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하기 전에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동네 사람들이 안타까워할 정도로 슬프게 울었다지만 할머니의 죽음이 기억에서 증발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후, 십 년쯤 뒤에 내가 군 복무 중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리고 내 나이 사십 중반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뇌 질환으로 오랜 투병생활을 하셨지만 뒷바라지에 지친 어머니의 고생을 덜어드리고 당신도 긴 고통에서 해방되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다만 직장이 바쁘다는 핑계로 좀 더 정성껏 보살펴드리지 못한 죄송스러움이 목 줄기를 아프게 했다.
그러나 이미 준비되어 온 긴 시간들이 완충 작용을 하여 충격이 그리 크지(?) 않았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아마 예고된 이별의 통로에서 모두가 오랜 시간 끌려 다녀 지쳐서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은 영원한 이별이라는 처절한 슬픔을 남기지만 남아있는 이들의 일상은 떠난 이와 함께했던 기억을 천천히 밀어내며 자연스럽게 평상으로 회귀한다. 남겨진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단호한 현실을 비켜갈 수 없기 때문이다. 나도 언젠가 아내에게서 또는 아내는 내게서 떠날 것이라는 걸 상상해보면 가슴부터 아파오면서 눈물이 괸다. 내가 먼저 떠나면 누가 아내를 돌보아 줄 것인가 하는 걱정과 아내가 먼저 떠나면 내가 홀로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서이다.
그러나 억장이 무너질 듯 슬퍼하던 이별의 순간이 지나면 산 사람은 떠난 사람을 하루에 한 걸음씩 기억에서 밀어내며 일상 속으로 매몰되어 살아갈 텐데 말이다.
몇 년 전 살을 베어갈 듯이 추웠던 겨울, 가게 문을 닫고 아내와 돌아오는 길에 음주운전자의 트럭에 받히는 대형 교통사고를 당했다. 어디가 터졌는지 얼굴은 온통 피를 뒤집어쓰고 몸은 산 생선 튀듯이 길바닥에서 퍼덕이는 나를 뉘이면서 “괜찮을 것이다”라고 외치는 응급요원의 다급한 소리만 희미해져 가는 정신을 휘어 감았다. 그 순간 “아, 내가 지금 가족을 두고 떠나고 있구나, 아직은 아닌데…”하며 떠남을 예감하였지만 아프다거나 두려운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만 혼자 남게 될 딸아이만 눈앞으로 혼미해져 가는 머릿속으로 쳐들어 왔다.
“저 아이를 두고 내가 가면 어떻게 하나”라는 안타까운 생각만이 찢어진 살갗의 아픔을 넘어 죽음의 두려움조차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병원으로 실려가는 앰뷸런스 안에서 응급요원의 다급한 무전기 소리만큼이나 아내가 살아야만 딸이 함께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아내의 이름을 끊임없이 불러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다행히도 예정된 이별이 아니라서 둬 달의 시간이 지난 후에 원상으로 회복되었지만 생(生)은 내일이 담보되지 않았다는 것을 불행 중 다행한(?) 사고를 통하여 좀 더 진지하게 생각게 하는 사건이었다.
어느덧 나이가 오십 등선을 넘어 흰머리가 잡초처럼 솟아나고 빈약해져 가는 체력은 거부할 수 없는 신이 내린 섭리라 한다지만, 허겁지겁 사느라 언제 가고 오는지도 모르게 달려가는 계절의 뒷모습을 좇다 보면 남아있는 시간들을 내다볼 겨를도 없게 된다. 이제 오십의 잔등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싶다.
살아온 세월을 뒤돌아보면 정신없이 사느라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쳐놓았던 꿈이 기약할 수 없는 나머지 세월을 슬프게 내다보고 있는 듯하다. 나이 오십에 무슨 꿈이 있겠느냐고 하겠지만 살아있다는 것은 꿈이 있을 때만 존재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룰 꿈이 있다면 내일에 희망이 있고 살아 있음에 가치를 부여하고 싶다. 존재가 아름다운 것은 희망이 있기 때문이며 꿈은 이루지 못하는 것보다 이룰 꿈을 갖지 못한 것이 더욱 불행한 삶이라 했던 말을 생각 키워낸다. 아직도 올해는 5개월이나 남았다. 더 늦기 전에 년 초에 나 자신과 스스로 약속했던 작은 소망들을 다시 들춰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