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8세
우리는 두 달 뒤면 서른이 된다.
1)
최근에 임이 한국에서 놀러 왔었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는 아니었다. 한국에 들어갈 때면 바쁜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꼭 시간을 내주어 서로 사는 얘기를 주고받곤 했으니까. 임과 나는 한국에 있는 광고 동아리에서 만난 사이였고 술을 좋아하고 광고를 좋아하던 우리는 마음이 잘 맞아서 금세 가까워졌었다. 그로부터 시간은 꽤나 흘렀지만, 만날 때면 항상 서로가 알고 있는 각자의 찌질했던 과거사나 지우고 싶은 기억같은 것들을 어떻게 잊지도 않고 끄집어내며 짓궃게 놀리는게 일상인. 그만큼 편하고 가까운 사이다. 그런 임이 이번에 결혼을 한다. 언제까지고 자유로운 영혼일 줄 알았던 임이 결혼을 한다니. 솔직히 말하자면, 임이 결혼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 이었다. 왜냐면 부리부리한 눈매를 가진 임은 그 눈매처럼 상당히 까칠한 성격을 지녀서 평소 언행이 부드러운 타입은 결코 아니었고, 또한 독립적인 성향이 매우 짙었으며, 자신과 타인의 구별이 명확했다. 게다가 노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는 성격이었으니까. 그러니 타인의 삶이 나에게로 온전히 들어오고 또 받아들여야 하는 결혼과 같은 일들은 임에게 상당히 거리가 있다고 생각 했었다. 하지만 그런 임이 내년 초에 결혼할 예정이라며 배시시 웃는 그 얼굴은 지금껏 봤던 임의 모습중에 가장 부드럽고 행복해 보여서, 외로움인지 서운함인지 모를 애매한 감정과 함께 임이 불쑥 낯설게 느껴졌다. 그의 변화가 나만 여전히 제자리인 것처럼 느껴지게 해서, 평소 같으면 기분 나쁘니까 웃지 말라고 시비를 걸었겠지만 그때만큼은 진심을 담아 축하를 건넸다. 물론 그 뒤로 어울리지도 않게 축하한다는 말 따위를 했다고 같이 지낸 삼일 내내 놀림을 당해야만 했으며, 사람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고, 다시는 저 인간에게 축하한다는 말 따위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기는 했지만.
2)
열일곱 살 때 나는 박의 집에서 육 개월이나 같이 지냈었다. 당시 어려웠던 내 사정을 듣고 딱하게 여기셨던 박의 어머님이 베푸신 배려였다. 덕분에 나는 작은 골방에서 혼자 지내지 않고 어머님이 차려주신 따뜻한 밥을 먹으며 박과 함께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올해 초, 그런 박의 어머님이 오랜 투병 끝에 돌아가셨다. 아름답다는 단어로 밖에 표현하지 못할 만큼 성품이 인자하셔서 주변 사람들을 끝없이 보살펴 주셨던 박의 어머님답게, 찾아간 빈소에는 발 디딜 틈도 없이 조문객들로 북적였다. 조문을 드리고 상주가 된 친구에게 애도를 표하고 나자, 박은 씁쓸하게 웃으며 담배나 한 대 피우고 오자고 내게 말했다. 서로의 삶이 너무나도 바쁘고 거리도 멀어서 거진 이 년만에 만나는 박이었다. 그런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은 산더미 같았지만, 장례식장의 주차장 구석에서 나는 박에게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어서 그의 손을 꼭 붙잡고만 있었다. 우리는 때로 살면서 타인에게 괜찮냐고, 다 괜찮다고, 또는 괜찮아질 거라는 위로조차 조롱처럼 느껴질까봐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순간들을 삶에서 마주하곤 한다. 박과 나는 그런 순간에 있었다. 난생 처음 마주하는 그런 순간에 어쩔줄 몰라하는 나 대신에 박은 담배를 길게 태우면서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투병을 오랫동안 하셨으니 언젠간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고. 괜찮다고, 오히려 편해지셨을 거라고 하면서. 어떤 강렬한 슬픔은 오직 자신만이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으며, 자기 자신만이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수 있다는 것을 박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발인 날까지 박은 수시로 방문하는 조문객들과 함께 수시로 담배를 태우러 밖으로 나갔다. 그는 사실 그 전까지 단 한 번도 담배를 피워본 적이 없었다. 나는 한 발자욱쯤 떨어져서, 연기와 함께 점점 단단해지는 박의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다가 돌아왔다.
3)
P는 팔 년이나 만난 남자친구와 기나긴 권태기 끝에 헤어졌다. 종종 P에게 그녀의 연애사를 듣곤 했던 나는 P가 하루빨리 그 남자와 관계를 정리하기를 바랬고, P 역시 내 주장에 동의했으나, 막상 그 남자와 헤어진 P는 생각보다 크게 무너져 버렸다. P에게 그는 첫 번째 연애였으며, 이십 대의 전체를 함께 한, 감히 엄두도 못 낼 만큼 오랜 기간을 만났던 연인 이었으니, P의 슬픔이 얼마나 깊을지는 대충 짐작을 하였으나, 그렇다고 남자와 헤어졌다고 엉엉 우는 P의 모습은 꽤나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나에게 P는 남녀를 막론하고 내가 알고있는 사람중 가장 강하고 체계적인 사람이었다. P는 대학생 때부터 특유의 카리스마로 팀원들을 때로는 거세고 때로는 부드럽게 핸들링하며 유명한 공모전은 모조리 다 휩쓸어서 공모전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있었으며, 그녀는 그 기세로 꽤나 유명한 광고 회사에 성공적으로 취업을 하며 야무진 일처리로 최연소 대리 승진을 한, 그 업계에서는 꽤나 유명한 친구였다. 거칠고 짖궃은 남자 선배들도 그녀에게는 함부로 말하지 못했다. 나는 진심으로 P가 하루빨리 괜찮아져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바랐다. 왜냐면 지난봄 내내 시도 때도 없는 P의 전화에 시달려야만 했으니까.
P는 아주 오래전부터 일찍 결혼을 하고 싶어 했다. 물론 결혼은 현실적으로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보니, 연인이 있다고 해서 그녀는 당장 결혼을 할 수 없었다. 결혼까지 생각하던 그 남자와 헤어진 후에 P는 자신이 어떻게 또 다른 사람을 만나고, 그만큼의 세월은 아니더라도 몇 년의 시간을 또 함께 보내며, 최종적으로 서로에게 확신을 가지고 결혼을 할 수 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자신은 결혼을 할 수 없을 것만 같다고,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P는 똑 부러지는 성격처럼 자신의 밥그릇은 알아서 챙기는 타입이어서, 현재는 금세 훨씬 더 괜찮은 사람과 그녀의 인생에 두 번째 연애를 시작했다. 물론 P의 속마음이야 알 수 없지만, SNS에 종종 업데이트되는 사진들에서 지난 연애보다 훨씬 밝고 환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충분히 행복해 보인다. P를 보면 알 수 있다. 종종 우리는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을 것만 같지만, 결국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것을.
어느덧 시월이다. 날씨는 확연히 추워졌고, 밤은 길어졌으며, 하늘은 더욱 높고 깊어졌다. 가을, 내 이십 대의 마지막 가을이다. 매일 아침 떠오르는 해가 저녁이 되면 결국 저물듯이, 다사다난 했던 올 한 해도 결국 스러지듯 저물어가고 있다. 지난 해의 나는 나의 스물아홉이 무언가 특별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분명 이십 대의 마지막 해는 지난 해들과 뭔가 다르지 않을까하고. 하지만 아니었다. 분명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막상 돌이켜보면 결국 지난 날들과 똑같이 흔들리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일들을 반복해 왔을 뿐이다. 그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아홉 수의 해를 힘겹게 넘기고 있는 모든 스물아홉 살들에게 공통적인 일일 것이다.
그러니 더이상 나는 나의 삼십 대가 특별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특별하게 만들려고 애쓰고 싶지도 않다. 여전히 가벼운 것에 무너지기도 할 것이고, 무너진 나를 간신히 다시 세우기도 하며 보내게 될 것이다. 다만 이십 대와는 분명히 다른 식으로 흘러가기는 할 것이라 믿는다. 지나고 보니 아홉수라는 게 사실 별건 없었다. 올해 스물아홉의 누군가는 기나긴 방황 끝에 정착을 했고, 누군가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던 사람을 떠나보냈으며, 누군가는 새롭게 시작을 한 것처럼, 단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는 것일 뿐이었다. 물론 이것들은 스물아홉 살들만 겪는 일도 아니고, 전체적으로 보면 특별한 경험이라고 말할 수 없다. 다만 지난 삶들 보다는 조금 더 깊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있다. 이십 대와 삼십 대의 전환기에 맞춰서, 개인의 인생에서는 커다란 전환점들과 마주하며 겪은 일들은 우리의 삼십 대가 어떻게 흘러가고, 또 어떻게 보내게 될 것인가에는 분명히 영향을 미치게 될 테니까. 그게 안정을 찾는 것이던, 단단해져 가는 것이던,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던, 무엇이던지 간에.
만약 인생을 하나의 해로 표현을 하면, 그것을 단순히 사계절로 구분지어 놓을 수 있을까. 아니, 그곳에는 단지 봄, 여름, 가을, 겨울 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초여름도 있을 것이고, 가을에서 겨울로 이동하는 늦가을도 있을 것이다. 또 어쩌면 여름보다 뜨거운 겨울날, 그리고 겨울보다 시린 여름 밤처럼 변덕스러운 날들도 있겠지. 계절이 변하는 환절기에 쉽게 감기에 걸리듯이, 지나고 보면 결국 누구나 겪었고 또 겪게 될 일들에 우리는 더 예민하기도 했고, 아파하기도 했으며, 무너지기도 했다. 우리가 그 계절의 전환 사이에서 다음 계절의 날씨를 어림잡아 짐작하는 것처럼, 돌이켜보면 내가 올해에 맞이했던 모든 것들은 내가 다음 계절을 어떻게 보내게 될지, 그 계절을 보내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를 생각해보는 계기였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합리화라고 부를지도 모를 이 생각이 우리의 남은 날들을 구원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를 보호할 수는 있다. 그게 전부다.
출처: https://berkeleyopinion.com/977?category=391926 [BERKELEY OPINION]