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만든 이미지, 촉감으로 태어난 직물들

ddp, 미나 페르호넨 디자인 여정

by 희희

'미나 페르호넨 디자인 여정' 전시는 강연을 듣자고 갔던 ddp에 갔다가 들르게 되었다. 처음에 전시장에 들어서서 걸린 페브릭을 볼 때도, 또 서있는 마네킹에 입혀진 옷을 볼 때도 별다른 생각은 없었다. 내 옆에 있던 남자 친구 두 명이 아줌마패션이네라고 말할 때도 그 친구들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은 못했다. 그냥 강연 시간에 맞추려면 서둘러서 봐야겠다고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IMG_6210.HEIC

그런데 친구들아 너희가 틀린 것 같다. 그렇게 쉽게 단언할 수 없는 가치가 이 옷 안에 있었던 거 같다. 옷은 세월 속에서 조금은 유행을 지나버리고 바랜 것처럼 보였지만 그 안에는 원형의 가치가 있다는 걸 나도 바로 못 알아봤었다. 조금은 부끄러워졌다. 일단은 프리핸드로 그려진 tambourine에 배열된 불규칙한 도트 25개에서 놀라기 시작했다. 시작은 평범한 듯 보일 수도 있지만 집요하게 계속했다. 다른 페브릭에, 다른 매체(가방, 옷, 신발, 스테이셔너리, 그릇 등)에, 다른 색에 계속해서 적용하고 또 적용한다. 그런데 이것들이 자기 반복적이라기보다는 적절하게 보인다. 대단하다.

크기와 모양이 각기 다른 25개의 작은 접이 모여 원을 그리는 자수 패턴 tambourine.

2000-2001년 처음 선보인 이후 옷뿐만 아니라 가구나 식기 등 다양한 제품으로 확장되어 어느새 브랜드를 대표하는 텍스타일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언뜻 보면 질서 정연하게 나열된 탬버린의 자수이지만 원의 형태나 점의 간격은 일정하지 않으며 자수의 부풀기와 형태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균일하지 않은 각각의 입자들이 만들어 내는 개성을 기계로 놓은 자수로 표현하는 것이 당시에는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직물을 디자인하기 위해서 그린 원화는 기초시각디자인 수업을 떠올리게 했다. 기초시각디자인 수업의 답안 같은 시도들이 모조리 들어있었다. 이거 봐라 얘들아, 이렇게 한번 해봤으면 우리가 일러스트레이터에서 오브젝트만 만지작 거릴 때 못 봤던 뭔가를 찾았을 거 같다. 질감이 있는 스케치가 패턴이 되고, 다시 또 다른 질감의 패브릭이 되는 과정은 정말로 재미있었다. 나도 이런 작업을 진작에 더 해볼걸!

IMG_6241.HEIC
IMG_6280.HEIC

칠하고, 그리고 오리고 붙이고 이런 작업들이 주는 재미를 그간 잊고 살았다가 최근에 다시 해봤는데 아주 조금 하고도 손으로 뭘 했다는 것을 내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색을 낼 수가 없었는데, 정말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해보되 집요하게 하고 지속적으로 한다. 뭐든 이렇게 하면 뭐라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부끄럽기 짝이 없는 중생의 관람 후기다.

혼자 흥분해서 이리저리 바쁘게 돌아보면서 뭔가 너무 좋아 정말 좋다 생각하는데 그 좋음의 원천을 잘 설명한 글인 눈에 띄었다. "손의 흔적은 기계적인 작업과 달리, 호흡과 의식으로 눈과 손, 마음의 떨림을 주워 담은 것이다." 그 호흡, 눈, 손, 마음이 느껴져서 좋았다. 그리고 그것을 우연적으로 발견하고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고민과 다듬기와 디테일에서의 타협하지 않음을 통해서 손의 흔적이 주는 감동을 최대한 끌어올리려는 노력이 나를, 혹은 다른 관람객을 소비자를 감동시켰을 것이다.





스탬프, 물감, 종이조각, 찢어진 테이프, 점토, 크레용, 찢은 색지 등의 재료를 보는데 왠지 반갑고, 또 존경스럽기도 했다. 머릿속의 주제나 아이디어를 손으로 만들어내는 감각은 지속해서 만지고 또 만져서 유지하지 않으면 금세 닳아버릴 것 같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계속해서 시도하는 의미는 금세 휘발된 버릴 감각 때문이 아니라 지속하는 마음과 정신의 에너지를 통해서 진짜 집중을 경험해서 만날 수 있는 경지와 만나는 순간을 위한 게 아닌가 싶었다.

IMG_6321.HEIC

나도 그렇게 되기를 빈다. 또 나의 선배도, 후배도 그 경지에서 만나길 빌어보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그래픽 디자이너의 무기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