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들에게 드리는 고언
마음에도 영양소가 필요하다
간단한 질문 하나 드리겠다.
“건강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3대 영양소는?”
누구나 쉽게 답을 떠올렸겠지요? 맞습니다.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행복을 연구하는 서울대 행복연구소 최인철 교수는 영혼의 행복을 유지하는 데에도 3대 영양소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자율성, 효능감(유능감), 좋은 관계가 그것입니다. 몸의 건강에 필요한 3대 영양소가 그렇듯이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3대 영양소도 충분히 공급되지 않으면 여러 가지 심리적인 문제를 일으킵니다.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고 타인과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기가 힘들어지며 자기 일을 잘 해낼 수 없습니다. 화를 내는 일이 늘고 짜증이 심해지는 것에서부터 불안감, 우울증, 불면증을 나타내기도 하고 심해지면 마음의 병이 생겨 의사를 찾아야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것은 몸의 병을 치료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부작용도 오래가고 재발하기도 쉽습니다. 이 마음의 병을 감당하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안타까운 일도 생깁니다.
사실 이 세 가지 요소들은 저명한 심리학자 에드워드 데시(Edward Deci)와 리처드 라이언(Richard Ryan)이 1975년에 발표한 ‘자기 결정성 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 SDT)’의 핵심 키워드입니다. 자기 결정성 이론은 인간 행동 통제의 원칙이 내면인가, 외면인가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이론은 인간의 동기가 개인의 흥미와 호기심 같은 내적 통제에 기반이 되었을 때 가장 높으며, 내적인 이유 없이 압박, 강제, 강요 등 순전히 외적인 통제에 의해서 행동하게 되었을 때 제일 낮다는 명제를 기반으로 합니다. 이를테면 일종의 동기이론에 가깝습니다. 이 이론은 리더십, 경영, 조직문화 연구에 매우 중요한 단서를 던져 주어 최근 이 분야의 연구는 이 이론을 반복해서 증명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최인철 교수는 이 이론이 인간의 동기를 결정하는 수준을 넘어 인간의 행복에 결정적 영향을 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이 이론이 말해주는 것은 자율성, 효능감(유능감), 좋은 관계는 인간이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는 조건이 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하나씩 살펴볼까요?
자율성
자율성은 인간의 디폴트값과도 같습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자율적인 존재로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직장에서 리더들이 흔히 관찰할 수 있는 구성원들의 부족한 자율성은 어찌 된 일일까요? 직장에서는 인간이 처음부터 갖고 태어난 자율성을 질식시키는 수많은 제약들이 강력한 자기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 자기장의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것은 역시 조직의 리더입니다. 리더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책무를 완수하고 구성원들의 성장을 돕겠다는 ‘선의(善意)’에서 피드백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것이 인간이 타고난 자율성을 해치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의에서 시작된 일이기 때문에 자신이 구성원의 자율성을 해치고, 조직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대부분은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자율성을 살려내는 비법은 없는 걸까요? 물론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간단합니다. 그것은 바로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자기 결정권을 돌려주는 것입니다. 구성원에게 자기 삶의 결정권을 돌려주면 마음 한구석에 숨어 눈치만 보고 있던 자율성이 기지개를 켜고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래서 데시는 ‘어떻게 하면 남들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남들이 스스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줄 수 있는가?’가 옳은 질문이라고 말합니다. 모든 인간은 자율성이라는 속성으로 인해 이미 ‘자기 방식으로’ 동기 부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결정권을 돌려주면 자율성은 살아납니다. 그래서 조직의 리더가 결정은 자기 마음대로 하고, 모든 일에 자신의 허락을 받을 것을 요구하면서 구성원들이 자율성을 발휘해서 자신이 내린 결정을 수행하기를 기대한다면 결코 그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곳에서 행복합니다. 일터보다 가정에서 행복한 이유도 그렇고, 직장에서 결정권을 가진 리더가 가장 만족도가 높은 이유입니다. 직위, 경력, 나이 등에서 우월한 위치에 있는 리더가 결정권을 독점하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조직의 효율을 심각하게 해치는 일일 뿐만 아니라 구성원의 영혼을 질식시키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효능감(유능감)
인간이 가진 또 하나의 기본적인 속성은 효능감, 혹은 유능감입니다. 인간은 잘 해내고 있다고 믿고 싶어 합니다. 뇌의 입장에서는 ‘잘 해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잘 해내고 있다고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부모가 자녀를 돌볼 때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자녀의 효능감을 해치는 말입니다. “(부정적인 의미에서) 네가 그럴 줄 알았어.” “네가 하는 짓이 그렇지.” “큰소리치더니 겨우 이 정도야?”와 같은 발언이 그것입니다. 효능감에 심각한 상처를 줍니다. 효능감은 ‘자신이 무엇인가를 해낼 수 있다고 믿는 마음’이기 때문에 이 효능감에 상처를 주는 일이 반복되면 도전을 주저하는 아이가 됩니다. 충분히 해낼 역량이 있다고 여겨지는데 매사에 용기를 내지 못하고 망설이는 아이가 되기 쉽습니다. 교육의 장에서는 아이들에게 작은 성공의 경험을 선물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인간이 처음부터 대단한 것을 잘 해낼 수는 없습니다. 무엇인가를 잘 해낸다는 것은 처음에 작은 성공을 경험하고 자신감을 얻어 다시 도전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경험이 축적되어 결국은 큰일을 해낼 수 있는 상태까지 성장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즉, 사람이 투입한 시간과 횟수가 무엇인가를 잘할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셈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해낼 수 있다는 생각, 즉 효능감이 없다면 지속적으로 시간을 투입하고 반복해서 도전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어떤 관계에서든 타인의 효능감을 손상시키는 발언은 인간이면 누구나 가진 성장의 싹을 잘라버리는 일과 같습니다. 타인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피드백이 필요할까요? 예를 들어 아이가 공부하겠다고 의자에 앉았다가 겨우 10분 만에 내려왔다고 했을 때 부모가 어떤 방식으로 피드백을 해야 할까요? “네가 그럴 줄 알았어. 공부한다더니 겨우 10분이야?”와 같은 최악의 피드백은 삼가야 합니다. 대신 “누구나 스스로 공부하는 건 힘들어. 엄마도 그랬어. 그래도 10분 앉아 있었으니 자기주도학습을 시작한 거잖아. 그걸로 충분해. 내일은 15분만 해보자.”와 같은 피드백을 해야 합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잘 해낼 수 있다는 ‘느낌’이 중요합니다. 부모와 리더는 ‘객관적인 현상’을 보고도 ‘성공적인 느낌’으로 피드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피드백에 힘을 얻어 자신의 성장 가능성을 꽃피우는 것이지요. 이것이 현명한 부모, 뛰어난 리더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리더의 피드백은 조직의 성과를 높이고 구성원의 성장을 돕는 매우 중요한 행위입니다. 그런데 피드백을 시작하면 자신의 과거를 자랑하면서 구성원들의 자존감과 효능감을 손상시키는 리더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구성원들이 그런 리더와 함께 최선을 다하거나 그런 리더의 도움으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구성원의 행복감을 손상시키고 성장을 저해하는 것은 물론, 조직이 가진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없게 만드는 최악의 리더인 셈입니다.
좋은 관계(관계성)
인간은 관계 속의 존재입니다.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도, 잘 해내고 있다는 자신감도, 행복하다는 느낌도 관계 속에서 결정됩니다. 인사 고과 평가나 성과급처럼 수치로 환산하는 이른바 정량적인 평가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즉, 타인이 내게 보내는 언어적, 비언어적 메시지에 따라 결정됩니다. 출근해서 나를 바라보는 상사, 동료의 얼굴 표정에 따라 기분이 달라지는 이유입니다. 기분이 달라지는 정도가 아니라 위의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결정됩니다. 그렇기에 타인의 자율성을 훼손하고 효능감을 해치면 이미 좋은 관계는 물 건너간 셈입니다.
특히 타인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물론 모든 사람은 어느 정도 타인에게 영향력을 갖고 있기에 우리 모두가 해당합니다만), 예를 들면 조직의 리더가 구성원과 이렇게 관계를 맺는 것은 치명적입니다. 리더의 영향력이 자신이 가진 권한이나 능력이 아니라 구성원과의 관계 속에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대개 리더들은 합리적 설득을 좋아하지만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합리적이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비합리적 존재입니다. 인지부조화 이론의 창시자인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는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다”라고 말했습니다. 즉 구성원은 합리적 판단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리더와의 관계가 어떤가에 따라서 리더를 대할 때의 자신의 행동을 미리 결정해 놓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한다는 뜻입니다. 즉, 리더와의 관계가 좋으면 리더의 판단과 행동을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따라야 한다고 여기지만, 그렇지 않으면 리더의 어떤 합리적 선택도 흔쾌히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지요.
타인과의 모든 관계가 다 마찬가지입니다. “아내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에 절을 한다”는 속담은 인간의 이런 속성을 잘 나타내 줍니다. 그게 인간입니다. 그렇기에 타인의 자율성과 효능감을 해치는 피드백을 일삼아 타인과의 관계를 망가뜨려 놓고 문제가 생기면 그제야 합리적으로 설득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습니다. 내 가족에게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Stop Doing, Start Leading
이것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카네기 리더십 센터의 한국 지사인 데일 카네기 코리아가 주최하는 최고경영자 과정의 슬로건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강조합니다. “인간관계가 삶의 질을 좌우하듯, ‘인간경영리더십’이 경영 성과를 좌우한다.”
거의 모든 리더십 학자들과 조직경영 그루들이 강조하는 것입니다. 식상할 정도입니다. 리더들에게 반복해서 말합니다. “일을 멈추라, 그리고 사람을 돕는 일을 시작하라” 그러나 휴브리스의 함정에 빠진 많은 리더들이 열심히 일을 돌보고 사람을 돌보는 일을 소홀히 합니다. 성과는 낮고 자신의 리더들에게 영감을 받아 성장하는 구성원들은 드뭅니다. 가정과 학교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지만 성과는 만족스럽지 않고 행복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다시 생각해 보는 일에서부터 시작하면 어떨지요? 인간은 자율성, 유능감과 좋은 관계를 원하는 존재입니다. 마치 자동차의 연료처럼 이 세 가지의 에너지가 공급되어야 인간의 영혼은 기지개를 켜고 살아납니다.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이 인간의 본능에 상처를 주며 아무리 애를 써봐도 성과를 10% 높이기도 어렵습니다. 그 10%의 무게가 나와 함께 살아가는 소중한 존재들에게 비교나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는 우리가 해놓은 일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당신은 타인에게 자율성, 효능감, 좋은 관계를 선물하는 사람인가요? 그래서 타인을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 나아가 이 사회에 도움을 주고 있는 사람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