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어리석은 기자를 예찬함
그의 시그니처는 삼각대다. 행사가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사명(社名)이 적힌 조끼를 입고 삼각대를 든 그가 나타난다. 그는 중간에 자리를 떠나지도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행사의 전 과정을 카메라에 담는다. 언젠가 한 언론인에게 ‘취재란 행사를 스케치하는 일’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다른 사람이 ‘스케치’를 하는 동안 그는 ‘세밀화’를 그리는 셈이다.
그게 궁금하여 그에게 물은 적이 있다. “행사의 개요를 파악하면 기사를 쓰는 데 충분하지 않나요? 왜 그렇게 전 과정을 찍고 있습니까?”라고. 나의 어리석은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기사를 쓰는 것을 넘어 지역사회를 위한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싶어요.” 뒤통수를 크게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는 ‘공드린뉴스’의 최철규 대표기자다.
내가 만나본 이 지역의 언론인들은 모두 좋은 기사를 쓰고 싶어했다. 자신의 기사를 통해 타인과 사회에 기여하는 꿈을 꾸고 있었다. 아마도 언론계에 몸을 담고 있는 이라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그의 꿈은 그것을 한참 넘어서 있다. 그의 꿈은 원대하다. 그리고 무모하다. 심지어 엉뚱하기조차 하다. 탄탄하게 기반을 잡은 언론사도 힘든 일을 채 걸음마를 떼지도 않은 그가 해내겠다고?
그러나 난 그를 믿는다. 공자는 “그럴듯한 말과 표정을 하는 사람 중에 인(仁)한 사람이 드물다(巧言令色, 鮮矣仁)”고 했다. 농담을 덧붙이자면 공자가 다시 살아난다면 언론인이라는 직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공자도 그만큼은 좋아했을 것 같다. 그는 말이 별로 없다. 어쩌다 하는 말도 질박하다. 핵심만 말하지 불필요한 말을 덧붙이지 않는다. 언어를 핵심 도구로 삼는 언론인으로서는 부족한 자질인지로 모르겠다. 그러나 핵심만 던져놓고 굳이 설명을 더하지 않는 그의 태도에서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자신을 증명하려는 그의 의지가 느껴진다. 그렇기에 믿음이 간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 했다. 아마도 그는 산을 옮길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그가 옮겨놓을 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산을 옮기려는 그의 목표, 그리고 그 실천의 과정이다. 그것은 자신과 타인, 그리고 우리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될 것이다. 그 영향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인지라 자신의 공을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조차 높다. 그 무모하고 어리석은 일에 스스로 발을 담그고, 매일 다가오는 좌절의 장애물을 넘어 한 걸음, 또 한 걸음 앞으로 내딛어가는 그의 삶을 응원한다.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