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지나쳤던 간판의 글씨가 예술이 되는 곳.
짧았지만 좋았던 전시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배달의 민족 우아한 형제들이 야심차게 준비한 《을지로체: 도시와 글자》가 어제로 막을 내렸습니다. 《을지로체: 도시와 글자》는 최근 ‘힙지로’로 불리며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을지로 한복판에 을지로의 간판 장인들을 예술가로 재조명한 전시입니다. 한글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알리기 위하여 매년 한글 관련 프로젝트를 실시해온 우아한 형제들은 올해는 을지로라는 공간에 주목하여, 을지로 간판 장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전시 《을지로체: 도시와 글자》 전시를 개최하였습니다. 해당 전시는 서울시 중구 을지로4가에 위치한 ‘엔에이(n/a) 갤러리’에서 10월 1일부터 10월 13일까지 13일간 진행되었습니다.
주로 현대미술 전시에 관심을 가지고 글을 써온 필자의 입장에서 기업이 주최한 작은 전시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은 조금은 특별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혹자들은 이 전시를 “예술”을 전시하는 미술관 전시와 동등하게 취급하는 듯한 뉘앙스에 불쾌함을 표할지도 모르겠으나, 필자 개인은 이 전시는 예술에 관하여 생각해볼 만한 질문거리를 던지는 좋은 전시라 여겼습니다.
갤러리를 찾아가기 위하여 을지로역에서 내려 걷기 시작한다면, 을지로 일대를 둘러싸고 펼쳐진 을씨년스러운 주변의 풍경들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시장에 들어선 순간 을지로 간판들은 예술작품이 되어 관람자들을 반겨줍니다. 한걸음 한걸음 전시장을 거닐 때면, 조금은 불쾌하고, 그리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던 풍경들이 무수한 장인들의 손길을 거쳐 완성된 예술의 거리였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됩니다.
《을지로체: 도시와 글자》는 “예술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촉발한다는 점에서 좋은 전시입니다. 전시는 우리가 일상의 영역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간판 장인들의 손글씨를 예술의 영역에서 다룹니다. 사람들은 주로 육체노동자들의 노동은 예술가들의 고상한 예술행위와는 동떨어진 것으로 여깁니다. 요즘같이 기술이 발전한 시대에 육체 노동자들의 노동이 ‘발전된’ 혹은 ‘선진화된’ 문물과 대척점을 이루기 때문에 더욱이 그러합니다. 그러나 우아한 형제들이 기획한 이번 프로젝트는 사라져 가는 을지로 간판 노동자들의 삶을 “예술”의 영역으로 승화하며 예술의 외연을 확장시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과연 예술이란 무엇일까요.”
작고 협소한 공간에 자리 잡은 까닭에 전시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단 전시장에 발을 들여다 놓았다면, 을지로를 바라보는 당신의 시선은 명백하게 뒤바뀔 것입니다. 낙후된 지역의 상징물처럼 여겨졌던 손글씨 간판들은 장인들의 예술작품이 되고, 미처 개발되지 못한 곳으로 여겨졌던 을지로라는 공간은 그들 나름의 삶과 예술이 뒤얽힌 공간으로 살아 숨쉬기 때문입니다.
물론 필자가 녹록지 않은 노동자들의 인생과, 그들의 삶의 애환이 담긴 곳을 그저 ‘예술적’ 혹은 ‘감상적’으로만 포장하는 종류의 행위에 무조건적인 박수를 보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전시는 그들의 밥벌이를 보장해주진 못할지라도, 그들의 삶과 노동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균열을 가하고, 전환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보내고 싶습니다. 예술이 의미를 갖는 지점은 바로 그곳에 있을 테니까요.
작은 변화라 하더라도, 의식이 변한다는 것은 우리가 말하는 ‘진정한 변화’를 향해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필수 조건입니다. 앞으로도 대중들이 즐길 수 있는 재밌고 유쾌한, 그러나 “예술적인” 프로젝트들이 더 많이 나오기를 기대해봅니다.
*사진 참고: 우아한 형제들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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