탁월하게 해내고 있다. 심지어 손흥민 스타일의 리더십을 프리미어 리그 여러 구단에 감염시키고 있다. 손흥민이 가진 영향력의 본질은 무엇일까?

많은 이들이 말한다. “손흥민은 동양인에 대한 차별을 실력으로 극복했다”라고. 물론 맞는 말이다. 스포츠의 세계에서 실력을 인정받지 못하면 바로 기용되는 것조차 어렵고 바로 잊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손흥민이 가진 영향력의 실체가 ‘실력’ 뿐이었을까? 그의 성공의 ‘필요조건’이 ‘실력’이었다면 ‘충분조건’은 바로 ‘인성’과 ‘리더십’이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필요조건을 갖추었다는 생각에 ‘나를 몰라준다’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하소연한다. 그러나 필요조건만으론 부족하다. 필요조건이 바로 영향력이나 성공으로 연결되진 않는 것이다. 손흥민은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춘 뛰어난 인간이자 리더이다. 그는 우리가 배워 알고 있으나 현실의 삶에서는 실천하지 못하는 것들을 모두 실천하고 있다.


_진정성의 힘

2019년 11월 4일. 손흥민은 그의 팀과 함께 에버턴과의 원정경기를 치렀다. 언제나처럼 최선을 다하던 손흥민은 상대편의 안드레 고메스 선수에게 태클을 가해 그의 발목에 골절상을 입혔다. 그는 일어서지 못하고 들것에 실려나가 병원으로 후송됐다. 쓰러진 고메스가 발목이 꺾인 것을 확인한 손흥민은 머리를 감싸며 눈물을 쏟았다. 결과만을 놓고 본다면 이것은 비신사적인 행위였고, ‘선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비신사적인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손흥민은 퇴장을 당했다.

놀라운 일은 그 후에 벌어졌다. 상대편 감독인 마르코 실바는 “손흥민이 나쁜 뜻을 가지고 행한 것이 아니라고 100% 확신한다”라고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상대편 주장 시무스 콜먼과 에버튼 선수들은 손흥민의 라커룸을 찾아 자책하며 괴로워하는 손흥민을 위로했다. 많은 단체 스포츠에서는 우리 팀 선수에게 해를 가한 상대에게는 우리 팀이 힘을 모아 그에게 앙갚음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야구에서의 벤치 클리어링이 바로 그런 것이다. ‘클리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상대에 대한 보복에 참여하지 않으면 동료 의식이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에버튼의 주장은 자기 팀을 독려하여 손흥민에 대한 보복을 다짐한 것이 아니라, 손흥민의 라커룸까지 찾아와 자기 팀 선수에게 부상을 입힌 가해자(!)를 위로했다. 이 모두가 그동안 겪어온 손흥민 선수의 진정성이 발휘한 영향력 때문이었다.

5개월 후 부상에서 회복되어 경기장으로 돌아온 안드레 고메스는 이렇게 말했다. “손흥민은 좋은 사람이다. 그는 나에게 사과했다. 나는 그에게 가끔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고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연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고도 오히려 그에게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그런 삶을 살고 있을까?


_잘못되면 자기 탓을 한다.

지난 카타르 월드컵. 우리나라가 속한 H조에는 포르투갈, 우루과이, 가나가 예선 통과를 위한 경합을 벌이고 있었다. 최강자인 포르투갈은 이미 2승으로 예선 통과가 확실한 상황에서 서로 물고 물리는 경합을 벌이는 가운데 나머지 세 팀이 예선통과를 결정하는 마지막 경기를 남겨두고 있었다. 예선을 통과할 확률은 우루과이가 높았다. 우루과이는 비교적 쉬운 상대인 가나와의 경기를 앞두고 있었던 반면, 대한민국은 세계랭킹 8위의 강적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이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손흥민의 절묘한 어시스트에 힘입어 대한민국은 포르투갈을 이겼고 우루과이는 예선에서 탈락했다. 기분이 상한 우루과이 선수들은 경기 후 인터뷰에 참여하지 않고 떠났다. 유일하게 인터뷰에 참여한 손흥민의 토트넘 동료 벤탄쿠르가 손흥민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한국이 포르투갈을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 그렇기에 아쉬운 것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요. 하지만 진심으로 기쁜 것 또한 사실입니다.” 한국의 승리로 자기 나라가 예선에서 탈락했는데 진심으로 기쁘다니? 벤탄쿠르는 이렇게 말한다. “쏘니가 이번 승리로 인해 마음의 짐을 어느 정도 덜은 것처럼 보였거든요. 그는 항상 그래왔습니다. 팀이 승리하지 못하면 그것은 대부분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했죠. 실제는 실제가 아니든 말이에요. 사실 유럽에선 보기 힘든 마인드입니다. 우리는 항상 패배의 원인을 웬만하면 다른 곳에서 찾거든요. 물론 저도 그렇고요. 하지만 쏘니는 항상 자신이 좋은 플레이를 선보였어도 팀이 지게 되면, ‘자신이 좀 더 잘했어야’라는 생각을 가진 친구입니다.” 손흥민은 실제로 자신의 2골을 넣은 경기에서 지게 되면 “자신이 좀 더 열심히 뛰어서 한 골만 더 넣었더라면……”이라고 생각한다.

22-23 시즌에서 토트넘은 4위에서 8위로 추락했다. 결국 책임을 지고 안토니오 콘테 감독은 팀을 떠났다. 모두가 콘테 체제의 최대 희생자는 손흥민이라고들 말했다. 21-22 시즌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에게 어울리지 않는 역할을 주문함으로써 손흥민은 단 10골 밖에 기록하지 못했다. 어떤 이들은 인종차별이 아니냐고 불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콘테 감독의 해임과 이별에 대해 묻는 기자에게 손흥민은 선한 인성과 높은 품격이 드러나는 말을 한다. “감독님께 너무 죄송하다. 우리가 좀 더 잘했더라면 세계적인 명장인 콘테 감독님이 이렇게 팀을 떠나게 되시진 않았을 텐데. ‘다른 선수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자신은 콘테 감독님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이렇게 보내드리게 되어 죄송하다. 능력 있는 분이므로 다른 곳에서 잘 해내실 것이라고 믿는다.” ‘다른 선수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지만’이라는 레토릭은 ‘다른 선수들이 콘테 감독을 비난해도’라고 해석해도 될 듯하다.

손흥민이 전적으로 옳다. 타인으로 인해 피해를 봤더라도 그를 원망해서는 성장과 발전이 없다. 성장을 위해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나에게 피해를 준 타인이 아니라 자신뿐이다.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게 실천 가능한 일인가? 그는 이걸 늘 해낸다. 그렇게 살고 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_잘된 일엔 동료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손흥민이 골을 넣은 후에 찍힌 사진에 자주 보이는 포즈가 있다. 기쁨을 함께하면서 포옹하거나 어깨동무를 한 누군가를 가리키고 있는 사진이다. 자신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주어졌을 때조차도 그는 이 동료 덕분이라고, 이 동료의 기여를 주목해 달라고 주문하는 것이다. 손흥민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곤 한다. 자신의 탁월한 판단력과 기량으로 득점했을 때조차도 동료들이 자기 발 앞에 공을 보내서 자신을 그냥 발을 갖다 댄 것뿐이라고. 모두 동료들의 덕이라고. 그래서 손흥민은 프리미어 리그에서 인터뷰의 교과서라고 불리기도 한다. 누군가는 어떤 태도로, 어떤 단어와 문장을 언제 써야 하는지를 분석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손흥민에겐 그런 게 필요 없다. 그의 인성, 그의 진성성이 그대로 언어와 행동으로 드러날 뿐이다.

그는 늘 동료들을 돕는다. 심지어 코치, 구단 직원의 경제적 어려움까지 살핀다. 그러나 그걸 내세우는 법이 없다. 그의 동료들이 A매치를 위해 자신의 나라에 돌아가면 자신을 위해 최선의 배려를 아끼지 않는 손흥민이라는 동료 덕분에 안심하고 자신의 기량을 최대한 발휘하고 있다고 말하곤 한다. 한두 사례가 아니어서 일일이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것을 내세우는 법이 없다. 그러나 동료의 기여에 대해서는 절대 잊지 않는다. 그가 해트 트릭을 기록한 날에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이것은 나의 골이 아니다. 우리 팀원 모두가 기록한 골이다. 나는 그저 마무리를 했을 뿐이다.” 이런 동료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의 동료이자 부주장이며 잉글랜드 팀의 희망이 매디슨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런 말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쏘니는 확실히 월드클래스다.”

_잘못한 일을 변명하지 않고 사과한다

10월 24일 토트넘을 플럼과의 홈경기를 치른다. 손흥민은 이 경기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면 토트넘의 2:0 승리를 이끌어 프리미어리그 사무국이 선정한 경기 최우수 선수(MOM)에 선정되었다. 이날 펄펄 날던 손흥민이 후반전 중반에 교체된다. 긴 시즌을 얇은 선수층으로 치러야 하는, 더구나 손흥민에게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토트넘의 형편상 어느 감독이라고 취했을 법한 조치였다. 모처럼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되어 좋은 폼을 보여주던 손흥민은 편치 못한 표정으로 그라운드 밖으로 물러났다. 경기 후 최우수 선수로 선정된 손흥민을 인터뷰하던 기자가 묻는다. “오늘 좋은 컨디션으로 보이던데 교체되어 기분이 어떠냐?”라고. 손흥민은 말한다. “모든 선수는 경기장에 오래 있고 싶어 한다. 그러나 교체되어 들어온 젊은 선수들도 경기에서 뛰기 위해 그동안 함께 노력했다. 그들이 뛸 기회를 갖게 된 것을 기뻐했어야 했는데 나는 오늘 그러지 못했다.”

그도 젊은 선수인지라 좋은 컨디션에도 불구하고 교체되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좋지 못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는 나섰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자신의 욕심이 지나쳤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의미다. 주장으로 젊은 선수들이 기회를 갖게 된 것을 기쁜 마음으로 응원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한 것이다.

우리는 흔히 이런 순간에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거나 실수를 깨닫고도 행동을 옹호하고 변명하기 바쁘다. 축구계에서도 호나우도 같은 월드 클래스의 선수들이 자신을 교체하는 감독과 다투거나 나중에 고의적으로 감독의 지시를 어기는 일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손흥민은 다르다. 바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드러내어 말한다. 그리고 사과한다. 조용히 덮어도 되는데 말이다. 다른 이들, 특히 그와 함께 하는 젊은 선수들이 그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축구 전문가들이 올 시즌 토트넘이 빈곤한 선수층에도 불구하고 1위를 질주하는 이유를 엔지 감독의 지도력과 주장 손흥민의 역할에서 찾는 이들이 많다.

_타인의 강점만 본다

많은 이들이 이 경기의 승리로 토트넘이 1위로 나선 것에, 그리고 손흥민이 1골 1도움이라는 빛나는 기록과 함께 영리하게 플레이를 조절하며 팀의 승리를 견인한 것에 집중한다. 그러나 손흥민이라는 사람의 강점이 빛나는 짧지만, 매우 중요한 순간이 있었다. 경기도 끝난 후 선수들과 기쁨을 나누면서 골키퍼 비카리오를 안아 번쩍 들어주는 장면이었다. 그동안 경기가 끝나면 비카리오는 늘 자신을 응원하고 도움을 준 손흥민을 안아 들어 올리곤 했었다. 그에 대한 보답이라서 중요한 것일까? 아니다. 이날의 경기에서 비카리오의 플레이를 복기해 보아야 한다.

현대축구에서 공격은 후방의 빌드업(건축물 같은 무엇인가를 쌓아 올리는 뜻의 빌드업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처럼 우리 진영 최후방에서부터 팀 동료에게 공을 정확히 연결하며 적진으로 나아가는 공격의 기초 단계를 의미한다)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과거처럼 골키퍼가 아주 급할 때를 제외하고는 공을 전방으로 ‘뻥’ 차내는 일은 드물다. 우리 편 공이 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토트넘의 경기가 잘 풀리는 날에는 아무리 긴박한 순간에도 골키퍼 비카리오가 센터백인 로메로에게 공을 전달하면서 빌드업이 차곡차곡 진행되곤 했었다. 이날 후반 중반 이후 손흥민과 매디슨 등 주력 선수들이 빠지자 상대의 강한 압박에 여유를 잃은 비카리오는 자신에게 오는 공을 길게 걷어내는 데 급급했다. 오죽했으면 자신의 선수들에 대한 질책을 삼가는 포스테코글루 감독마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전반전의 조화로웠던 플레이와 다른 후반전의 형편없는 플레이에 대해 일침을 놓았을 정도였다.

사실 비카리오는 토트넘에 오기 전까지는 프리미어 리그와는 거리가 먼 4부 리그에서 뛰던 선수였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그가 제법 순발력은 뛰어나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거친 프리미어 리그에서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지향하는 점유율 축구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빌드업의 출발점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을 품었었다. 그러나 그는 적응 기간도 필요 없이 첫 경기부터 이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손흥민의 도움 덕분이라고 그가 몇 번이나 말했었다). 이 모든 것이 이날 경기 후반에 무너졌던 것이다. 연이어 실수를 저지르며 빌드업에 실패하고 상대에게 공을 내주곤 했다. 그러나 몇 차례의 위기에서 그는 자신의 기량으로 선방 쇼를 펼치며 결국 무실점 경기를 이끌어냈다. 그의 강점과 약점이 동시에 드러난 경기였다. 손은 최고의 기량(위기에서의 선방)을 발휘하고, 발은 최악의 플레이(빌드업 실패)를 보여준 것이다.

손흥민이 빛나는 것이 이런 장면이다. 감독마저도 질책한 이런 경기 후 그는 비카리오를 꼭 안아 들어 올려준다. 이날 손흥민의 눈에는 공을 길게 걷어내기 급급해서 상대에게 공을 내주고 빌드업에 실패한 비카리오는 보이지 않았다. 오직 ‘선방을 거듭해서’ 무실점 경기를 이끌어낸 비카리오만이 보였을 뿐이다. 놀라운 것은 손흥민은 과거 공격에서 빛나는 활약을 했음에도 수비 가담을 안 했다고 이전의 골키퍼에게 질책을 받은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그는 부정적인 부분보다는 긍정적인 부문에 초점을 집중하는 사람이다. 이것은 오랜 역사를 통해서 증명된 리더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다. 뛰어난 리더들은 사람들의 강점을 먼저 본다. 그래서 그들이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이끈다. 인간은 질책받을 때가 아니라 응원받고 지지받을 때 자신의 최고를 보여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리더와 함께 있으면 개인과 조직의 역량이 배가된다. 같은 사람, 같은 조직인데도 불구하고.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손흥민에게 타인의 강점을 보는 태도는 주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의 기본적인 ‘성격’ 혹은 ‘인성’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이것을 확인할 수 있고, 그가 왜 인터뷰의 교과서라고 불리는지 알 수 있다. 그것은 그의 말하는 기술이 아니라 그의 인성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그는 주장으로서 동료들을 도와 동료와 팀의 기량을 최대한 이끌어낸다. 그는 리즈 와이즈먼이 그녀의 책 『멀티플라이어』에서 말한 전형적인 멀티플라이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 이상을 발휘하도록 이끌어내 성과를 증폭시키는(multifly) 사람을 말한다. 그가 증명하고 있듯이 리더십의 본질은 ‘기술’ ‘기량’이 아니라 ‘인성’에 가깝다.

_모두에게 존경받는다

토트넘이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결국은 라커룸의 문화가 팀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위계질서 속에서 소수가 분위기를 주도하고 그 가운데 필연적으로 소외된 이들이 생겨나며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결국은 떠나길 원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리고 자신과 팀의 성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이러한 라커룸의 분위기를 역동적으로 바꾸고 모두가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낼 주장이 필요했고 그 적임자로 손흥민을 선택했다. 그는 손흥민을 주장으로 선임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손흥민은 경기장 안팎에서 훌륭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주장 선임은 이상적인 선택”이라며 “그는 단순히 인기가 많은 선수가 아니라 월드클래스다운 면모를 갖추고 있다. 라커룸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다”

이 자랑스러운 젊은이는 21-22 시즌에 뛰어난 실력으로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에 올랐을 뿐 아니라 올해도 주장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며 팀을 1위로 이끌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현재 득점 레이스에서 2위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그의 팀이 우승하지 못할 수도 있고 그가 득점왕에 오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올 시즌이 어떤 성적으로 끝나든 그의 탁월한 품성은 조금도 빛을 잃지 않을 것이다. 수치로 보여주는 결과가 아니라 그의 품성이 발휘하는 영향력에 집중하면 누구나 이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손흥민은 자신의 탁월한 커리어를 통해서 우리에게 위로를 줄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탁월한 자신의 삶을 통해서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그가 그저 공을 잘 차는 선수였다면 그것이 가능했을까?

그는 역사에서 위대한 성취를 이룬 리더들의 특징을 그대로 갖고 있다. 그들이 가진 많은 역량 중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자신의 성공을 염원하는 사람들을 얻는 능력이었다. 심지어 그들 주변에는 그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것마저도 불사했던 이들마저 많았다. 그들은 자신에 대한 성찰을 통해 누구든 담을 수 있는 큰 그릇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이것을 잘 알고 있지만 막상 타인과의 갈등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남을 탓하기에 바쁘다. 이런저런 압력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야만 할 때에도 진심으로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는 대신 이런저런 핑계를 대곤 한다. 늘 나쁜 결론으로 향하는 레토릭도 서슴없이 구사한다. “어디 나만 잘해서 되겠어? 그러니까 너도 잘했어야지”, “미안해. 그런데 네가 잘했으면 내가 그랬겠어?” 특히 진심 어린 반성과 사과가 필요한 장면에서는 최악이다. 이런 마음가짐과 이런 언사로 틀어진 관계를 개선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인간의 심리가 작동하는 방식에 비추어 볼 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관계를 개선하고 자기편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자신뿐이다. 그래서 현명한 이는 자신의 잘못이 단 1%에 불과해도 오직 그것에 집중한다. 자신이 변화시킬 수 있는 것, 즉 상황 개선을 위한 변수는 그것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갈등 상황에서 날카로운 이성으로 무장한 합리적 설득으로 상대가 잘못을 인정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합리성이라는 이름의 공격을 받으면 인간 모두가 가진 방어기제는 비합리적 갑옷을 한 겹 더 입을 뿐이다. 인간이 그런 존재인 걸 어떡하랴? 우리 조상들이 수양하는 일에서 외부의 온갖 조건을 다 미뤄두고 오직 자기에게 그리도 침잠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타인과 세상을 바꾸기 위한 필요조건이 먼저 자신을 바꾸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영국에서 ‘왜 많은 사람들이 저 멀리 아시아 끝에서 온 손흥민 선수의 성취를 응원하는가’를 찬찬히 읽어내 보자. 이 보물 같은 선수는 탁월한 실력으로 우리 마음에 자긍심과 위안을 줄 뿐만 아니라, 타인과 관계 맺는 방식을 통해 ‘관계 속의 존재인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아내려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를 웅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 태도를 갖는 것이 어렵거나 상당한 인내와 노력 후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이미 갖추고 있는 미덕’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그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마음 한쪽에 던져두었기에 지금 해야 할 일이라곤 그저 꺼내어 쓰면 되는 그런 미덕이다.


“손웅정 감독님, 당신이 틀렸습니다. 손흥민 선수는 인성과 실력에서 모두 월드 클래스가 맞습니다. 그런데 당신의 그 틀린(!) 생각이 오늘날의 손흥민이라는 자랑스러운 젊은이를 길러낸 건 아닐지요?”

작가의 이전글퇴계의 공부(工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