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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임새 Apr 13. 2022

정리출장을 갔습니다만

강적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물건이 주는 부담감에 짓눌린 경험을 하고 미니멀라이프에 눈을 뜬지 5년차. 비우고 치우고 정리하며 간결함을 추구하는 삶이 나에게 정답이니 다른이에게도 정답에 가까울거라 생각했다. 단순한 삶이 가져다주는 행복감을 퍼트리고 그게 맞다 주장하고 싶었다. 그런 나에게 반기를 드는 이들이 있었으니. 정리에 한 뼘 틈도 허락지 않는 맥시멀 한 생활방식으로도 하하호호 웃음이 있는 그들. 고군분투하며 물건을 비우고 줄여 애써 얻은 나의 미니멀 라이프는 강적을 만났다.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콤비. 그들이 내 강적이다. 



결혼초 시댁에 갔을 때 일이다. 아직 손님과 가족의 경계쯤 여기는 사람이 온다고 하니 주변을 치우셨을게 분명한데 내 시선은 어수선하고 협소한 거실과 낮은 탁자 위 쌓인 옷더미에 꽂혔다. 요리 준비를 도우러 들어간 주방은 그릇장이 차지한 폭 덕분에 두 명이 서있기에 비좁은 데다 어두컴컴하기까지 해 재료를 다듬기도 버거웠다. 



서랍장은 비워둔 채로 옷을 가지런히 개어 탁자 위에 층층이 쌓아둔 이유가 뭘까? 

밝은 전등으로 바꾸면 될 텐데 왜 안 바꾸실까? 불편하지 않으신가? 

수납장과 천정 사이를 메운 저 종이가방들 안에는 도대체 뭐가 들어있을까? 



친한 친구의 집이었다면 물음표 살인마가 돼 있을 나였지만 시댁에서는 속으로 의아함을 삭이는데 만족했다. 나도 정리를 잘하던 시절이 아니었는데도 대신 정리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시부모님도 나름의 생활방식이 있을 텐데 가족이랍시고 대신 치워드리겠다 함부로 말하긴 어려웠다. 매번 그런 욕구를 애써 누르며 어수선한 환경에도 적응이 되어갈 때 즈음이었다. 



어느 날 우리 집에 오신 시아버지가 입을 떼셨다. 

'너희 집은 물건이 적고 공간 여유가 많구나' 
'여보, 우리도 물건 좀 버릴까? 그 2층 박스 안에 물건 많잖아'

정리된 공간에 대한 부러움과 시어머니를 은근히 압박하는 멘트가 이어졌다.

시어머니는 쉬이 대답하지 않으셨다. 그 공기의 흐름을 읽지 못한 나는 이미 신이 나서 

'제가 출장 갈게요! 언제가 좋을까요?' 

'물건 정리해서 중고로 팔면 용돈도 좀 생기겠네요? 하하하' 호들갑을 떨었다. 

쌓아둔 정리 내공을 발휘할 절호의 기회다 싶었다. 



드디어 일하러 가는 날이 되었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일사분란히 물건을 분류하고 비운 뒤 말끔해진 방에서 칭찬받는 큰 그림을 그렸다. 십 수개의 박스가 쌓여있는 문제의 2층 방을 마주했다. 정복해야할 산을 눈앞에 둔듯 심호흡후 등반을 시작했다. 마스크와 비닐장갑을 아군 삼아 세월을 품은 물건위 회색빛 먼지를 떨어냈다. 골판지 상자를 하나씩 열어 안을 확인하니 오랫동안 사람 손을 안 탄듯한 옷가지와 잡동사니였다. 

시아버지와 남편에게 물어가며 호기롭게 물건들을 분류했고 오래전에 입으시던 옷도 비워지길 기대하며 시어머니의 최종 컨펌만을 기다렸다. 시아버지가 비우자고 한 물건들이 그녀 앞에 나란히 서기가 무섭게 가차 없이 비움 탈락 딱지가 붙었다. 모든 물건들은 그 방에 머무를 절대적인 이유(물건 분류에 참여했던 가족들은 모르는)가 숨겨져 있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기념으로 사 주신, 낡아보여도 가끔 들여다보는 액자등. 이유는 시어머니에게 분명하고도 견고했다. 나는 상대적인 잣대로 그녀의 추억을 함부로 비우려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처음이자 마지막 출장 정리는 실패로 끝났다. 상자에서 꺼냈던 물건들은 본래 있던 자리로 되돌려 놓았다. 정리 의뢰인 시아버지도 나에게도 허무한 결말이었다. 시어머니를 따라 시아버지도 1층으로 내려가셨다. 의견차이로 말이 오고가진 않는지 눈치센서를 작동시키고 정리출장의 결말을 숨죽여 기다린 몇 분뒤. 허허허 웃음소리가 들렸다. 예상밖의 전개였다. 시아버지는 크게 개의치 않으시는 듯 나와 남편에게도 내려와 맛있는 저녁이나 먹자고 하셨다. 그 시각이후 정리이야기는 오고가지 않았다. 저녁 식탁은 차려졌지만 내 미각은 이미 멈췄고 머릿속에는 다시 새로운 물음표가 떠다녔다.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는 의견이 맞지 않았지.

한쪽은 비우자고 했고 다른 한쪽은 비울 수 없다고 주장했어. 

그런데 저녁 식탁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고 즐거웠단 말이지?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무산된 정리 프로젝트 때문에 속상한 건 나뿐이었다. 




물건 수를 줄이면 가족 모두 행복해 질거라 생각했다. 그런 나는 몇 년간 물건을 비우면서 속으로는 남편을 욕했다.

'저 인간 때문에 내가 일이 많아져. 저 인간은 물건을 제자리에 두는 걸 왜 못할까?'

'시어머니는 저 인간한테 정리법을 왜 알려주지 않았을까?'

'시어머니 시아버지도 모르니까 안 알려줬겠지.'

혼자 자문자답을 하며 정리를 했다. 행복으로 가는 길에 불만과 원망을 초대했다.


나는 정리할수록 화가 났다. 정리를 못하는 남편을 타박했다. 나도 정리와 담쌓고 물건 무덤을 쌓아두던 인간이었는데 그새 잊고 아랫사람 가르치듯 남편을 훈계했다. 올챙이었던 과거는 까맣게 잊은 개구리가 되어있었다. 


'같이 정리할까? 도와줄게' 한 마디 살갑게 건네는 대신 

'이런 식으로 안 치우면 책상 중고 앱에 올릴 거야. 빨리 정리해!'

협박과 명령으로 일갈했다.

물건이 쌓여있고 넘쳐나는 상태가 편안했던 예전의 나였다면 굳이 남편을 미워할 일이 없지 않았을까? 의문이 들었다. 쓸데없는 물건이 넘쳐나도 사이좋은 시부모님처럼.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고 맞추면서 살아가는게 물건수를 줄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아니었을까. 



내 강적들은 넘치는 물건들과 휴전상태로도 충분히 행복한 것 같다. 시아버지는 미니멀한 집보다 시어머니와 화목이 더 중요하고 시어머니는 물건에 담긴 추억이 더 중요하니 그들에게 미니멀라이프는 더이상 설득력이 없다. 라이프스타일과 행복은 관련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내가 즐거운 길을 가려고 한다. 남편도 느릿한 걸음이지만 미니멀라이프라는 방향에는 동의했으니.



조금 속도를 늦추기로 했다. 이미 기준점이 달라진 나와 남편의 균형을 맞추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나 스스로를 바꾸는데도 5년 이상 걸렸으니 앞으로 5년 정도 남편과 보조를 맞추면 비슷해질까. 5년으로 부족하더라도

적어도 내가 부모님 나이대가 되면 정리하는 문제로 화를 내진 않을 거 같다. 30년 이상 남은 걸 알고 나니 이제야 마음에 여유가 솟는다.

 


이제는 시댁에 가도 물건 정리를 강요하거나 도와드린다고 먼저 나서지 않는다. 내 강적들은 관성의 흐름대로 사는 게 더 편하고 행복한 것 같다. 정리 출장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호출되지 않았다. 

덧붙이자면 주방 전등은 시아버지가 밝은 색으로 교체했다. 시어머니 컨펌이 떨어지자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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