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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임새 Feb 07. 2022

단순한 삶으로 방향 전환

엄마는 왜 내 책상 위 물건들을 태우려 했나


마당 쪽에서 뭔가 타는 냄새가 났다. 

내 공책, 소지품, 아끼는 잡동사니들을 마당 한복판에 모아 놓고 불씨를 붙인 이는 엄마다. 

슬리퍼도 못 신은 채 맨발로 뛰쳐나갔다. 

아직 멀쩡한 물건들을 내 쪽으로 끌어당기며 울먹이며 엄마에게 용서를 구했다. 

"잘못했어요.  이제 정리 잘할 거예요. "



어릴 때 집에 손님이 오면 가장 먼저 닫아야 할 문은 단연코 내 방이었다. 책과 소지품이 겹겹이 쌓여 있는 책상 위에서는 숙제를 시작하기도 전에 물건을 치우다가 진이 빠졌고  의자는 며칠에 걸쳐 입고 벗어둔 옷가지 무게에 뒤로 넘어가는 게 일상이었다. 이런 물건 언덕들은 내 방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당연하게도 나는 제발 정리하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늘 들어야 했다.  

잡동사니 소굴, 물건의 무덤 같은 내 방은 엄마의 골칫거리 일 순위였던 것 같다. 출입금지 푯말이라도 붙여 놓지 않으면 손님이 그 무시무시한 방문을 열까봐 엄마는 마음을 졸였을 것이다.  

엄마는 눈에 보이는 극약처방으로 정리 못하는 내 병을 고치려 물건에 불을 붙이기까지 했지만 쉽게 낫지 않았다. 사회인이 되어서도 나는 물건 무덤 같은 방에 살았다. 깔끔하게 정리된 잡지에 나오는 방처럼 꾸미고 싶었지만 뿌리 깊은 정리 못하는 병에 스스로 처방전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결혼을 하고는 일본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아쉽게도 남편도 정리 정돈과는 거리가 먼 인물로 물건이 발에 치이는 방에서도 태연하게 무언가에 집중하는 대범함을 지닌 사람이었다. 

나는 집안을 마음껏 어지럽힐 수 있었다. 날아드는 잔소리도 없고 내 물건만 필요할 때 찾으면 그만이었다. 손님이 오면 내 방문부터 닫았던 창피한 경험의 반복도 무엇 하나 효과가 없었다. 문제를 문제라 인식하지 못했던 시기였다. 



물건들이 뒤엉킨 방을 보며 어지르는 습관을 버리고 싶은 마음은 종종 꿈틀댔다.  정돈된 삶을 원하는 욕구와 현실과의 괴리에 집안을 둘러보다 갑자기 폭발하는 일도 있었다. 변화 욕구는 애써 외면하고 미루기와 게으름에 익숙한 자신을 놓아주지 못한 기간이 길었던 나에게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해야겠다고 생각한 결정적인 계기는 없었지만 바뀌고 싶다는 마음이 어떤 임계점에 도달했을 즈음이었을까. 일본에서는 끊고, 버리고, 떠난다는 뜻의 ‘단샤리’가 유행하고 곤도 마리에의 정리법 열풍이 불었다. 미니멀 라이프라는 생활방식에 안테나를 세웠다. 한국보다 작은 집에 맞는 수납, 정리를 미디어로 접할 기회가 많았고 정리에 관한 책을 한 권, 두 권 읽기 시작했다. 공식처럼 입력과 출력이 바로 도출되진 않아도 책의 한 페이지를 따라 하고 반복하면서 조금씩 결과물이 나왔다. 




평소에 관심 있던 다이어트 원리를 물건에도 적용하니 점점 빈 공간이 보였다. 들어오는 양보다 나가는 양이 많으면 사이즈가 줄어드는 이 단순한 진리가 정리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원리를 알고 적용해보니  정리도 탄력을 받는 것 같았다. 패밀리세일 행사장에서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뿌듯해하던 내 습성과 작별하고 집 안으로 유입되는 물건 양 줄이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물건이 줄어들고 공간에 여유가 생기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요구됐다. 물건 다이어트에도 가끔 요요현상이 나타나 쇼핑 욕구가 마구 솟기도 했지만 조금씩 붙여온 정리 근육 덕분에 쇼핑 빈도수는 점차 줄어들었다. 물건수가 줄어들면서 시간을 내 정리할 일거리도 줄어들었다.        



<궁극의 미니멀 라이프>저자 아즈마 가나코는 '한정된 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라는 발상이 소중하다. 자신의 형편에 맞지 않는 것은 갖지 않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나에게는 이미 충분히 많은 물건이 있었다. 소셜 미디어에서 본 욕망을 자극하는 새 물건을 손에 넣었지만 만족감이 금세 사라지는 경험도 했고, 원하던 물건을 가지면 따라올 것만 같은 행복감은 가짜라는 진실에도 눈을 뜨지 않았는가. 새 물건이라는 대체물로 채우려 했던 태도를 돌아보며 꼭 필요한 것인지 소유물을 점검하는 작업은 삶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물질적인 채움에서 비움으로 시선이 점차 옮겨갔고 이미 소유한 것에 가치를 두고 즐기는 법도 조금씩 익혔다. 갖고 있던 책들을 다시 읽고, 가진 옷을 깨끗이 손질해서 입고, 서랍 안에 잠자던 조각 천을 꺼내 소품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 누리는 삶에 마음이 이렇게 넉넉한데 새 것을 또 사고 사서 무엇을 채우고 싶었던 걸까. 



나는 이제 물건 무덤이 있는 방에서 살지 않는다. 의자에 겹겹이 옷을 걸어두지도 않으며 책상 위는 내일을 위해 정리하고 잠에 든다. 손님이 오셨을 때 빼꼼히 방문을 열어 두는 것도 가능하다. 완성된 미니멀 라이프라 자신 있게 말하진 못하지만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는, 방향만은 확실한 삶이라고 여기 이렇게 글로 박아둘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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