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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임새 Feb 10. 2022

흰머리와 자존감 균형 1 - 나를 속박하는 것들

노화를 인정하는 과정, 고뇌



오늘도 거울을 보다 흠칫 놀라고 말았다. 매일 보다 보면 면역이 생길 만도 한데 노화의 징후를 인정하기 싫다는 낮은 한숨이 새어 나온다. 뿌리 염색을 안 한 지 육 개월. 귀 언저리부터 돋기 시작한 흰머리들은 어느새 군단을 이루고 당당히 정수리까지 세력을 넓혀가고 있었다. 그동안 화학약품의 힘을 빌려 감쪽같이 가려왔던 치부를 드러내야 할지, 보기 싫으면 가리면 될 간단한 문제에 힘을 빼는 건 아닌지 마음은 여전히 줄다리기 중이다.

그렇다. 아직 흰머리 이놈들을 자연스러운 몸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나는 당당히 내 결함을 드러낼 만큼 자존감이 높지 않으며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유지할 자신도 없다. 혼자 보는 거울 앞에서조차 이리 위축이 되니 말이다. 흰머리 고민은 언제쯤 완전히 비울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의 근간에는 몸, 특히 보이는 외모를 위해 정기적으로 하는 일들을 비우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중 한 가지가 흰머리 염색이다.

미용실에서 뿌리 염색을 하고 온 날이면 기분이 좋았다. 과학의 힘을 빌려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는 작업은 타인의 시선은 물론 나 자신을 만족시켰다. 눈속임 치트키처럼 정수리 검은 머리는 겉모습을 금새 2,3년 젊게 만들었다. 외출 준비의 귀찮음을 무릅쓰고서라도 미용실에서 만 원짜리 몇 장과 1시간만 투자하면 얻을 수 있는 매력적인 소득이었다. 외출을 자제하는 은둔생활이 이어지면서 아는 사람도 안 만나니 염색을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굳이 흰머리를 감출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 다다르자 당연히 해야 할 일이던 정기적인 외모관리는 상당히 동력을 잃었다. 사람들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겠지만 지인만 안 만난다면 염색은 당분간 유예할 수 있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제 남은 건 내가 스스로 만족해야 하는 문제였다. 나는 내 나이에 희끗한 머리를 매력적으로 여기지 않았다. 넓어진 흰머리 영역을 확인할 때마다 노화를 인정해야 하는 부담감을 느꼈다.





화장이라는 행위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화장 하는 것도 지우는 것도 귀찮아하던 나였다.

마스크 생활을 하면서 화장 횟수는 확연히 줄었고 얼굴에 바르던 화장품 종류를 하나씩 줄여나갔다. 마스카라, 아이섀도우, 볼터치, 베이스 순으로. 눈매를 또렷하게 만들어주고 낮은 코를 일 미리리터 라도 오똑하게 보여주기 위한 붓놀림을 내려놓았다. 피부 요철에 시멘트 미장하듯 매끈히 모공을 메우는 작업도 비웠다. 외출과 화장의 연결고리를 끊으면서 일종의 자유를 느꼈다. 비록 마스크로 가린 반쪽짜리 자유일지라도 화장이라는 가면 없이 집 밖을 나가는 경험은 짜릿했다. 필수라 여겼던 외모 꾸미기 일과는 어쩌면 필요 없던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나는 누구를 위해 얼굴에 분칠을 했을까. 화장하는 것이 예의 있는 모습이라고 여긴 기준은 온전한 내 가치관에서 나온 것일까. 거울을 마주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얻게 되는 것은 자기만족뿐이었을까.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외모는 어떤 정해진 모습이 정답일 수 없다. 나이에 따른 이상적인 미의 기준도 사회와 미디어가 만들어낸 부분이 크다고 생각한다. 외모를 꾸미면서 즐거움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의무감이나 타인의 시선에 휘둘린다면 내 자유가 침해받는 것이나 다름없다. 마스크를 쓰자 사람들의 시선을 덜 의식하게 되었고 화장을 벗는 자유를 누렸다. 미(美)를 추구하는 일과의 공간이 비워진 만큼 아름다움의 본질을 다시 생각할 여유까지 생겼다. 의식처럼 정기적으로 행하던 뿌리 염색에도 ‘일단정지’ 푯말이 걸렸다. 그 검은 잉크로 세월을 되돌리는 것이 나를 위한 일인지, 내가 바라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흰머리를 물들이는 일이 필요한지는 아직 고민 중이다. 멀지 않은 시점에 몸의 노화와 변화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나이를 드러내는 두려움에서 완전한 자유를 얻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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