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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 Feb 03. 2023

영유 출신의 아이가 대치동 테스트를 떨어지던 진짜 이유

분명 부족함 없는 아이인데, 시험만 보면 이상한 점수를 받아 온다. 


7세 Y의 이야기.


초등 대치동 학원 레벨 테스트가 갈수록 과열이 되는 듯하다. 재밌게도 학원이 과열되는 만큼 아이들의 수준도 몇 해 전 같은 나이대 아이들보다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들의 실력은 점점 더 좋아지는데, 우리 아이들의 행복지수도 오르고 있는지 궁금하다. 


지난가을 레벨테스트 라이팅 준비로 Y를 만났다. Y는 7세였고, 첫 만남에서부터 엄마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을 정도로 부모님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친구였다. Y는 똑똑했다. 수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영어로 진행되었고,  아이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영어로 표현하는데 큰 무리가 없었다. 어머님은 Y가 라이팅이 가장 약하기 때문에 따로 나를 고용하셨다고 하셨지만 몇 차례의 레벨테스트를 거듭한 후 나는 곧 아이의 문제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Y의 첫 시험은 소위 말하는 '빅쓰리' 학원 중 한 곳이었다. 아이의 시험 결과가 좀 특이했다. 어머님은 결과지를 카톡으로 보내오셨다. Y는 시험 에세이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던 친구였으나 수업을 한 이후 다른 아이들의 라이팅 평균 점수보다 두 배가 넘는 점수를 얻을 정도로 큰 발전을 보였다.  수업 이전에 봤던 시험에서는 한 문단을 겨우 쓰고 나올 정도였으니, 단시간 안에 아이에게서 보인 발전에 나 역시 놀라웠다. 


그러나 결과는 광탈이었다. 문제는 Y가 리딩에서 너무 심하게 낮은 점수를 얻은 것이었다. 함께 라이팅을 공부하며 아이의 실력을 익히 알았던 내 입장에서는 조금은 의문이 드는 결과였다. 


결국 시험 결과가 나왔던 다음 수업이 시작되기 전, 어머님께 Y가 리딩 문제를 푸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말씀을 드려 한차례 리딩 수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수업을 하며, Y 안에 있는 두려움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잘 해내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들기 시작하면 Y는 리딩 지문을 읽지도 않았고, 아주 빠른 속도로 답만 체크했다.  그러니 리딩 결과가 터무니없이 나올 법도 했던 것이다. 


Y에게는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이 과도했다. 그리고 그 막중한 부담감이 지성의 활동을 방해하는 듯 보였다. Y는 그리 어렵지 않은 리딩 지문 앞에서도 여유롭게 생각하고 이해하는 기능이 마비된 것처럼 행동했다. 어머님은 아이가 제대로 된 리딩 스킬을 배우지 못한 탓이라고 하셨으나, 내가 보기에 근원적인 문제는 인풋에 있는 게 아니었다. 아이의 마음에 불쑥 올라오는 잘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이 실질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근본이었다. 



내가 보기에 근원적인 문제는 인풋에 있는 게 아니었다. 아이의 마음에 잘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이 실질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근본이었다.


이후 수업 시간 Y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틀려도 괜찮아"가 되었다. 틀려도 괜찮으니까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만 하면 된다고. 잘 모르는 건 선생님에게 물어보면 도와주겠다고 했다. 여전히 Y는 글을 읽어내기 급급하고, 모르겠는 단어들이 많으면 생각하지 않고 급하게 답을 체크하고 이제 그만하고 싶다는 말을 던진다. 그럴 때면, 또다시 말한다. 잘하지 않아도 돼.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선생님이 도와줄게_ 



결국 공부를 하는 문제도 공부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임을 절감한다. 너무 어릴 때부터 시작한 과도한 공부는 패배감, 두려움, 그리고 수치심 따위의 감정들을 남기고, 결국 일련의 과정들은 공부도 싫어지고, 자기 자신도 싫어지게 만드는 듯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문제들이 그렇듯,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이의 마음에 있다. 



Y가 어딘가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불안과 압박을 느끼는 모습을 볼 때면 늘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어머님도 진심으로 Y를 사랑하고 있고, 아이에게 잘 대해주고 싶으나, 스스로에게 늘 높은 기준을 제시하며 살아온 어머님 입장에서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게 어렵구나- 싶은 마음이 든다. 



그래서 대부분의 문제들이 그렇듯,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이의 마음에 있다.


Y가 텍스트를 마주하고도 나름대로 생각을 하는 아이가 될 수 있도록, 어머님이 한글책을 읽어주시고, Y와 책을 읽으며 지내는 시간을 늘려보시는 건 어떻겠냐고 물었다. Y 안에 있는 활자나 시험 자체에 대한 불안이 자연스럽게 사그라들도록, 그리고 글을 읽고 생각하는 건 그렇게 무섭고 불안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아가도록 말이다. 


Y의 영어에는 큰 부족함이 없다. 오히려 Y는 영어를 잘한다. 그러나 Y가 계속 시험에 떨어지는 이유를 한 가지만 이야기해 보라고 한다면, 나는 그저 아이의 두려움에 대하여 말할 것이다. 글에 대하여, 문제에 대하여, 시험에 대하여 두려움만 없는 아이가 되기만 해도 아이는 어딜 가나 충분한 아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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