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미 Sep 22. 2020

마음도 빨래가 필요한 이유

셔츠에 묻은 얼룩을 제거하듯, 마음에 묻은 말의 얼룩도 제거해야 합니다.


  

  말은 보이지 않습니다. 목소리는 공기의 파동을 통하여 전달이 되고, 이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내가 한 말은 상대의 마음에 묻게 됩니다. 점심에 먹던 김치찌개가 셔츠 깃에 묻어 있듯, 말 역시 상대에게 묻습니다. 그저 보이지 않을 뿐이죠. 말의 얼룩을 깨끗이 빨기 전까지는 그 자리에 그대로 묻어 있습니다.   


 점심에 먹던 김치찌개가 셔츠 깃에 묻어 있는 것처럼, 말 역시 상대에게 묻습니다. Ⓒ윤경희, 중앙일보




    오랫동안 어머니의 차가운 눈길과 무관심을 견뎌야 했던 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한 번은 그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칭찬을 받고 신이 나서 집에 왔는데, 엄마는 칭찬을 받았다는 내 이야기를 듣고는 되려 꾸짖거나 잘난 척을 한다는 말을 했다. 단 한 번도 내게 칭찬이나 인정의 말을 해주지 않았다”는 것이 말의 요지였습니다. 선천적으로 경미한 장애를 가지고 있었던 친구의 어머님은 혹여나 자신의 딸이 자신을 무시하진 않을까 싶은 조바심에 그렇게 행동하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에게는 가장 가까운 타인이 쏟아낸 거친 말들이 마음에 아주 오랫동안 묻어 있었죠. 어떤 일을 해도 인정받고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는 생각은 그녀의 마음에 뿌리 깊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중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어머니로부터 들은 차가운 말과 시선은 그 친구의 마음 한편에서 그녀를 아프게 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타인이 쏟아낸 거친 말들은 오랫동안 마음 한편에 묻어 있습니다.


    



        따뜻한 미소 혹은 인정하는 말 한마디가 일상이 되기 어려운 가정에서 자란 친구들은 흔히 무의식 중에 자신은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에 묻어 있는 부정적인 말이 그들의 마음과 생각과 몸에 그대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자신의 삶에 일어나는 선택을 할 때, “나는 가치가 없다”라는 생각을 전제로 하고 선택을 하게 됩니다. 문제는 “나는 기준에 도달할 수 없는 사람이야” 혹은 “나는 즐거울 자격이 없는 사람이야”라는 무의식 중의 생각은 말 그대로 ‘무의식 중’에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언어화되거나 출력이 되지 않습니다. 이 경우는 마음의 깊은 곳에서는 낡고 여기저기 구멍이 나고 잔반이 묻어 있는 더러운 옷을 입은 자아상을 가지고 살아가는데도 이 얼룩들이 머릿속으로 출력되지 않기 때문에 해결법을 전혀 모르는 상태와 같습니다.



따뜻한 미소 혹은 인정하는 말 한마디가 일상이 되기 어려운 가정에서 자란 친구들은  무의식 중에 자신은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Lo Cole, The Guardian




    만약 아침에 눈을 떴는데, 심장이 갑갑하다면, 분명 날씨가 좋은데 좀처럼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갈 힘이 나지 않는다면,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한 일을 하는데도 한편에 우울한 기분이 가시질 않는다면, 내 마음에 묻는 얼룩을 마주하는 건 어떨까요. 옷에 얼룩이 졌을 때, 그 얼룩을 바라보지 않는다고 해서 옷이 깨끗해지는 것은 아니듯, 마음도 마찬가지니까요. 낡은 옷은 새 옷으로 바꾸어야 하고, 구멍은 꿰매어야 하고, 얼룩은 깨끗이 빨아내야 하죠. 



낡은 옷은 새 옷으로 바꾸어야 하고, 구멍은 꿰매어야 하고, 얼룩은 깨끗이 빨아내야 하죠. ©️Laura Vicente Mesonero



    다른 사람이 내게 좋은 말을 해주지 않았다고, 나는 그렇게 자라지 못했다고 탓하지 않아도 돼요. 오히려 그런 생각은 내 마음을 좀먹을 뿐이니까요. 그저 나를 아프게 한 말들을 가만히 꺼내서 털어버리고, 내가 나 스스로를 다독이고, 내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어줄 말들을 내 마음의 옷에 가만히 얹어주면 됩니다. 마음을 깨끗이 빨아 따사로운 햇살에 말려두고 싶다면, 내가 나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 나를 위하여 말하기 시작하면 됩니다.


 오늘 퇴근 후에는 오롯이 내 마음을 깨끗하며 시간을 보내는 건 어떨까요. 소매를 걷어붙이고,  빨래 바구니에 오래된 얼룩이 가득 묻은 마음의 옷자락들을 거침없이 담아 거품을 내고, 따사로운 햇살과 시원한 바람 아래 바싹 말리는 겁니다. 그리고 향기롭고 반질반질 윤이 나는 말들로 마음의 옷을 다듬어봅시다. 준비, 되셨나요.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